2011년 3월, 수차례의 낙방 끝에 한 언론사 기자 공채에 합격했다. 이는 기자가 되기 위한 시험에 통과한 것일뿐. 곧바로 기자가 되는 건 결코 아니다. 수습기자 시절, 훈련 기간은 상당히 모질고 혹독했다. '기자다움'과 정의감, 사명감을 체득하기 위한 과정이라지만, "수습은 사람이 아니야"에서 출발한 소위 '수습교육'은 나를 점점 위축들게 만들었고, 자신감은커녕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의욕과 열정, 그리고 초긍정 마인드가 내 장점이었는데, 셋 중 어느 하나도 찾기 힘들어졌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기자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건 아니다. 기자로 일하는 모든 순간이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다. 보람을 느꼈던 적도 많았고, 자긍심을 가졌을 때도 물론 있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해졌다. "기자는 이래야만 한다"는 기자다움에, 점점 김연지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 김연지는 없고, 기자만 남는 것 같았다. 기자는 김연지라는 인간이 잘 살아보기 위해 택한 수단이었는데, 목적과 수단이 바뀌고 말았다.
슬럼프도 있었고, 힘든 날도 많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버틸만한 보람된 날들도 간간히 나타나주면서 기자 생활을 근근히 연명해나갈 즈음,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발견했다.
"나도 해보고 싶다, 정말 하고 싶다..하지만.."
이렇게 주저하다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1년이 지나도 하고 싶더라. 그래서 뛰어들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고민했던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바로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운영해가는 게 쉽다고는 절대 말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조회수나 구독자를 늘리 기 위해 요즘 이게 대세라거나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콘텐츠는 꾸준히 유지해나가기 힘들다.
유튜브에 정답이 있다면 '나 자신'이다. 유튜브를 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주목하게 되고, 내가 잘 하는 것을 찾게 되고, 그간 '잊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회사에선, 또 가족들에겐 구박받을지언정 "그래, 나는 이런 걸 잘하던 애였어"라는 걸 깨달았다. 자존감 지수가 급상승했다. 유튜브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걸 하다보면, 회사의 평가, 주변의 평가와 분리되고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해진다.
잊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 늘 남들과 비교만 하던 것에서 이제는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됐다. 다른 사람까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반드시 사랑해야만 했었는데, 늦어서 미안해.
(차차 얘기하겠지만 유튜브의 목적이 돈이 돼어선 안된다. 돈을 벌기 위해 유행을 좇으면, 특히 그 분야가 내가 좋아하거나 잘하는 게 아니라면 금방 지친다. 해도 즐겁지 않은데 카메라 앞에선 즐거운 척 해야하기 때문이다. 단기간 몇 개는 하겠지만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봤을 땐, 중도포기하기 쉽다.)
두번째, 소통.
기사에도 댓글은 달린다.
유튜브에 달리는 댓글은 다르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주로 언론사를 비판하거나(00사가 그렇지뭐~라는 식의)
기사와 관계없는 특정 댓글이 도배되기도 하고,
내용은 잘 읽지도 않은채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유튜브 댓글은 대부분 '유튜버'와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다.
물론 외모 등을 비난하는 신상에 관한 댓글도 있지만
시청자들은 주로 콘텐츠에 대한 평가를 하거나
공감 혹은 반박을 하기도 하고,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건 어떤 거에요? 왜 그런 거에요?"
질문도 던지고
"다음엔 여기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요청도 한다.
내용이 부족하거나 어설프면 혼나기도 한다.
악플같을 수도 있지만, (물론 상처도 받는다)
하지만 보면 안다. 막무가내 비난과 애정어린 지적은 엄연히 다르다.
같은 일만 쭉 하다보면 관성에 젖기도 하고,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특히 기자들은 항상 뉴스 생산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수도 있는 부분은 정작 놓치면서
기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구독자들은 이런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준다.
정말 많이 배운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
사실 당연한게 아닌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느낀다.
무엇보다 가장 힘이되는 것.
힘들어도 날 버티게 해주는 것.
구독자와의 소통 그리고 응원이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연지님은 차분하게 설명해줘서 좋아요" "정리 잘 해주셨네요 구독합니다" 등등
(사실 나는 그리 차분하지 못한데ㅠㅠ 더 차분해져야겠다고 늘 결심합니다..)
구독자들은 내가 앞으로 할 얘기에 대해 궁금해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구독 버튼을 눌러주고, 소중한 하루의 일부를 내 영상을 보는 데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유익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로..!!
기자가 된 뒤 내 목표는 "내 기사를 기대할 수 있는 기자가 되자"는 것이었다.
기사와 기자가 넘쳐나는 요즘, 네이버 플랫폼 만으로는 기자 이름으론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힘들었다.
유튜브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실시간 채팅으로 대화까지 할 수 있다. 내 영상의 구독자를 모은다는 것, 관객을 모은다는고 것, 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와준다는 것.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고 행복이다.
세번째, 계획하지 않았던, 생각지 못했던 길이 열린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마냥 설레고 기뻤던 것만은 아니다. 두려움 컸다.
중도포기할까봐,
"그럴줄 알았다"며 손가락질 받을까봐.
하지만 영상을 만드는 게 너무 재밌고 구독자가 모이는 게 신기해서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피곤하지만 좋은 아이템이 떠오르면 영상을 빨리 만들고 싶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고 먹는 시간도 쪼개면서 그렇게 채널을 운영했다.
퇴근 뒤, 그리고 주말엔 컴퓨터와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에 최소 2개의 업로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구독자도 모였다.
어느날 갑자기, 한국기자협회에서, 미디어오늘에서 연락이 왔다.
'크리에이터가 된 기자를 주제로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
얼마 뒤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요청으로 강의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도 강의 제의가 들어왔고, 지역 신문사에서도 요청이 들어왔다.
연락이 끊겼던 오래된 친구들한테서도 반가운 톡이 왔다.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유튜브를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고민만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림이다. 오히려 유난떤다고, 튀는 행동한다고 뭐라하지는 않을까. 주변 눈치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듯, 계획에는 없었던, 예상하지 못했던 영광스러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절대 오지 않았을 소중한 기회들이다. 지금 이 얘기는 사실 꼭 유튜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 속에만 품고 있었다면, 더이상 미루지 않았으면 한다. 욕먹는 걸 두려워 하지 않길 바란다. 어차피 날 욕할 사람은 내가 가만있어도 욕하게 돼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일에 그렇게 관심 없다. 자기한테 피해가 가는 것만 아니라면. 다들 살기 바빠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네번째, 생생한 영상 앨범이 된다.
유튜브를 한지 2년이 다 돼간다. 2017년 10월 23일부터 일주일에 2~3개씩의 영상을 올리다보니 업로드된 영상만 300개가 넘는다.
영상에 댓글이 달리면 알림이 오는데, 유튜브는 기사와는 달리 또 재밌는 게, 지난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리액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송고하고 나면 사실 끝이다. 다음 기사 쓰기만도 바쁘기도 하고, 내가 1년 전에 썼던 기사를 다시 찾아보고선 댓글을 확인하거나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유튜브는 적어도 이 알림 덕분에 초창기 영상을 강제적으로(?) 볼 때가 많다. 불과 1~2년 전인데도 추억으로 사라져버린 그날의 영상 기록을 꺼내보게 된다.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빵~ 터질 때가 대부분이다. 더이상 눈뜨고 못봐주겠어서 꺼버릴 때도 더러 있다.
"내가 이땐 정말 어색했구나, 아우 진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했지. 확실히 짧은 머리보단 긴 머리가 어울리긴 해, 맞아, 여기서 이랬었지, 아 우리 조카 이때 진짜 쪼그맸는데" 그때 당시 일들이, 감정이, 그때 날씨가 떠오르면서 미소가 절로 생긴다.
특히 육아 채널(엄마 김연지)은 잠들기 전 하나씩은 꼭 보는데, 덕분에 매일 밤 웃으며 잠든다. 육아 채널은 결혼 5년 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하게 됐다.
당시 너무나도 기쁘면서 가슴 벅찬 감정과, 매주 검사받으면서 초조함과 설렘, 걱정, 아기가 태어날 때 그 순간, 아기가 커가는 모습, 옹알이하고, 뒤집고, 기어가고, 앉고, 내 딸의 순간순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담겼다.
아직 아기지만 '언제 크나' 하면서도 너무 빨리 커버린, 그 아쉬움을 이 영상들로 달랜다. 힘들지만 유튜브 하기를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고, 이럴 때마다 기특한 내 자신을 칭찬해준다.
그외에도, 유튜브 플랫폼을 이용하는 데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 영상을 올리고 전 세계로 유통시켜주는데 공짜다. 사람들이 이 영상을 많이 봐준다면 돈까지 준다는 것. 하지만 돈이 목적이 돼선 안되기에 이 얘기는 이정도로 마치겠다.
“억대 유튜버가 되겠다”는 목표 말고, 위에 언급한 네가지 이유들은 브랜드가 주는 가치를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튜브는 어떤 제품도 물건도 아닌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확인하는 것. 마케팅에서 성공하기 위함도 있지만, 더 긍정적으로, 주체적으로, 인생을 즐기고 싶다면 유튜브로 브랜딩을 하길 권한다.
“Branding Yourself Using Youtube”(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우리 가족의, 내 친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