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김연지 Oct 30. 2020

실패라 여겼던 것들이 행복의 실마리가 됐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 그때 일이 안풀려서 정말  다행이야


조급함이 나를 망친다. 나를 괴롭히는 건 온전히 나다. 일이 잘될 때를 경계하고 뜻대로 안 돼도 실망할 것 조금도 없다. 남들보다 빨리 가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더 행복하기 위해 멀리 보기보다는 하루하루 눈앞의 것들만 좇다 보니 이것이 결국 화를 만든다. 정작 나를 놓치고 사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 생각이 없다가 빨리 해야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혹시 아시나요?


친구들 무리 중에 다 시집가고 나만 혼자 남을 때다. 결혼의 목적은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남은 평생 함께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나 이러다 나 혼자 노처녀로 늙어 죽는 거 아니야?"라는 불안함에 주변에 소개팅을 독촉하고 미친 듯이 잡는다. 그전엔 연애할 시간 따위 없다며 세상 즐기던 녀석들이. 결혼이 반드시 누구나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여성이든 남성이든 결혼에 대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가장 많은 경우는, 가족 때문에 힘들 때다. 어릴 때부터 폭력은 아니어도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아왔거나 부모님의 집착이 유난히 심하다거나 형제끼리 사이가 안 좋으면 그 해결책으로 '결혼'을 선택한다. 소위 '도피 결혼'이라고, 나를 이 구렁텅이에서 꺼내 줄 것은 '결혼'밖에 없다고 여기고 결혼을 급박하게 추진한다.


그러나 배우자는 그것이 아닐 테다. 한 사람은 자기를 불행에서 건져주는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했지만, 그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만나는 '내 옆에 있는 당신'이 결혼의 이유다. 서로의 목적이 다른데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야 오래도록 행복하기 힘들다.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은 언제가 됐든, 한 번만 잘하면 된다. 그 한 번만 잘하면 된다. 한 번뿐인 인생, 반드시 한 번만 결혼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이 좋다면야 간섭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도, 이혼은 큰 상처다.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과 결혼하다 헤어지는 것은 엄연히 다를뿐더러 자식에게는 더 큰 상처다. 자식들은 그들의 잘못된 가족계획에 희생된 것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 채 주변의 시선에 따라 산다. 남들 하는 만큼 못하면 조급해진다. 본질은 놓친 채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상처 받는다.


대학, 영어점수, 입시고 취업이고 승진에 모두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왜 회사에서 이 일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번에 반드시 승진을 해야 하고, 이 자격증을 따야 하고, 영어 점수를 잘 받야야 하고 이 대학교를 가야 하지? 내가 사는 인생이고 그래서 내가 나를 믿고 선택해야 한다. 남이 대신 내 인생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려 한다.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학교가 인생의 목표가 돼선 안된다는 것. 그럼 그 대학 졸업하고선 뭐할건데? 간판을 정하기 전에 나를 먼저 찾아야 한다. 어른들이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이랍시고 대한민국 청년들을 이렇게 학교 간판으로 등급을 매겨버리니 직장인들이 행복할 수가 있나.

 



일이 안 풀려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네가지가 있다.


1. 나는야 삼수생, 근데 그때 대학 붙었더라면 나는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고3 땐 대학에 붙었지만 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재수를 선택했다. 안하던 공부, 재수 때 하긴 하니, 성적이 오르긴 오른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문과인데 언어를 망치고 수리를 잘봤네? 내 생애 "삼수는 없다" 이과로 교차지원했다. 대망의 컴퓨터 공학과로. 어머나 웬걸. 세군데 다 하향지원이기에, 원서 접수 첫날 지원해버렸다. 설마 이렇게나 점수를 낮추는데 떨어질까.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고, 세상에나 마지막날 경쟁률이 30대 1로 치솟더라. 대박 망했다. 오메 다 떨어졌네. 내 생애 삼수가 있구나..



10년도 훨씬 넘은 지금, 그때 공대를 갔더라면?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요즘 개발자 몸값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고, 이공계가 대세라지만, 내가 만약 재수 때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면? 가긴 갔어도 제때 졸업은 할 수 있었을까;; 언론정보학과에선 4.5 만점에 4.25로 졸업했는데(네 자랑입니다), 컴공과 갔다면..3은 받았을가;;; 초중고 12년간 수학과 과학쪽엔 없던 머리가 대학 4년동안 튀어나올 일은 만무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종일 머리를 쓸 수 있는 인내심과 지구력을 가지지 못했다. 매일 울면서 학교 다니다 어찌어찌 졸업은 했겠지. 그러다 전공 살려서 취업도 어찌어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 안가, 전공과 무관하게 언론고시를 봤을테다. 그리고 공대 출신 기자 김연지가 됐겠지.


고3때 붙은 대학도 마찬가지다. 일단 여대였기에, 여중 여고를 나온 나로서는, 여대를 겉돌았을테다(?!) 과도 교육학과였는데, 질풍노도시기 학생들 무섭다(ㅠㅠ) 교생실습 어쩔? 교육학과 나와서 언론고시 봤을테다. 그 경험 역시 기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됐겠지만,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 없이 나홀로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그리고 2년이나 출발이 늦었기에, 대학 4년을 정말 누구보다 알차게 보냈다. 시간을 아껴썼다. 힘들게 공부하고 대학 온 애들이 해방감에 놀고 먹고 놀고 먹을 때,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잘 놀았더니(?) 대학생 돼서 노는 게 그렇게 막 재밌지만은 않았다. 술 먹으면 돈 들고 살찌고 다음날 또 힘들고.


*교내 댄스동아리 부장이었죠. (요즘은 리더라고 하더라구요^^;; 리더이자 센터였습니다)도 대회 나가서 상도 받고, 시내 학교 축제 때 초청 공연도 하고요 ㅎㅎ 야자 제끼고 친구집에서 놀고 그랬더랬죠. 걱정도 많으면서 꿈꾸면 꾸는대로 다 이룰 줄 알았던 순수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열아홉에 겪은 2번의 입시 실패로 얻은 인생 교훈. 노력해도 뜻대로 안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그 결과가 나의 모든 것을 정의하지는 않느다는 것.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시간 관리를 잘한 덕에, 대학은 늦게갔지만 결코 원하는 목표 지점에 도달한 시점은 늦지도 않았다.


2. 5년 동안 소식이 없던 아이. 오랜 기다림마저도 축복이었단다, 아가


겪어보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난임, 불임여성들의 고충을.


결혼 5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엉뚱하게도 5년의 시간동안 세상의 편견을 감내해야겠다.


여성이 결혼했는데 임신을 못한다는 것은 크게 세가지 이유로 분류됐다.


1. 자기 삶이 더 중요한 이기적인 여성


나는 분명히 아이를 원하고, 아직 들어서지 않은 것일뿐인데,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생각하고 아이가 안생겨서 괴로운 사람에게 그 생각을 토해낸다. "니 인생만 생각히자 말고 아이를 생각해, 늦게 낳을 수록 너랑 애만 힘들어" 내 인생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도 갖고 싶은데 안 생기는 거라고요. 그리고 임신을 안하면 왜 나만 생각하는 여성이 되는 건데요? 왜 여성이 꼭 임신을 해야하는 거에요? 라고 물으면 늘 대답은 돌아온다. "자식을 위해서지" 자식 키워줄 거 아니면, 그입 다물어주세요. 내 인생입니다.  


2. 아이도 못갖는 모지리


사람이 나고 죽는 게 한낱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인가. 스스로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으려 노력해도, 세상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임신을 못한다는 건 '장애'에 해당되는 듯 했다. 피해 의식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은 가혹했다. 난 임신이 안됐다뿐이지,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느끼진 않다. 몇몇의 시선이 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지. 장애라고 보면서 또 그렇다고 난임여성이라 배려해줄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못가지니 남편이 바람을 필 수도 있겠다느니, 밖에서 자식을 낳아오면 어쩌냐느니,? 아 정말 어쩌라는건지. 누군가의 불행을 떠들기에 난임, 불임은 제격이었다.


3. 너네 부부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래, 문제 있어요! 우리 별거중에요" 이 답을 원했던 것일까?? 애 낳으면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왜 묻는건지? 문제 있으면 그 문제 해결해줄건가? 나나 배우자가 바람핀다는 얘기라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맞장구칠 가치조차 없었기에 에너지 소모를 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신랑이 늦을 때마다 그런 얘기들이 머릿속에 툭툭 올라오는 것이다. 일하다가 또 회식있어서 늦는 것일텐데, 입에 담기조차 불경스러운 그런 말을 들은 뒤부턴 남편의 모든 것이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그건 또다른 불행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정말 모질고 나쁜 사람들. 이런 말 한 사람중에 우리 애 태어나고 난 다음 기저귀 한 장이라도 사준 사람 없다.


이리저리 마음고생은 많았지만, 아이가 없던 5년간 우리 부부는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우선 아이가 없었기에, 여행을 마음껏 다녔다. 2주씩 연차를 내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체코, 그리스, 포르투칼, 캄보디아, 등등 ..국내도 자유롭게 여행했다. 올해처럼 코로나가 닥치니, 결혼하고서 애가 금방 생겨 여행도 못 다녔던 부부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리고 5년 동안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편견이 놀랍도록 개선됐다. 총대를 멘 선배들에겐 너무나 송구하지만, 출산휴가 - 육아휴직의 험한 길을 개척해주셨다. 내가 아이가 생겼을 땐 '당연한 권리'로 자리잡았다.


사내에서 결혼한 순서로만 따지면 나도 육아휴직 등 '여직원 복지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던 top3에 포함된다. 그러나 아이 소식은 5년이 지나도록 없었고, 그동안 '임신이 벼슬이냐'라며 육아휴직을 아니꼬워하는 꼰대에 맞서 선배들은 '투쟁'을 외치며 험로를 개척하셨던 것이다. 그때도 분명 육아휴직이 있었는데, 여전히 사업장에서는 육아휴직을 쓰려하면 퇴사 압박을 받거나, 복직 뒤엔 좌천되는 불이익을 겪었다는 기사들이 한창 나올때다. 지금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곳들이 여전하겠지만, 그때와 지금 많은 것이 달라지긴 했다.


뱃속에 아이가 있는 엄마라면, 어떤 경우에도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경우는 피하고 싶다. 미움 받고 싶지도 않다. 그 미움의 화살이 괜히 아이에게 던져질까봐. 그러나 임신한 몸으로 선배들은 그렇게 몸소 싸워주셨고, 5년 만에 찾아와 준 아이는 모든 사람들의 환영과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 없이, 엄마 아빠 고생시키지 않고 말없이 찾아와준 우리 딸. 그저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3. 디스크가 찾아준 소중한 것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건 바로 운동이다. 아팠던 얘기는 많이 했느니 그만하고, 아프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젊을 때 알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허리가 아플 때면, 언제까지 이 고통 안고 사나 싶을 때도 있지만, 건강의 중요성을 여전히 모르고 운동도 안 한 채 살고 있겠지.


운동은 근육뿐만 아니라 멘털과 마인드까지 탄탄하게 만들었다. 피트니스 대회 경험은 자신감도 줬지만 끈기와 인내가 무엇인지, 또 '겸손함'까지 가르쳐 줬다.체지방 1kg을 감량하고 근육 1kg을 늘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 코앞에 있는데 침만 삼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있는 건 '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술 안 먹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놀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 운동으로도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취미'가 생긴 건 내 삶의 질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매일 반복되던 똑같은 하루가 아닌, 오늘 이 시간이 흐르는 게 너무너무 아쉬워졌다. 하지만 내일이 또 기대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또 오니까.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전엔 항상 부족하기만 한 나 자신을 보채고 옥죄고 살았는데,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앞만 보며 살던,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수식어로 붙이기 위해 살던 껍데기는 과감히 버렸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빛나는 현재를 갉아먹지 않기로 했다. 막살겠단 건 아니라, 현재 하고 싶은 걸 미래를 위해 참고 살진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그건 결국, 진짜 나, 기자 아무개가 아닌, 진짜 김연지, 나 자신으로 살게 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인생이 즐거워졌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일할 때도 더 에너지가 나고 업무 효율도 높아졌다. 회사에 고마운 마음도 생겼다. 월급을 주시니 이 돈으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지 않나.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여가시간에 스트레스를 잘 푸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됐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준 디스크다. 너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 없다. 고맙다.


4. 외로웠던 어린 시절, 날 버티게 해준 글쓰기


믿기 힘들겠지만, 어렸을 때 나는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다. 속내를 털어놓는 방법을 몰랐다.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기로 한 엄마아빠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랐다. 이런 환경은 어린 아이를 빨리 자라게 했다. (철이 빨리 든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제대로 살아야 한다)


부모님의 부재를 채워주신 너무나 감사하기 그지 없는 조부모시지만, 어린 손녀는 많이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많이 무서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60이 넘는 연세에 한창 자라는 손자손녀를 키우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도 싶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었다.


어린 딴에 고민이 생기거나 힘든 일이 닥치면 소리없이 우는 법을 깨달아야 했다. 내색하기 보단 삼키는 것이 빠르고 편했다. 이런 내 성격은 자연스레 일기장을 펴게 했다.


습관적인 일기 쓰기는 허리케인급으로 불어온 질풍 노도의 시절, 나쁜 길로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줬다. 세상은 남들 사는대로, 편안히 살라고 부추겼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나 공자님 말씀 말고는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도와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만으로도 지친 청춘을 어루만지는 이 불안과 방황의 시대. '포기=실패' '무성과=패배'로 단정지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무엇을 해야'만 하고,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목표 의식보단 당위성만 강조하는 일상 속. 그저 내 또래 많은, 아픈, 불안한 영혼들에게 그저 '잠시 숨 좀 돌리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쉬었다가도 괜찮다고. 숨쉬는 법을 까먹는 것보다 낫다고.


입시, 취업, 결혼, 임신.. 좀 천천히 가면 어때. 힘들면 쉬었다 가면 어때. 조급함이 나를 망친다. 그 조급함을 부추기는 것도 나 자신이다. 부모님이, 친척이, 친구들이 계속 들쑤신다지만 그럴 수록 '차단'하는 나만의 방법이 필요하다.


위에 4가지 사례에서도 볼 수 있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지나고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땐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기에 나는 지금 누구보다 나답게 잘 살고 있다. 만약 그때 모든 게 원만하게 잘 풀렸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당시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에 심장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도 쓰면서 "당신만 몰라요, 얼마나 예쁜지" 이런 얘기 하고 있고, 여러분은 또 '하트'를 눌러줄테고?! ㅎㅎ


물론 나 역시 빨리 가고 싶다. 잘되고 싶다. 돈도 많이 벌어서 '돈돈돈' 하는 세상에서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삼수하는 동안, 백수시절 동안, 디스크로 휴직한 동안 불안함이 극에 달하기도 했었다. 그무렵 같은 길을 걷던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나를 앞질러 갔을 테다. 타발적 의지로, 열심히 붙들어 오던 걸 모두 내려놔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했다.


이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기에. 멈추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 아프지 않았다면 지금도 놓치며 살고 있겠지.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지나고 나니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빨리 가면 뭐해, 연필에 너무 힘을 주면 심이 부러지듯, 조급함에 모든 일이 어그러질 수 있다. 마음이 급할 수록 멈춤과 심호흡이 필요하다. 숨가쁘게 정신없이 달려가는 게 절대 능사가 아니다. 조급해질수록 내 숨소리에 조금 더 집중하고 그 평온함 속에서 나를 다잡고 나를 지켜나가야 한다. 마침표를 찍기 위해 가는길에 물음표가 느낌표로, 느낌표가 물음표로 되기도 하지만, 쉼표가 있어야 문장은 더 완벽해진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의 내일은 또 허겁지겁해지겠지. 그렇게 삶은 계속될 것이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면서,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또 더 발전하고, 어제보다 깻잎 한장만큼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면, 어제보다 많이 웃는 오늘이 됐다면 그걸로 됐다.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모습 말고, 내가 좋아하는 나. 남들이 잘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 말고 내가 잘하는 것만 알면 조급할 것도 없다. 다만 일이 내 노력에 비해 잘 풀릴 때, 너무나도 운이 좋다고 생각할 땐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건 행운이 아니라 유혹일 수 있기에. 무엇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실망할 것도 없다. 묵묵히 걷다보면 어느새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을테니.







이전 15화 걱정마. 내가 쓰는 문장대로 뭐든 다 이루며 살테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