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나의 아저씨>가 인생 드라마가 된 이유에는, 인생을 관통하다못해 마음을 후벼파고 뼈맞는 대사들 때문일 것이다. 눈물 나게 웃긴데 웃고만 있기엔 마음이 헛헛한 형제간 대화가 나온다.
"내가 내년이면 오십이다. 놀랍지 않냐. 인간이 반세기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아무것도 안 해서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죽어라 뭘 하긴 한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아무리 뒤져봐도 없어. 그냥 먹고 싸고. 대한민국은 50년 동안 별일을 다 겪었는데 인간 박상훈의 인생은 50년 동안 먹고 싸고 먹고 싸고 먹고 싸고 먹고 싸고.... 징그럽도록 먹고 싸고.."
"그래서 만들려고. 기억에 남는 기똥찬 순간 있어야 될 거 같아. 뭐라도 만들어 넣어야 그래야 덜 헛헛할 거 같아"
"20년 전에 망한다던 지구는 언제 망하는 거지?"
꿈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드러누워 말도 안 되는 꿈을 누렇게 색 바랜 천장에 그려보기도 하고, 이미 그 꿈을 이룬 사람이 돼 "내가 만약 00가 된다면~"의 가정법 문장으로 긴 밤을 채우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렸고, 원하는 미래에 한 발 더 가까워질 것 같았다.
내 나이 내일 모레면 불혹.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소녀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나? 20년 전 그 소녀가 만족해 할만한 삶일까?
10년 전까지만 해도 어렴풋하게나마 5년 뒤 10년 뒤 내 모습을 그리고 살았다. 그럼 10년 뒤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참 이상해. 분명 내가 원했던 일인데, 끊임없이 항상 정신없고 분주하기만 한데, 늘 피곤하기만 한데, 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멀쩡하게 잘 걷다가도 누가 "쭉 걸어가 봐"라고 하면 오른팔과 오른발이 함께 나가는 것처럼. 모든 게 뒤틀리고, 어긋나기만 하는 것 같았다. 숨을 쉬는 매 순간마다 불안에 휩싸이는 것 같다.
두려웠다. 아침에 눈뜨는 게 겁이 났다. 내 삶이, 내 하루하루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반복될 것만 같았다. 잠수라도 타버릴까? 아니야, 그러기엔 뒷감당이 안될 것 같고...
"20년 전에 망한다던 지구는 언제 망하는 거지?" 나만 망하면 억울하니까 그냥 세상이 같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대표님의 꿈은 뭐예요? 회사 대표 말고 000님의 꿈이요!
CEO 간담회에서 빠지지 않고 하던 단골 질문이었다.
단 한 번도 대표 말고 그냥 사람 000의 꿈에 대한 대답을 들어보지 못했다. 공식 석상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짐이 곧 회사요" 같은 물아일체의 느낌?이랄. 그래, 그럴 수 있다. 최소 수천 명의 직원 생계를 책임지는 수장이니까. 대표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는 대단하니까.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결혼하는 거, 그냥 한 번 푹 자보는 것, 애들 좋은 대학 가는 것, 여행 가는 것, 외제차 사는 것, 내 집 마련, 카페 창업.."
이것도 꿈이라면 꿈이고 소중한 목표다. 다만, 학창 시절 깔깔대며 그렸던 꿈의 풍경이나 향기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쓸쓸하기도 하고, 생기가 없달까. 말만으로도 설레던 '꿈'이란 단어에 현재의 고달픔이 스미는 것 같아 서글퍼졌다.
<나의 아저씨>에 제대로 현타 오는 명대사가 있다. 현대 직장인의 표상 동훈(이선균)의 단짝 친구이자 수재이지만, 불자가 돼버린 겸덕(박해준)의 대사다.
삼형제 중 유일한 대기업 부장인 박동훈(이선균)은, 파견직 여직원 이지안(아이유)이 손녀 가장인 걸 알고 짠하고도 대견해 챙겨준다. 알고 보니 이지안도 동훈을 견제하는 세력에 동훈에게 접근했던 것.(나중에 동훈 편으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하는 게 동훈의 캐릭터다.
매일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아이들에게 "너희 땜에 산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부모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동훈: 망했어. 이번 생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
겸덕: 생각보다 일찍 무너졌다. 난 너 한 60은 돼야 무너질 줄 알았는데 내가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는데 결정타가 너였다. 이 세상에서 잘 살아봤자 박동훈 저 놈이다. 더럽게 성실하게 사는데, 저 놈이 이 세상에서 모범 답안일 텐데 막판에 인생 더럽게 억울하겠다.
동훈: 그냥.. 나 하나만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겸덕: 희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가 6.25 용사냐 인마, 희생하게?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이루어놓은 건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지석이한테 말해봐라(지석이는 극 중 이선균 아들) 널 위해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누가 누구한테 거지 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쩐다 인마.
동훈: 다들 그렇게 살아~
겸덕: 그럼 지석이도 그렇게 살라고 그래! 그 소리에 눈에 불나지, 지석이한텐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텐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희생은 예수님이 하시는 거고요
저는 현생 살랍니다"
희생이라는 말은 참 가슴 아픈 말이다.
기자 시절, 야근 수당, 추가 근무 수당을 요구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예수님의 희생 정신을 좀 가질 순 없냐. 기자가 세상을 위해 일하는데 밤이고 낮이고 어딨어? 그게 당연하지"
"전, 예수님이 아닙니다만"
왜 이 말을 그때는 못했을까.
엄마는 희생해야 한다는 말. 어린 시절 TV드라마에서도 희생이라는 말이 빠진 엄마의 대사는 없었고, 대한민국 엄마는 '희생의 아이콘'으로 굳어져 갔다.
그런데, 정말 '누가 희생해 달랬나?' 희생을 떠나서, "누가 낳아달랬나?"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세상에 낳아놓고, 아니 세상에, 희생했다니.
"나는 엄마 아빠 욕정의 산물이잖아!"라는 말은 못했지만, "내가 어떻게 널 키웠는데"라는 말만큼 정말 부모와 자식간 멀어지는 말이 또 있을까. 평생의 애증관계인 모녀 사이에서는 더 어렵기만 하다. "엄마가 너 때문에 꽃다운 시절 다 희생했고 참고 살았다"는 말은 딸들을 참 부담스럽고 버겁게 만든다. 근본 없는 죄책감과 함께.
많은 엄마들이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엄마를 원망하면서 그토록 싫었던 엄마의 말과 행동을 닮아가고 있다.
엄마는 예수님도, 성모마리아도, 부처도 아니고 6.25 용사도 아니다. 희생은 무슨, 아이 낳기 전엔 밤늦게까지 술마시고 전도 꽤 부쳐봤을텐데, 왜 자녀가 태어나면서 하얀 면사포는 벗어던지고 가시 면류관을 쓰려고 하는 건지.
태어나면서 "엄마 날 위해 희생해줘"라고 말하는 아이는 단 한명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서 신문지 접듯 꿈을 접고, 내 낡은 서랍 속에 꿈을 넣어버리고, 꾸깃꾸깃 구겨서 휴지통에 넣고 말았다.
물론 나보다 내 가족을 우선시하는 삶에 만족하고 내가 행복하다면 천만 다행이다.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삶에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고 인생에 맞고 틀린 것, 옳고 그른 건 없다. 포인트는 "내 삶에 내가 만족하는가"이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커질 때이다. 맘에도 없던 희생이란 걸, 시부모의 닥달에, 부모님의 침묵 속에, 남편의 무관심 속에 하게 됐고, 내 인생인데 정작 내 삶은 돌보지 않는 지금 이 순간, 조금도 행복하지 않을 때 말이다. 그 누구도 여자 박동훈으로 살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더럽게 성실히 살았고 '엄마 고사'에 모범 답안을 보란듯이 제시했는데, 드라마 말마따나, "막판에 인생 더럽게 억울하겠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응, 완전 괜찮아. 너니까.
때가 됐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역사를 끊을 때가 됐다. 우리가 그 대(代)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박수쳐주지도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 이 비극을 끊어야 한다. 아이들은 언젠가 떠난다. 지금의 우리처럼 부모 곁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그때 "딸아, 아들아, 내가 널 위해 희생했는데, 나를 데리고가"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뻔뻔해져야 한다. 나만 생각해야 한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나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하면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도 된다는 뜻이다. 남이 봤을 때 대단하고 멋있는 인생 말고 내가 봤을 때 만족할 수 있는 인생, 나만의 방식으로 나답게 사는 인생.
반백살 되기 전에 기똥찬 순간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희생이란 천년의 굴레를, 내 딸에게, 미래의 며느리에게 요구하지도 짐 지우지도 않을 테니까.
팔자에도 없는 희생 타령 이제 그만 하고, 현생 살자.
한 번뿐인 내 인생 기똥찬 순간, 이제 만들어야 할 순간이다.
이대로 괜찮은 거냐고? 아무 것도 해둔 게 없는 데 괜찮냐고?
응, 완전 괜찮다. 하루하루 살아온 지난 흔적들이 다 해낸 것이다. 물가와 우리 아이 성적 빼고 다 오른다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아이들 따순 밥 먹여 가면서 살고 있지 않나. 지난 건 다 잘한 거다. 꼭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괜찮은 사람이란 걸" 그걸 당신만 모를 뿐이다.
"우리 엄마, 아주 기똥차게 멋있어. 엄마처럼 살고 싶어"
죽어라 뭘 하긴 한 거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게 없으면 안된다. 캐면 캘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줄 기똥찬 것들이 나와야 한다. 한번뿐인 인생 징그럽도록 먹고 쌀 수만은 없지.
아이들에게 떳떳해질 수 있는 삶. 행복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줘야 할 때다. 아이들은 엄마의 행복을 먹고 자라니까.
내가 나로 살아 숨 쉬는 한, 지금 이대로도 괜찮고, 어떤 모습도 괜찮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잘 돼 있을 것이다. 나니까.
*메인이미지는 핀터레스트에서 캡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