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되면 되게 하라? "안되면 되는 거 해"

나는 아나운서 준비할 때 가장 불행했다

by 기자김연지

대학교 3학년 때 스피치 아카데미에 다녔다. 언론인을 꿈꾸고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던 터라 기자를 경험해보고파 대학 신문사에 두 발로 걸어갔다 '뜨악'하며 3개월 만에 뛰쳐나왔다. 그때 당시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라 생각했고, 이제와 돌이켜보면 언론사의 '못된 것'까지 제대로 배운 영악한 동아리였다.


그 당시 상처받은 영혼에 불을 지핀 무언가가 있었으니, 노현정-강수정 아나운서 인기를 등에 업은 아나테이너 열풍이었다. "늘 냉철하고 도도해 보이는 언론인이, 저렇게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사랑을 받을 수도 있구나" 환상에 등 떠밀려 아나운서를 꿈꾸게 됐다.


주 3회 3개월 과정에 한 학기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 비용을 내고 입문반에 들어갔다. 이력이라곤 꿈밖에 없는 꿈의 크기도 초보인 입문반 지망생들은 수업 전후나 주말에 따로 모여 스터디도 하고 서로 모니터링을 해주면서 3개월을 보냈다. "너는 어느 방송국, 너는 어느 프로그램 진행, 너는 9시 뉴스 메인 앵커" 세상 해맑게 서로의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행복한 봄을 보냈다.


스피치 아카데미 3개월 수료증을 마치 박사 학위증처럼 자기소개서에 적은 4학년 때부터, 채용 공고가 나는 곳마다 시험 보러 다녔다. 학교와 학원에서 벗어나 세상과 마주한 우물 안 개구리의 충격은 상당했다. 그때부터였다. 내 생애 최고 우울한 나날들이 펼쳐진 것이.


아나운서 시험은 1차 전형은 카메라 테스트다. 졸업도 전, 재학생 때 치른 첫 시험이었다. 처음부터 붙을 거란 생각은 당연히 안 했다. 그저 긴장하지 말고 그간 준비한 거 잘 발휘하고 와야지! 어깨에 이미 뽕이 한가득 장착된 정장을 입고, 신었다기보다는 올라탄 것에 가까운 반짝반짝 새 구두 신고 들어갔다. 미래 9시 뉴스 앵커의 자신감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서클렌즈 낀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고, 떡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온 듯했다.


예쁘고 잘나고 똑똑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 건지. 왜 이런 애들은 내가 태어났을 때 같이 태어났고, 하필 같은 꿈을 꾸는 걸까. 당시는 특히, 여자 아나운서 한 명 뽑는데 지원자가 수백 명에서 천여 명까지 몰릴 때였다. 아나운서는 대규모 채용이라는 게 없기도 할뿐더러,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온 때라 언론사도 채용문을 꽁꽁 닫았을 때다. 단 한 명이라도 채용공고가 뜨면 서울이든 제주든 어느 지역 상관없이,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전국에서 몰렸다. 수많은 지망생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기 위해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서.


시험장 빼곡히 들어온 지원자들은 어쩜 눈을 쉽게 뗄 수 없을 정도로 인형처럼 예뻤다. 배우나 아이돌이라고 해도 고개 끄덕일 만한 얼굴과 몸매의 소유자였다. 입을 여니 목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차분하면서도 또렷한 딕션에 당차기까지 하다. 조곤조곤 말하는데도 강속구가 뻗어나가는 듯 힘이 실렸고, 돌발 질문에도 대본 있는 것처럼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매일 쓰는 한국어 맞춤법도 늘 알쏭달쏭하기만 한 내 오른쪽엔 영어에 중국어까지 유창한 지원자가 내 욕을 해도 눈치조차 챌 수 없는 말을 쏟아낸다. 어떤 지원자는 갑자기 '넬라 판타지아'를 부른다. '성악을 하다가 아나운서를 준비한 걸까, 아나운서가 되려고 성악을 배운 걸까?'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한예슬처럼 생긴 한 지망생은 김신영에 빙의한 듯한 재치 만점의 진행을 선보인다.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시험장에 있는 여러 대의 카메라는 '너는 준비한 게 그것밖에 없냐'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간의 노력을 보여주러 간 게 아니라 부족함만 확인하며 자리를 떠났다.


'여의도'라는 글자만 봐도 가슴이 두근대던 지하철역에서 애먼 가슴만 쳤다. 스크린도어에 어깨 뽕마저 공기 빠진 듯 잔뜩 주눅 든 모습이 비쳤다. '이렇게 못 생기고 뚱뚱한 내가 당치도 않게 아나운서 시험을 보러 간 건가? 화장도 저렴한 데서 해서 그런가' 머리는 왜 이렇게 촌스럽고, 옷도 너무나 평범했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물 안 개구리도 아니고, 딱 그 지하철 문 크기에 갇혀서 바깥 세상을 그림자로 배운 올챙이 같았다.


이후 테스트를 볼 때마다 나는 점점 작아졌다. 스스로가 너무나 하찮아 보였다. 뭘 해도 내 단점만 보이고 아무리 숨 가쁘게 달려봐도 못난 것만 보였다. 걷고 걸어도 제자리 걸음, 아니 퇴행하는 것 같았다. 걸음걸이도 미워보이고 그림자마저 못생겨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나. 헛산 것 같았다. 무려 13년 전, 스물 다섯의 나는 그랬다. 그 예쁜 나이에 자신감과 자존심과 자존감 모두 바닥을 쳤다. 부모님만 원망했다. 왜 나는 어릴 때부터 흔하디 흔한 영어 학원 한 번 안 보내주고 이렇게 키웠는지, 왜 나를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애로 키웠는지. 키는 왜 이렇게 작게 낳았고,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로 말이야. 어릴 때 왜 날 이렇게 잘 먹인 거야. 많이 먹으면 뜯어말렸어야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다시 바로잡아야 하나. 일단 영어유치원 좀 나왔어야 했고, 아니지 어떤 돌발상황에도 차분하게 대처할 줄 아는 그런 뼛속까지 아나운서가 되려면, 엄마 뱃속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엄마 저 다시 들어갈 테니 태교부터 똑바로 하시라고요! 모차르트 많이 듣고 영어책도 좀 읽으시고!"


엄마 얼굴을 한 번 봤다. 다시 뱃속에 들어간들, 우리 엄마가 과연 태교를 잘할까? 영어유치원을 간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충분히 나올 것인가. 아빠 얼굴을 봤다. 다시 태어나면 키가 10cm는 더 클까? 다시 태어난들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었다. 구질구질하고 구차하다. 나 그렇게 못난 사람 아닌데.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인기도 있었고, 어딜 가나 그래도 환영받는 편인데, 내가 이렇게 지질해졌을까.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의 불행은 시작된다


내가 가진 것은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나에게 없는 것만 고집스럽게 찾아내며 부족한 걸 채우지 못해 조바심만 내고 있었다.


노래와 연기는 안돼도, 영어와 중국어는 안돼도 글은 남들보다 좀 쓰는 편이다. 얼굴이 커 카메라 빨은 못 받아도 후덕한 얼굴만큼 오지랖도 넓은 편이다. 키가 작아서일까.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안다. 달리기는 느려도, 천천히 가는 만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많이 보는 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시험장 같이 따라와 주는 부모님은 없어도 학원도 스스로 알아보고 진로도, 진학할 학교도, 하 집도 혼자 결정할 만큼 독립적이었다.


공부는 뛰어나게 잘하진 못했지만 누군가 울 때 손수건을 건네기보다는 같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공감 능력을 지녔다.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고, 누구보다 잘 들어줬다. '비밀'이라고 지켜달라고 얘기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꺼낸 적 없다. 돈은 쌓지 못해도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이는 사람들의 가슴 깊은 속에 담긴 더 많은 얘기를 끌어내곤 했다.


'아나운서'라는 꿈과 분리하면 나라는 사람 자체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공감 능력도 좋고 주변의 사랑도 꽤나 받는 사람 냄새 가득한 20대였다. 소중한 꿈인데,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복해야 하는데,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굶으면서까지 살을 빼고,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서 '리셋'하고 싶을 만큼 지금의 나를 탓하고 원망해야 하는 게 맞나. 이렇게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꼭 아나운서가 돼야 하는 것일까?


시험장에서 만난 많은 지망생들 모두 예쁘고 멋지지만, 나는 나대로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굳이 내 두 발로 그 예쁘고 잘난 애들 집단에 들어가서, 매번 비교하고 비하하고 스스로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일까.


모두가 높은 곳을 바라볼 때 낮은 곳을 살필 줄 아는 '나의 시선'이, 다소 느려도 빨리 가는 남들은 지나치는 어떤 걸 캐치해 내는 '나의 글'이 어디엔가는 반드시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쓸데없이 외모를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아도 되고, 깎아내리지 않아도 됐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질 것도 아니고, 비하해봤자 좌절만 반복할 에너지와 시간 소모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아나운서의 꿈을 종이 접듯 아주 잘 접고, 기자의 길을 걸어갔다. 사람과 세상을 위하는 일이 반드시 아나운서의 길만 있는 건 아니니까. 경찰이 돼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고, 검사나 변호사가 돼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스티브 잡스처럼 멋진 기술을 개발해서 사람들에게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고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처럼.


대학 졸업 후 우연히 연락이 된 친구들이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아나운서는 결국 포기한 거야?"


자신 있게 말했다. "포기가 아니라 선택한 거야.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로. 안 되는 거 되려 하기보단 되는 거 하려고"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혹여 그것이 포기로 비칠 수도 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마지막에 웃기보다는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아나운서국으로 출근하느냐 보도국으로 출근하느냐의 문제보다는 "무엇을 위해, 왜 나는 보도국으로 출근해야 하느냐"의 질문은 선택의 기로에서 보다 쉽게 결론지을 수 있게 해줬다.


결정적인 판단에는 '나의 행복'이 중심에 있었다. 그 바늘구멍을 뚫고 "네가 해냈구나"라는 남의 시선도, 아나테이너라는 스포트라이트도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라면 그 어떤 것도 포기가 아니라 선택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더 웃을 수 있다.


김연아 선수, 김예림 선수, 손흥민 선수 등 세계 랭킹 순위권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같이 이렇게 얘기했다.


"남들보다 잘하려 하지 말고, 내 것 하자. 준비한 거 실수 없이 끝내고, 내가 만족하면 되는 거잖아요"


"안되면 되게 하라"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고 한다. 그만큼 꿈은 가슴 뛰고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 꿈이 나를 너무 힘겹게만 한다면, 꿈이 나를 갉아먹고 있고, 나의 못난 점만 자꾸만 들여다보면서 질책하게 한다면, 아주 잠시만이라도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나를 바라봐야할 때다.


이 세상에 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사람에는 당신도 포함된다. 어떤 꿈도 나보다 중요한 건 없다. 내가 있어야 나의 꿈도 있는 거니까.


"안되면 되는 거 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찾았고, 나 스스로 내 가치를 높였다. 지금도 흔들릴 때마다 글을 쓰며, 진짜 나로 살고 있다. 많이 웃으며 살고 있다. 행여 아들 딸내미가 공부를 못해서 괴로워할 때, 이런 얘기를 해줄 수 있다니, 나 참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를 괴롭혔던 꿈을 던져버렸던, 과거의 나를 아주 칭찬한다.



2017년 올해의 여기자상. 기획취재 부문에서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수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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