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 행복은 김떡순입니다.

by 기자김연지

내 딸은 정말 내 딸이 맞을까?


내 딸의 얼굴은 내 어린 시절 얼굴과 아주 붕어빵인데도, 한 번씩 드라마 중독 부작용이 나올 때가 있다.


병원이나 조리원에서 아이가 바뀌진 않았을까.

누군가 음모를 가지고 바꿔치기 하진 않았을까.

지구를 탐하러 온 외계인은 아닐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 있었다.


책을 읽어주려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였다. 말똥말똥한 딸의 눈을 바라보다 긍금해졌다.


"근형아, 유치원에서 뭐할 때가 제일 좋아?"


딸의 대답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둘째를 재우던 신랑이 그야말로 빵 터졌다.


"응~ 유치원에서 밥 먹을 때"


그다음 말은 나의 의심을 불식시키기려 했는지, 한 술 더 보탰다.


"어린이집에서도 그랬어. 난 밥 먹을 때가 제일 좋아"



내 딸이 맞다.

다시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 다닐 때 점심시간이 제일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밥 먹으러 학교에 갔던 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도합 12년 개근상에 빛나는 나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조퇴를 하더라고 일단 학교에서 밥은 먹고 오겠다”는 신념이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풀떼기네" 반찬이 별로여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밥 먹고 빵 먹을 거니까. 그렇게 배 채우고 수다도 떨고. 점심시간은 하루 중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여고 시절, 점심시간은 치열했다. 4교시 시작 전엔 반드시 교복 아래 체육복을 입는다. 4교시 끝나기 5분 전, 책상다리 바깥쪽으로 하나둘씩 삼선 슬리퍼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고 때를 살핀다. 엎드려 자던 아이들도 본능의 배꼽시계에 부스스 눈을 비비며 시계를 바라본다. 일제히 초침을 따라 눈동자 바운스가 시작된다. 저스트 절크 메가 크루 칼군 무급이다. 종이 울리기 직전, 바로 뒷문 앞에 앉은 친구에게 시선이 쏠린다. 이 친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종이 울리는 순간, 선생님 퇴장 여부에 상관없이 뒷문을 힘껏 밀어 물꼬를 터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간, 한 반이 통째로 다른 반 아이들에게 배급 순서를 빼앗기고 만다. 비로소 종이 울리면 무소의 뿔처럼 달려 나간다. 먼지를 흩날리며 달리는 황소 떼는 황야가 아닌 여고에 있었다. 인간은 살기 위해 먹는 존재가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존재임을, 단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몸소 증명해 낸 자랑스러운 내 동문들이여. 5교시 종이 울리기까지의 한낮의 짧은 시간, 이 시간만큼은 그 어떤 걱정도 다 잊게 만들고 햇살에 비치는 에메랄드 바다처럼 눈부시고 반짝였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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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는 정문 맞은편 분식집 떡볶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세계 최강 요리사 할머니에게 떡볶이를 해달라고 했지만, 희한하게 우리 할머니가 해준 떡볶이는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맛은 나지 않았다. 그때는 그 분식집 딸내미가 정말 부러웠다. ‘저 떡볶이를 매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카추 돈가스를 떡볶이를 찍어먹는 그 맛이란. 문제집 산다고 5천 원 받아놓고 4500원이 남았을 땐 HOT 오빠들 컴백했을 때만큼이나 기뻤다.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엔 가파른 오르막길이 세 번 나온다. 500원짜리 컵볶이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을 찍어 먹다 보면 언덕이란 걸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집 앞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돈을 모아 무시로 길목에 있는 떡볶이집 들리는 게 그날 일과의 마무리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옛말은 떡볶이 순례길에도 통하는 진리였다. 혼자서는 떡볶이만 먹어야 했지만 여럿이선 김밥과 순대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떡볶이를 먹고 난 다음에는 떡볶이 국물에 김가루를 뿌려 밥을 비벼먹는다. 시험을 못 봐서 먹고, 시험을 잘 봐서 먹고, 기분이 우울해서 먹고, 기분이 좋아서 먹던 떡볶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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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한답시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밥 먹고 이 닦듯 들렸던 떡볶이집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깔깔 거리며 웃기에도 모자랐던 점심시간이었건만, 한솥 도시락과 함께 밥을 씹는 동안에도 책 한번 더 보며 문제를 풀면서 밥을 먹는지 종이를 씹는지도 모른 채 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요식'(料食) 아닌 요식(要式') 행위로 변질되고 말았다.


고3 수능 성적보다 점수가 올랐음에도 가, 나, 다군 줄을 잘못 선 탓에 셋 다 떨어지는 참변을 겪고 삼수생의 길목에 들어서고 말았다. 한솥 도시락에 문제집 쌈 싸 먹는 점심을 1년 더 먹어야 했다.


빛 한줄기 보이지 않던 어두운 터널을 터덜터덜 걷다 보니, ‘어쩌면 내 인생엔 없을지도 몰라, 너란 대학’에 겨우겨우 문 닫고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욕인지 칭찬인진 모르겠지만 양반 소리 꽤나 듣는 '기자 양반'이 됐다. 글쟁이질 10년 만에 기술 스타트업으로 이직도 하면서 서울대 나온, 해외 유명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같은 회사에서 출퇴근하며 한솥밥 먹고 있다.


회사 안팎으로,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고연봉을 받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버는 만큼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들은 밥 먹는 시간도 쪼개서 일하느라 책상에서 인스턴트로 때우곤 한다.


예전에 업계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한 언론사 기자가 일을 관두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1년 동안 나에게 쓴 돈이라곤 치킨 값밖에 없더라"


통장 정리를 하다가 현타가 왔다고. 그 길로 사표를 내고 님은 떠났다. 살다 보면 ‘인생에도 볕 들 날 있겠지’ 꾹꾹 누르며 살았건만 갈수록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업계에서, 개천에서 용났더니 용은 커녕 계속 몸뚱이를 갈아 넣어 용가리 너겟이 되고 싶진 않았던 것일 테다.


모든 언론사가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업계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top 3 언론사에 들어가려면 SKY 졸업장이 큰 역할을 한다. 솔직히 기자란 직업은 두뇌의 명석함보다는 끈질게 물고 늘어지는 집념과 잠 좀 덜 자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열정, 알량할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명감을 더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여전히 시대는 성적을 요구한다.


비단 언론사뿐이랴. 어디나 마찬가지다. 블라인드 테스트라고 하지만, "몇 호선 타고 학교 갔어요?" "학교 끝나고 근처에 주로 어디에 갔나요?" 등 교묘한 질문들로 출신 학교를 알아내고 여전히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를 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어렸을 때라 내용은 조금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 강렬했던 제목은 뇌리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시험을 못 봐서 혼날 때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요"라고 대들었다가, "시험을 못 보니 행복을 알 턱이 있나?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그런 소리나 하지" 등짝 스매싱만 날아오곤 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다니고 싶은 직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 한다고 해서 선택지가 없는 건 절대 아니다. 행복으로 가는 인생길에는 수능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길 말고 다른 길도 무수히 많다.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점수를 두고 그렇게나 슬퍼했고, 좌절했고, 루저가 된 듯했다. 대학을 못 가는 순간, 내 인생은 끝나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한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것도 인생이었다. 그것도 고작 대학 서열, 수능 점수로 고귀한 한 생명을 판단하기엔 100페이지 인생에서 기껏해야 대여섯 페이지 아닌가.


"아흔서너 페이지는 어떻게 살 건데?" 100세 인생이라치고 앞으로 대략 60페이지 남은 인생, ‘무얼 해야 너는 더 행복하겠니' 수능 성적, 승진 순번이 진짜 내 행복에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며 인생은 일상 곳곳에 김떡순 같은 행복을 숨겨 놓는다.


분명한 건 지금 나를 가장 큰 절망으로 빠뜨리는 건 고 3 때 수능 점수도 연봉도 아닌, 둘째 낳고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 '몸무게'라는 것과, 아이가 먹다 남은 밥을 삭삭 긁어며 '이러니 살이 빠질 일이 없지' 푸념하면서도 유치원 밥보다 맛없는, 엄마가 해준 밥을 스무 숟가락씩이나 먹어주는 아이를 보면서 하루의 피로가 풀리.. 지는 않지만, 너를 낳지 않았으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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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에 가도, 이 돈이면 갈비탕을 먹지 하는 떡볶이, 김밥, 순대를 먹어도 학창 시절 웃음에 점철된 김떡순 맛은, 어딜 가도 찾을 수가 없더라. 교복에 떡볶이 국물이 튀거나 말거나, 전투적으로 먹다가도 떡볶이 하나 남았을 때 '니 먹어라' 양보하고, 순대나 김밥 꼬투리를 딱 잡고, 그릇 가장자리까지 야무지게 돌려가며 거의 그릇을 설거지하다시피 떡볶이 국물을 찍어 먹었던 그 시절. 그때보다 돈도 많이 벌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지만, 그때만큼 마음 편하게, 즐겁게, 따뜻하게 밥을 먹는 때가 일 년에 얼마나 되는가 싶다.


좋은 대학 나오고 성공이란 길목에 들어서더라도, 제 아무리 많이 먹어야 세 끼다. 성공하면 소고기 묵겠지만, 삼시 세끼 삼백육십오일 소고기 먹었다간, 이 좋은 세상 병원에서 보내다 이별해야 할지어다. 무엇을 얼마나 먹는 게 아니라 길거리 떡볶이 한 접시를 먹더라도, 누구와 먹느냐가 행복을 결정하겠지. 예전에는 불맛 떡볶이도 잘 먹었건만, 요새는 매운 걸 먹으면 밤잠을 설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김떡순은 떠나고 없지만,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또 다른 김떡순은 무엇일까.


아. 내일 점심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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