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이 가슴으로 가면 좋겠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괜찮은 사람이다

by 기자김연지

많은 여성이, 아줌마라는 길로 접어들면서 "내 인생 끝났다"고 느끼곤 한다. 거울을 보다 달라진 모습에 울분이 차올라 "내 인생 돌려놔"라며, 소파에서 TV보고 있는 남편(이라 쓰고 동거인이라 말하는) 멱살을 붙잡기도 한다. 그런다고 내 인생 환불된다면 내 남편의 멱살은 이미 모조리 뜯기고 처참히 찢어져 사라졌으리라. 잘 나가던 나를 이 꼴로 만든 동거인을 탓한들, 나만 답답하고, 칼로 물을 베는 헛된 일만 반복될 것이다.


첫 아이를 낳고 여기저기 터지고 옷 밖으로 굳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살,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뱃살이 가슴으로 가지는 않을까' 축 늘어지며 쪼그라든 가슴을 보며 뱃속에 있던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을 뿐인데 어째 내 인생은 여기저기 얻어터지고 쭈그렁 망태기가 된 것 같은 우울감을 지울 수 없었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여성에서 엄마로 가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최전방에서 후드려 맞았던 나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을 통계학적으로 증거를 보태며 둘째를 낳고 워킹맘으로 살고 있다.


첫째는 결혼 5년 만에 귀하게 얻은 딸이었다. 100일도 되지 않아 "내 인생은 끝났다"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다. 둘째를 낳은 지금, 내 인생은 아이들 덕분에 빛난다고 생각한다. 처녀 시절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신기하게도 남매를 키우면서 내가 배울 때가 더 많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겸손함을 늘 심어주는 동시에, 동시대적 사람들에 비하면 순수하다 생각했던 내 뒤통수를, 때 묻지 않은 동심이 아주 제대로 휘갈기곤 한다.


애 둘을 키우는 건 두 배가 아니라, 네 배가 더 힘들다곤 한다. 솔직히 16배는 힘든 것 같다. 특히 두 아이가 아프면,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만큼, 버겁고 지친다. 일단 아이가 아픈 걸 보는 것만으로도 애가 끓는다. 이러다 행여 잘못되지는 않을까 오만 걱정이 솟구친다. 이 모든 게 다 내 탓 같다. 그렇다고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아픈 아이 눈에, 걱정과 죄책감에 휩싸인 불안한 엄마를 보여줄 수도 없다. 나 역시 지치고 힘든데 힘들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다. 그러면 이 아이들을 누가 돌보나. 어찌 됐든 아이들이 나을 때까지 부모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두 아이가 낫고 나면 엄마 아빠는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에 시달린다.


나 역시 두 아이를 낳고 온 관절이 우두둑, 삐그덕 거리고 허리와 어깨에는 파스가 안 붙는 날이 없다. 그럼에도 행복의 수치로 따지면 아줌마가 된 지금이 16의 16승만큼은 더 큰 것 같다.


엄마라는 새로운 타이틀은, 시지프스의 신화 같은 막말로 '내 숨이 다 하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는 숙제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이 숙제들을 잘 받아들이고 하나하나씩 풀어내기만 하면 순간순간이 숙제가 아니라 축제가 된다는 것을.


자녀를 안 낳는 가구가 느는 요즘,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꼰대 같은 말을 어디 가서 절대 하진 않지만, 스스로는 절절이 느끼고 있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태어난 이래 이렇게 많이 일하고, 도전하고, 배우고, 싸우고, 반성하고, 참고 또 참은 적이 있을까.


"악, 토할 것 같아. 돌아버릴 것 같아. 더 이상은 못해"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해내고 있다.


배달 음식 밀키트로 전전하던 내가, 내 새끼 먹이겠다고 밤새 사골을 고질 않나, 머리털 나고 쿠키 한 번 구워본 적 없던 내가, 집에서 아이와 쿠키를 만든다. 데코레이션도 하고 포장지도 사 예쁘게 담으면서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던 잠재력과 더 큰 가능성도 발견한다.


아이가 아프면 일주일 내리 못 자도 '닥치면 또 다 한다고' 낮엔 애 안고 일하고 밤엔 눈 비비며 젖은 수건으로 닦아가면서 어찌어찌 다 해낸다. 외제차여만 바퀴가 굴러가는 건 아니니까. 굴렁쇠면 또 어떤가. 어차피 인생이 여행이라면, 다소 둘러가더라도 시간이 한참 더 걸리더라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경험하고 천천히 머물다간 여행이 추억도 많고, 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엄마가 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다"


결코 그렇지 않다. 엄마가 된다고 내가 사라질 일은 결코 없다.


의미 없고 생각되는 건


그냥, 기분 탓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쪼그라트린 것뿐이다.


아이가 없을 땐 내가 하고 싶은 거, 어떤 제약도 없이, 밤낮 상관없이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었을 뿐.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엔 엄청나게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다가, 출산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지 않은가. 회사 대표였는데, 아이를 낳자 직원들이 나가라고 했다거나, 갑자기 회사가 망해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한다거나 전쟁이 났다거나 더 이상 지구가 돌지 않는다거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저 나 자신이 '성공'이라는 비교 선상에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과 집에만 있는 사람을 뒀을 뿐이다. 활동 반경이 다소 줄었을 뿐, 나는 그대로다. 그 안에서도 뭐든지 할 수 있다. 지금도 하고 있고.


내가 사라진 것 같다고?

그럼 지금 당장 카드 영수증을 꺼내 보아라.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고 정주영 회장님이 그러셨다.

"사람은 나쁜 운과 좋은 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좋은 운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운이 들어올 틈이 없다.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게으르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운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운이 나빠지는 것"이라고


이것만은 꼭 알았으면 한다.


엄마가 된 것만으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엄마가 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충분히 다 하고도 넘친다는 것을. 엄마가 스스로를 부인하려 할 때 아이는 ‘엄마는 내 세상이고 내 우주‘라며 삼라만상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뭐할 때 가장 좋아?"


아이의 대답은 지금도 눈을 뜨겁게 한다.


"엄마가 사랑해줄 때"


나중에 "스마트폰 사줘, 00 패딩 사줘"하며 등골 빼먹는 날도 오겠지만, 머리를 콩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아이가 얄밉고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아이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주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는 내가 하는 손짓 하나하나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활짝 웃고 입이 삐쭉거리고 미소 짓고 행복해한다 내가 의미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 느낀다면, 이 아이는 의미 없는 존재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셈이다. 대를 이어갈 비극을 뭣하러 내 손으로 쓰려하는가.


”하루종일 바쁜데 돌아보면 해둔 게 없어“


많은 엄마들이 절망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엄마가 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이 밥을 먹이고, 치우고, 기저귀를 갈고, 청소하고, 다치면 약 발라주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주말엔 나들이 가고, 자기 전에 함께 책 보고.. 조금 전까지도 내가 한 것들, 그 모든 육아 건 살림이건 그 모든 것들의 일종의 '성취, 성과'라는 게 당장 눈에 띄지 않는 것뿐이다.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처럼 어떨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이런 잡무(?)들로 나의 소중한 하루를 채워야 하고,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내가 사소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조금도 사소하지 않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한 아이를 내 품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길러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씨앗이 토양과 물과 햇빛 속에서 싹트고 꽃 피우듯 아이는 엄마가 쏟아붓고 주무르고 다져주며 형성된 토대를 발판으로 자라난다.


모래 놀이하는 아이 옆에서 삽질하고 양동이에 물 담아 나르는 셔틀을 하는 순간순간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토대는 무척 중요하다. 오은영 선생님이 말씀처럼, 지금의 내 모습은 어린 시절, 부모의 말투 행동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바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 그 말에 어린 금쪽이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세상 모든 금쪽이들이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지 않은가.


엄마가 되면서 인생이 끝난 게 절대 아니다.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할 것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 좌절스러운 이 순간조차 엄마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김밥 옆구리마냥 터져버린 살은 엄마의 훈장, 매일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긴 나날은 방탄조끼만큼 단단해진 심장이 돼 내 자녀들에게, 후배들에게 현실적이면서 애정 가득한 길잡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한 생명을 품고 아이도 낳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내 뜻대로 안 된다는 자식도 키우고 있는데 못할 게 뭐가 있나. 기억하고 기록하고 되새기자.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요새는 그나마 있던 가슴마저 배로 내려온 듯하지만 뭐 어떤가. 뱃살을 쿠션 삼아 포근히 잠드는 둘째를 보면 이 세상 다 내 것 같은 걸. 토익 점수로 영어 실력을 평가하듯, 뱃살 두께로 육아력을 평가하는 시험은 없나. 그럼 엄마들의 자존감 수치가 올라갈 텐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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