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훅' 간다는 불혹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예쁘다 [장르는 아줌마]

by 기자김연지

첫째가 두 돌 조금 안됐을 때다. 모래놀이에 세계에 맛 들인 딸과 함께 공원에서 열심히 흙을 파고 있었다.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딸아이 옆으로 다가왔다. 딸아이의 포클레인이 마음에 들었던 녀석은 나를 보고 말했다.


"아줌마, 저도 이거 좀 갖고 놀아도 돼요?"


쭈그려 앉아 있던 나는, 태풍을 정통으로 맞은 듯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손으로 입을 막으며 깊은 들 숨이 한가득 들어갔고, 입을 막은 손은 곧 빠지기라도 할 눈알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줌. 마. 라니!)


포클레인을 써도 되느냐고 묻는 6살짜리에게 , "어머 얘, 이모라고 불러주면 안 되겠니?"라는 육성이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남편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애한테 할 소리다'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모를 부르짖는 여성의 남편임을 부인하려 했다.


남자아이의 어머니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그래도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엄마 아니면 다 아줌마라 해요"라며 공감 어린 위로를 건넸다. 쪼그려 앉아 어른들의 콩트 아닌 콩트를 지켜보던 그 남자아이는 '이 아줌마가 뭔 소리를 하는 건가, 그래서 포클레인을 써도 되냐 마냐'는 눈빛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쭉 내민 채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집안 내력으로 동안 유전자를 타고난 덕에 (호빗 유전자도, 대대로 큰 머리도, 동안 이미지에 한몫한다. 키가 작단 얘기다) 어딜 가도 '애 엄마로 안 보인다, 결혼 안 한 줄 알았다'는 얘기를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밥은 먹었니?" 만큼이나 많이 듣던 나로서는 십 대들의 우상 H.O.T 오빠들의 해체 이상의 충격이었다. 더 이상 유전자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그루터기가 보이는 것인가.


나이야 가랏~ 뿌에에엥!!!!!!



내일모레면 '불면 훅' 간다는 불혹이다



고2 점심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깐 졸았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2초 만에 20년 뒤로 온 것 같다.


여고 시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클린 앤 클리어 콤팩트를 교실 뒷문 앞 거울 앞에서 친구들과 돌려가며 뺨에 두드려도 보고, 아가씨 구두를 신으면 '아가씨가 될까', 용돈을 모아 지하보도에서 몰래 산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갔다가, 교문에서 걸려 혼나고 신발 뺏기고, 그 짧은 찰나 신었건만 발뒤꿈치만 시뻘겋게 까져서 삼선 슬리퍼를 신고 터덜터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말을 들었던 스물다섯엔, 25살이란 나이는 반짝이는 햇살이 아닌 아련해지는 저녁노을 같은 거라 생각했다.



'여자 나이 연말까지는 그래도 괜찮지. 연말에도 케이크는 팔리잖아'라는 (요즘에는 큰일 날) 얘기에도 (그런 문제의식을 갖기보다는) 내 나이 서른이 되면 화석이 되는 줄 알았다.


서른을 넘기고도 기어코 바스러지지 않고 버텨낸 서른다섯의 나란 화석은, 어떻게든 화석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일 년, 아닌 1분 1초라도 어려 보이는 화장과 코디로 "어머 그 나이로 안 보여요"라는 듣고야 말겠단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데 아줌마라니



팔자주름에 파운데이션이 꼈을 때보다, 정수리에 흰 머리카락이 봉긋 솟아올랐을 때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그날의 날씨와 습도, 공원의 소음, 흙 내음이 기억나리만큼.


누가 내 시간에 모터를 달았나. 나이에 따라 가속도가 붙는다더니 … 스우파에서 “잘 봐 언니들의 싸움이다”하는데 어째 다 아우님이신지. ‘그래, 멋있으면 다 언니야. 괜찮아’ 스스로를 위로했다.


스맨파 댄서들도 “오빠~”라고 부르고 싶지만 남성미 뿜 뿜 하는 상남자 댄서들마저 띠동갑이거나 그보다 더 어리다. 국군의 날, 군인 아저씨께 삐뚤빼뚤 편지 쓰던 여학생이었건만, "멋있으면 다 오빠" 했다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바리케이드를 칠 듯하다.




이제는 누가 뒤에서 '아줌마'라고 부르면 나도 모르게 돌아본다. 마치 삼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을 때, 신입생인데도 불구하고 '누나'라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 다 나를 부르는 줄 뒤돌아보던 때처럼 말이다.


그럴 것도 없이, 이제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간다. 이 아이들은 '아줌마'라는 명함에 경계하지 않는다. 바리케이드도 치지 않고, 뒷걸음질 치지도 않는다.


"얘들아 아줌마가 사탕 줄게, 우리 애한테 공 한 번만 차 줄래?"


"네 그럴게요. 아줌마 부탁이니까"





애써 어려 보이지 않으려 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


서른여덟. 만으론 서른일곱. 스물일곱 때보다도 굳이 어려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화장하는 시간, 그리고 화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화장 지우는 시간마저 아까운 탓도 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


"몇 개월이에요?"라는 한 마디로, '저스트 텐 미닛'만에 연락처까지 따올 수 있는 사교성 만렙 아줌마가 됐다. 돈 벌겠답시고 지방에서 올라와 고시원에서 사는 어린 후배들을 보면, 고기 좀 씹게 해 줘야 마음이 놓이는 오지라퍼가 됐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나무라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사정이 있었겠지" 긴장된 삶 속에서 잠깐 숨 돌리고 갈 수 있는 그늘 아래 그루터기가 돼 가고 있다. 우리 식구 정도는 모두 품을 수 있는 소파처럼 말이다. ‘불면 훅’가는 게 아니라 ‘불면 훅’ 치고 들어가 그 불안한 마음 터놓을 수 있게 두 팔 벌려 주리라.


아줌마 하면 흔히들 '억척스러운' 이미지로 묘사 돼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엄마는 늘 잔소리만 하지만) 남의 엄마, 즉 아줌마들은 세상 친절하다. 첨 보는 아이에게도, 자기 딸이 가지고 놀던 것을 건네며 "같이 놀라”하질 않나. 우리 엄마도 내게는 그리도 인색한 간식도 친구들 오면은 마트에서 온갖 초콜릿 과자들을 쓸어바치곤 했으니.


억척스러운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 우리 가족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킨다"는 강한 의지와 열정으로 외계인들도 무서워서 지구에 오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중2, 나아가 MZ에 이어 알파벳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가고 있으니. 10년, 20년을 같이 살아도, 다른 건 그렇게 잘하면서, 밖에서는 그렇게 척척박사면서, 곧 죽어도 마누라 속만은 모르는 검은 머리 짐승도 두루 보살피면서 말이다.


아줌마가 된다는 것은 이런 건가 싶다. 아가씨 때는 생각도 상상도 못했다. 이런 게 아줌마라면, 아줌마는 참으로, 꽤나 괜찮고 멋지고 근사한 직업이 아닌가.




고운 아줌마가 되고 싶다


결이 고운 아줌마가 되고 싶다. '곱다'는 형용사에는 외적인 것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꼰대가 되지 않고, 성숙한 어른 여성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우정, 사랑, 사제 관계, 입시, 취업, 결혼, 육아 등 수많은 인생의 고비고비에서 라테 말고, 진심 어린 조언과 애정 가득한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친근한 아줌마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긴장한 승모근에 힘을 빼주고, 혼자라고 느낄 때 어깨를 감싸 줄 수 있는 그런 어른 아줌마로 나이 들고 싶다.


아줌마가 어때서. 나는 내가 아줌마여서 좋다.


아 -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구나를 깨닫고 세상에 겸손해져서

줌 - 줌 인, 줌 아웃을 적재적소에 해가며

마 - 마지막 뒷모습까지도 아름다운 사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예쁘다.

나 있는 그대로 근사한 아줌마니까


<나의 아저씨> 속편 <나의 아줌마>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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