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금수만도 못하다는 언론사 수습 시절 일명 '마와리'(은어 죄송합니다)라고 경찰서 라인을 돌며 사건을 챙기는 훈련(?)이 시작됐다.
**여기서 '라인'이란, 서울을 크게 네다섯 등분(종로·혜화/강남·서초/강동·성동/영등포·강서/중부)한 지역을 뜻한다. 수습기자들은 각자 라인을 배정받고 지역 내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 병원, 소방서, 학교, 시민단체 등을 맡는다. 밤과 새벽엔 경찰서와 지구대, 파출소, 병원 등을 돈다.
새벽 5시가 첫 보고 시간이다. 보고할 게 뭐라도 있어야 하니 새벽 4시, 늦어도 4시 30분부터 경찰서 한 곳은 돌아야 한다. 형사계, 강력계, 교통계, 지능수사팀, 여성청소년과, 사이버수사팀 등의 문을 두드리며 밤새 접수된 사건을 챙긴다. (물론 소득은 거의 없다.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왜 주겠나. 물론 아무것도 보고를 못하면 당연히 혼난다. 깨지면서 배우는 일종의 훈련이다)
수습 4개월 중 2개월은 경찰서에서 먹고 자는 기간이다. 집에는 일주일에 딱 24시간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요일 오후 7시에 퇴근하면 토요일 오후 7시에 복귀하는 식이다.
남은 수습 2개월엔 집에는 갈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매일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밤에도 경찰서 라인을 돈다. 집에 가봤자 새벽 1시, 2시다. 그리고 새벽 4시까지 또다시 경찰서로 가야 한다. 그래서 경찰서 의무 숙식(?) 기간이 끝났어도 자발적 경찰서 취침을 택하기도 한다.
이때가 처음이었다. 새벽 4시 첫차를 타본 것은. 당시 첫 차를 타는 사람은 나뿐일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어둠과 쌀쌀한 새벽 공기를 뚫고 첫 차가 정류장에 닿았다. 버스 계단을 딛고 올라서는데, 천근만근이던 눈꺼풀이 번뜩였다.
머리가 꼬불꼬불하고 양 손에는 세월의 억센 주름이 잔뜩 잡힌 아주머니들이 가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머니라기보단, 나의 엄마 또래였다. 자녀들이 제때 시집 장가를 갔다면 충분히 손주를 뒀을법한, '할머니' 소리가 오히려 더 익숙할 수도 있는 분들이었다. 자리가 모두 차서, 좌석을 차지하지 못한 아주머니들은 손잡이를 잡고 그 시간에 서서 가야 했다.
버스 엔진 소리만 들릴 줄 알았던 첫 차는 바글바글했고, 시끌벅적했다. 서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웃음이 빵 터지기도 하면서 새벽 4시 첫차라는 게 믿기 힘들 만큼 생기 가득했다. 버스 안에서 가장 어렸던 내가 제일 지쳐있고 찌들어 있었다.
물론, 엄마들의 미소 속에는 삶의 고단함과 억척스럽게 살아온 지난 난들, 자식 걱정,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 녹아있을 테다.
이분들은 대부분 청소 미화원 분들이시다. 자식뻘인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훨씬 전에, 고객들이 물건을 사러 오기 한참 전에, 깨끗이 치우고 반짝반짝 닦는 분들이다. 건물, 관공서, 지하철 등에서 남들이 잠든 사이, 전날 남기고 간 사람들의 때를 깨끗이 닦아주는 감사한 분들이다.
매일 새벽, 이분들과 함께 첫차를 타면서 에너지를 얻었다.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언제 들어도 정겹기도 했고, 엄마 생각도 났다.
이렇게 세상에 꼭 필요한 미화원분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개선된 조건에서 일할 수 있길,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만큼 더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세상에 필요한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후로 나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청소 미화원들의 열악한 처우와 환경을 수없이 다뤘지만, 1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기자라는 명함이 부끄러울 만큼 그들의 삶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이들의 삶이 조명된 것은 2012년 정의당의 전신인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연설에서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떠난 뒤 더 유명해진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연설에 미화원들의 노고가 녹아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이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이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당신이 피곤해서 못 일어나겠다는 그 새벽에, 넷플릭스 정주행 하느라 미처 잠 못 든 그 시간에, 당신의 상쾌한 출근을 위해 우리 엄마들은 새벽 첫 차에 몸을 맡긴다. 힘겹게 눈 비비고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출근하기 싫다’며 불평을 털어놓을 때, 당신이 흔적을 남긴 화장실 변기를 닦고, 국물 흥건한 컵라면 용기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생리대로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운다.
다른 건 몰라도, "피곤해서 못 일어난다"는 말은 접어두자. 그리고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고맙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따뜻한 인사라도 건네길 바란다. 당신이 깨끗한 계단을 오르내리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건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는, 이들의 기적 같은 새벽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