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다고 해서 ‘살림력’까지 짜잔 하고 느는 건 아니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진 외식에 배달 음식 전전하며 살다 아이가 돌 지나고 나서야, 난생처음 간장 한 통을 다 써본 쾌감(?)을 맛봤다. 이전에는 신랑 미역국 끓여줄 때, 마트에서 사 온 회나 문어 먹을 때 쓰던 소스였다. 유통기한이 다될 때까지 라벨 아래로 간장을 써본 적이 전무했다.
식초도 마찬가지다. 식초란 과일이나 야채 세척용이었기에. 초밥 만들어 보려 마트 갔다가 사과식초, 양파 식초, 현미식초… 무한한 식초 세계에 요알못 선택 장애자는 식겁할 뿐이었다.
10~20분이면 끝나는 식사를 위해 장보고, 세척하고, 다지고, 요리하고, 차리고, 먹고 난 뒤 치우고, 씻고.. 요리는 요알못 워킹맘에게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나 적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여전히 난 백화점 문 닫기 전 ‘세 개에 만 원’ 떨이 패키지를 애용했을 테다.
경력단절이란 단어는 꿈 많고 일 욕심 많은 여성들에겐 공포에 가까운 단어다. 일 잘하는 것과 별개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남편보다 월급이 적다고 해서 꿈의 크기마저 작은 건 아닐 텐데,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상황들로, 몸도 꿈도 집 안에 갇히고 말았다.
아이가 엄마 손을 벗어날 때쯤 되면 다시 전공과 경력을 살리고 싶지만, 몇 년간의 공백을 눈감아주기엔 냉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회사도 여유가 없긴 마찬가지다.
엄마가 되고 난 뒤 가장 부러운 사람은 ‘살림력, 육아력’이 뛰어난 엄마들이다. 환경호르몬 천지인 이 세상에서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음식만큼은 가장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무엇보다 맛있게 넣어주고 싶다. 깨끗한 환경에서 꿈도 쑥쑥 자라게 하고 싶다. 그러나 ‘먹이는 데’만 해도 날새는 데다, 아이 가는 곳마다 장난감 줍줍하며 허리가 나가는 터라 살림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기엔 아직도 ‘겨를’은 부족하기만 하다.
세상에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고, 타발적 전업맘이 됐을지언정 그 속에서 키운 자기만의 요리/육아/청소/수납 등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칼질 몇 번 했을 뿐인데 후다닥 완성되는 기깔나는 음식, 포마드라도 바른 듯 광나는 주방, 미니 아파트를 넣어둔 듯 완벽한 수납을 자랑하는 냉장고를 보면 놀랍고 부럽기만한 재능이다.
그래서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발전’이다.
단지 경력이 바뀌었을 뿐이다.
육아와 가사가 정당한 노동의 가치로 인정받는 그날을 위해.
육아 대디가 늘고 있지만, 육아 대디보고는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육아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육아 대디들은 꽤나 서러울테다.
워킹맘도 늘고 있지만, 워킹맘보고는 "애는 누가 키우냐"는 핀잔이 8:2의 비율로 압도적이다. 애는 뒷전이고 자기 일에나 신경쓰는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데에 보다 포커스를 둔다.
육아 대디가 밑도 끝도 없는 가장의 책임감로부터 해방되고
일하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고, 대단하지도 않고,
당연한 세상이 되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