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를 풀었다. 욕이 나왔다.

by 김현희

학교에서 한 학생이 영어학원 교재를 보여주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섯 개의 보기 중 형식이 다른 문장 하나를 고르는 유형의 문제였다. 학생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영어 수업 내용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수능에 문법 문제가 출제되니 문장의 형식이나 성분을 따지는 수업 내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확인을 위해 결국 내가 직접 수능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20여 년 전 학생 신분으로 본 수능 시험 이후 처음이었다. 타이머를 설정하고, 듣기 평가부터 시작했다.


듣기 문항은 쉬웠고 가뿐히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러나 독해 영역은 차원이 달랐다. 참고로 나는 대학원에서 테솔(TESOL)을 주제로 2년 간 영어교육을 공부했다. 내가 다닌 대학원은 교수진 전원과 학생 대부분이 미국, 영국, 캐나다 출신 외국인들이었고 나는 수업, 과제, 발표, 토론, 논문까지 모두 영어로 수행했다. 특히 각종 학술 자료들을 '읽는' 시간이 많았고 나는 수업 시간마다 텍스트를 비판적,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영어의 일부 지문은 말도 안 되게 어려웠다. 영어 읽기, 심지어 학술 논문 읽기에 익숙한 성인이라도 듣기 평가 포함 70분은 부족한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숨도 쉬지 않고 흡사 기계처럼 문제를 풀어내야 했다.


수능 영어는 언어적으로도 기묘했다. 분명 아는 단어들로만 쓰였지만 맥락이 잡히지 않는 문장들이 많았다.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나의 한계인가 싶어서 미국인인 원어민 교사에게 시험지를 건넸다. 내가 어렵게 풀었거나, 틀린 문항들 위주로 풀어보라고 부탁했는데 결과는 나와 비슷했다. 참고로 내 동료는 저명한 공과대학 출신으로 학생 시절 SAT 점수도 높았고, 졸업 후 SAT 과외 강사 경력도 있는 20대 원어민 교사이다. 동료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너무 어렵다. 멋있게 보이려고 꾸민 문장들이다. 미국 학생들도 쉽게 풀지 못할 거다. 한국인들 대다수가 외국 대학에 진학할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하나."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찾아봤다. 하버드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를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 유학생들, 영국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들이 한국 수능 영어 시험을 풀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을 확인했다. 반응은 비슷했다. '난해하다, '장황하다', '불필요하게 긴 단어들', '극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표현들', '이 단어가 이런 용례로 쓰인 걸 태어나서 처음 본다', '비현실적이다', '실제적인 언어 사용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등이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방송인 타일러는 문장의 짜임새를 지적하며 "수능 영어는 영어가 아니다"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출제위원들이 유의어 사전을 이용해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을 억지로 늘어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인데 영어 같지 않다, 한국어가 한국어 같지 않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다양한 예시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인간의 본성과 결코 무관한 것이 될 수 없는 대상을 탐구하는 것들과 관련해서 억지로 무관심한 체하더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다. 또한 저 헛된 무관심주의자들이 학술적인 용어를 통속적인 어조로 바꾸어놓음으로써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위장하려고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단지 무언가를 생각하는 한, 자신들이 대단히 경멸한다고 외쳤던 바로 저 형이상학적 주장들에 다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서문 中)

추상적, 전문적, 학술적인 내용 등은 배경지식이 없을 시 이해하기 어렵다. 번역체의 영향도 있다.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2015년 청와대 국무회의 시작 전 대통령 발언)

쉬운 단어들인데도 외계어처럼 보이는 경우다. 일단 비문 투성이고, 언어에도 격이란 게 있어서 외화내빈의 정도가 극강에 이르면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들은 후덥지근하고 호감이 가는 호모 사피엔스이며 등신대의 대동맥 염통을 가졌다.
They are humid, prepossessing Homo Sapiens with full-sized aortic pumps.

원래 문장은 'They are warm, nice people with big hearts'(두 사람은 넓은 마음을 가진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이다)이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대사인데, 극 중 인물인 조이가 유식해 보이려고 유의어 사전을 이용해서 위와 같은 괴상한 문장을 만들었다. 성공적인 의사소통은 적절한 어휘 선택뿐 아니라 적절한 맥락과 구성을 통해 이뤄진다는 걸 보여준다.




영어의 주인은 영어 원어민이기 때문에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좋은 영어가 아니라는 차원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원어민 중심 이데올로기로의 문제는 내가 앞으로 꾸준히 논의할 주제이다. 또 사실 좋은 언어, 좋은 영어는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언어의 효율성, 기능성 측면에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언어, 불필요한 혼란만 일으키는 언어,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 언어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수능 영어 지문을 여러 기준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수능 영어 지문의 기술적, 기능적 측면들은 뒤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수능 영어 시험의 교육적 가치와 윤리에 대해서만 생각해 본다.


나와 원어민 교사 둘 다 오답을 택했고, 심지어 정답을 확인하고도 한동안 고개를 갸웃했던 어떤 문항이 있었다. 반복해서 읽다 보니 한 문장이 보였다. 그 문장은 전체 글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고, 맥락에서 살짝 어긋나지만 크게 눈에 띄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긴 지문에서 해당 문장 혹은 단어 하나를 놓치면 오답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문제가 설계되어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수험생을 '틀리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로써 그곳에 있었다. 그 의지를 깨닫는 순간 내 입에서는 현실 욕이 튀어나왔다.


좋은 작가, 즉 독자에 대한 예의와 진정성을 갖춘 작가는 명료하고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다양하고 활력 있는 산문을 쓰려고 노력한다. 종종 반전 효과도 노리지만, 그 반전의 목표도 궁극적으로는 독자의 이해, 성찰, 즐거움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품격 있는 교육과 평가는 학생들에게 어려운 과제, 곤란한 질문을 주더라도 저변에는 이를 통해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려는 의지가 있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도록 이끄는 것과, 틀린 답을 고의적으로 유도해 패배를 선사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비판적 사고능력과 꼼수를 찾는 능력 역시 결코 같지 않다. 해당 수능 문항에서 내가 느낀 건 그저 순수한 '악의'였다.


교실 수업 중 학생들이 학습 내용에 혼란을 느끼면 나는 주저 없이 그러나 전략적으로 도와준다. 예를 들어 게임이나 형성평가를 하다가 어떤 아이들이 12월을 Desember라고 쓰면 ''스' 발음이 나는 철자가 s 말고 또 있다'라고 하며 칠판에 'ice'라는 단어를 써주는 식이다. 일부 아이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항의하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골탕 먹이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다. 모든 활동의 목적은 더 재밌고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평가는 여러분을 엿먹이기 위해 존재한다. 랭킹을 매기기 위한 조잡한 게임, 시험을 위한 시험도 있다. 그간 영어 시간에 내가 자주 말해왔던 의사소통, 성장, 세계시민의 연대 같은 건 잠시 잊어라."




언어의 효용성, 기능성 측면에서 수능 영어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 수능 영어는 그저 시험을 위한, 그것도 수능이란 특정한 유형의 '시험을 위한 영어'일 뿐이다. 원어민들이 수능 영어 시험에서 고전하는 영상 아래에 달리는 한국인들의 댓글만 봐도 수능 영어, 나아가 한국 영어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임을 알 수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어차피 진짜(?) 영어는 학원이나 어학연수 등의 사교육을 통해 따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교육 기관의 교사인데도 부끄럽지만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다. 단 이는 학교나 학부모, 정책만의 문제라기보다 한국의 언어 환경, 역사, 인구 규모 등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짚어나갈 사안이다.


더 큰 문제는 12년 영어 공교육의 축도이자 나침반 역할을 하는 수능 영어 시험이 교육적 맥락에서도 최악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수능은 당연히 영어 공교육과 사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교육부가 제시하는 국가수준 교육과정과 수능의 방향이 달라 교육과정, 수업, 평가가 분리된다. 물론 수능 시험의 특성상 선별 기능과 변별력도 무시 못할 요소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태의 문제들로 변별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엄청난 시간 압박 속에 빠르게 지문을 읽고,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능력이 전부다. 이런 능력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어떤 역량으로 전이되는지를 파악하는 것보다, 이런 훈련이 장기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파악하는 게 더욱 빠를 것이다. 다른 언어, 문화를 통해 소통과 성장을 꾀하는 언어 교육의 본질과 아무 관련이 없음은 물론이다.


여력이 없어 다른 과목들은 풀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영어 교육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본 수능 영어시험은 모든 면에서 엉망이었다. 언어 공학, 언어 기능의 측면은 물론이고 해당 교육의 본질에 비춰볼 때 타당도, 신뢰도는 물론 최소한의 윤리성조차 갖추지 못했다. 결국 20여 년 만에 다시 본 수능 영어 시험은 내게 충격과 미안함, 부끄러움만 남겼다. 한편 작년 수능 직후 언론은 영어 1등급이 12%가 나온 것을 들어 이래서야 시험의 변별력이 있느냐고 질타했다. 수십 년째 한국인들은 내신영어, 수능영어, 실생활 회화를 따로 공부하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영어능력 만족도가 낮은 상황인데, 사회적인 피드백은 여전히 '아 됐고, 끝까지 줄만 세워'이다. 학생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야 할 주체가 오로지 학교나 교육당국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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