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업 중 교실에서 초3학년 아이가 칠판을 가리키며 손을 들고 물었다. "선생님, 저거 꼬리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가 칠판을 보고 단어 몇 개를 공책에 적다가 내가 쓴 알파벳 'g'를 가리키며 꼬리를 어떻게 올리는 거냐고 묻는 거였다. 나는 '3학년은 무조건 기초부터'라고 속으로 되뇌며 학생 공책에 g를 여러 번 반복해 쓰며 방법을 보여줬다. 학교 영어 수업에서 수준 차는 늘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3학년 영어교과의 국가수준교육과정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배운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실제 3학년 때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대다수 학생들이 학원, 유치원, 학습지 혹은 소위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 등에서 영어를 접한 상태로 학교 영어 수업을 시작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아이들이 처음으로 영어를 접하는 연령은 평균 만 3.7세다(참고 1). 그러나 대부분 알파벳 정도는 우스워하고, 활동도 곧잘 수행한다고 느슨하게 봤다가는 학습부진을 초래하기 딱 쉬운 교과가 영어이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고 초등학교 영어 수업은 3-4학년 주당 2시간, 5-6학년은 3시간이기 때문에 한글 익히기에 비해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6학년 학생들 중에는 학원에서 이미 중고등학교 수준의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도 많지만 알파벳도 익히지 못한 상태로 6학년에 올라온 아이들도 한 학년에 몇 명씩 꼭 있다. 그래서 학생들 간 이미 심대한 격차가 벌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 공부와 수업을 오래 해 온 입장에서 멀리 보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격차다(3학년이 6개월 걸려 배울 파닉스를 6학년은 1주일이면 익힌다). 문제는 '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속의 '마음'에 학생의 가정환경 즉 부모의 사회경제, 문화 자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이고 그래서 교사로서 내 마음도 복잡해진다.
영어 학습은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개인적인 입장을 먼저 밝히자면 나는 영유아 대상 영어교육에 회의적이다. 소위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도 득보다 실이 많다고 보는 입장이다. 초3부터 시작되는 영어 공교육 시스템에도 초등교사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1997년 초등 3학년에 영어교과가 도입되었지만 영어 공교육의 성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영어 사교육 시작 연령은 통계적으로 확연히 낮아졌고, 초등학교에서부터 영포자가 나타나는 실정이다. 영어 학습 시작 시기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가 따져보아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만 '카더라 통신', 산발적인 사례가 아닌 과학적이며 교육적인 확고한 증거와 이론들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수영, 스케이트, 외국어 무엇이든 어릴 때 배울수록 빠르고 쉽게 배운다는 말을 흔히 한다. 예를 들어 스케이트를 배우더라도 어릴수록 몸이 유연하고,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더 잘 배운다는 식이다. 얼핏 맞는 말 같지만 확고한 명제로 성립하긴 어렵다. 일단 성인이 된 이후로도 스케이트를 무리 없이 배운 사례가 수없이 많다. 또 스케이트를 취미나 스포츠로서 즐기기 위함인지 혹은 프로선수를 양성하기 위함인지 등 그 배움의 목적도 고려해야 한다. 어리면 무조건 유연하고 두려움이 없다지만 학습자의 성향과 처한 환경은 다양하다. 경우에 따라 어린 시절의 좋지 않은 경험과 기억으로 평생 빙판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렇듯 얼핏 맞는 말 같지만 '아니면 말고'식의 설들이 교육계 특히 영어교육 분야에서 활개를 친다. 영어는 무조건 어릴 때 배워야 좋다는 말이 도시괴담처럼 떠돌아, 이제 겨우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백, 수천만 원 상당의 전집과 학습자료들이 팔린다. 흔히 '영유'라고 불리는 영어유치원은 사실 정규 유아교육 기관이 아닌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다. 원어민 교사의 교육적 자질 문제, 높은 교육비, 영어 조기 교육의 효과성에 대한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영어는 무조건 일찍 배워야 좋다'는 통념을 뒷받침하는 가설은 두 가지 정도다. 첫째는 '결정적 시기 가설' 둘째는 '간섭'의 영향이다.
결정적 시기 가설 (Critical Period Hypothesis)
결정적 시기 가설이란, 인간의 언어 습득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어서 이 시기를 놓치면 언어를 배우지 못하거나 어렵게 배우고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구사하지도 못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1967년 미국의 언어학자 에릭 레네버그(Eric Lenneberg)가 '언어의 생물학적 기초'(Biological Foundation of Language)란 책에서 언급했으며 Penfield, Scovel 등의 학자들도 이 가설에 해당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신경생리학적 측면에서 뇌의 가소성에 집중한다(참고 2). 뇌의 유연성은 사춘기 무렵부터 떨어지므로 그 이전이 언어교육의 적기라는 것이다. 유명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도 인간은 '언어습득기제'인 LAD(Language Acquisition Device)를 지닌 채 태어나며, 이는 5-6세 무렵 가장 왕성하고, 사춘기 무렵부터는 쇠퇴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언어 교육계는 물론 특히 한국 민간의 영어교육 통념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결정적 시기 가설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예는 야생아 빅터(Victor), 20세기판 미국 야생아로 불리는 지니(Genie)의 사례다. 1797년 프랑스에서 빅터는 발견 당시 나체 상태였고 당시 1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었다. 프랑스 정부의 지원, 의사 장 이타르의 5년간에 걸친 보살핌과 교육이 있었지만 그는 끝내 정상적인 언어를 습득하지 못했다. 1970년 미국 LA 근교에서 발견된 지니(Genie)는 생후 20개월 이후 생부에 의해 방에 갇힌 상태로 살다가 13세 무렵 도시 한복판에서 발견되었다. 지니 역시 전문적인 언어 교육에도 불구하고 연령에 걸맞은 언어능력은 발달시키지 못했다. 이 사례들 이후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사춘기 무렵이 지나면 정상적인 언어 습득이 불가능하다는 가설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결정적 시기 가설은 끝내 가설로만 남았다. 빅터와 지니는 여러 조사 결과 애초 언어 습득이 어려운 정신지체 내지 자폐아였을 가능성이 높았다(참고 3). 생물학적 나이만이 변수가 아니었단 뜻이다. 결정적 시기 가설을 제시한 레네베그는 '언어 노출로 자연스레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은 사춘기 이후 사라지고, 이후 언어를 배우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며, 배우더라도 고유의 악센트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은 40세가 넘어도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참고 2). 촘스키 역시 성인의 경우 LAD는 별 의미가 없음을 피력하며, 성인도 언어 습득이 가능하고 오히려 논리력과 수학적 사고 능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언어습득기제인 LAD는 사춘기가 지나면 사라진다'는 주장만큼 선명하고, 충격적이지 않아서인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결정적 시기 가설은 '모국어 습득' 과정을 배경으로 탄생한 '가설'이란 사실이다. 즉 주로 언어장애를 연구해 온 학자가 세운 모국어 습득 능력에 대한 가설이 한국에 수입되는 과정에서 '특정 시기를 놓치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할 수 없으므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정설로 둔갑했고, 사교육업계의 주요 마케팅 전략이 된 것이다. 이는 하루라도 빨리 영어를 시작하지 않으면 내 아이가 뒤쳐질 수 있다는 양육자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했으며 심지어 국가의 공교육 시스템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간섭 : 정서적인 결정적 시기
'아이들은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서 어른보다 스케이트를 잘 배운다'는 통념은 언어교육의 '간섭 이론'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간섭'이란 어린아이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원래 쓰던 언어의 간섭 현상이 덜하므로, 어릴 때 외국어를 배워야 두 언어를 동시에 습득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Penfield, Guiora와 같은 학자들은 사춘기 이후 인간의 자아는 방어적으로 변화하므로 그 이전에 외국어를 습득해야 한다고 봤다(참고 4). 실제 한 가족 전체가 외국에 이민을 갔을 때, 어른인 부모보다 아이들이 더 빨리 유창해지고 발음과 억양도 원어민 같더라는 경험적 근거들이 쉽게 발견되면서 통념으로 굳어진 경향이 있다.
이러한 주장에 경험적 일리가 있더라도 이를 한국 영어교육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ESL 환경과 EFL 환경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ESL'이란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준말로 제2언어로서의 영어를 뜻한다.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간 상황에서의 영어 환경을 연상하면 쉽다. ESL 상황의 학습자들은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영어를 접한다. 대중매체, 거리 표지판, 학교 수업, 주위 사람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끝없이 영어에 노출된다. 'EFL'은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즉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뜻한다. 이런 환경에서 학습자는 학교나 학원의 영어 수업시간처럼 학습을 위해 특별히 조성된 환경이 아닌 이상 영어 노출이 제한된다. 이 두 가지 학습 상황은 완전히 달라서 영어 교육계에서도 ESL 은 습득(acquisition), EFL은 학습(learning)이란 용어로 구분해서 사용한다.
한국은 당연히 EFL 상황이다. 인위적인 학습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영어를 배울 수 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EFL 학습환경에서는 같은 학습 시간 대비 어린아이보다 청소년과 성인의 영어 학습 성취도가 훨씬 높다. 흔히 발음만큼은 어릴 때 배울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수년 전 시행됐던 교육부 정책연구 결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4세, 7세 아동을 대상으로 같은 시간 동안 영어교육을 진행하고 단어, 문장 기억, 문장 활용 등을 평가한 결과 4세 아동들은 평균 29.9점, 7세 아동들은 60.0점을 얻었다. 발음 역시 7세 아동들이 더 정확했다. 4세 아이들은 한국어 발음조차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참고 3). 심지어 ESL 상황 즉 영어권 국가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능력에 있어서도 생물학적 나이는 절대적인 변수가 아니다. Hakuta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미국에 이민 온 지 10년 이상이 된 230만 명의 이민자들의 영어능력을 조사한 결과 영어 사용 기회, 영어 노출 정도, 교육 수준에 따라 영어 능력은 달라졌다. (참고 5)
결론적으로 학계에서는 한국과 같은 EFL 상황 즉 인위적인 영어학습 환경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모어 능력과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 발달한 학습자의 성취도가 더 높다는 관점이 정설이다. 분석적, 추상적 사고력 등의 도움을 받아 언어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교육사상가인 Ausubel 역시 성인과 아동은 언어 학습 측면에서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아동은 유연성, 기억력, 발음 면에서 앞서고 성인은 모국어를 통해 익힌 추상적 어휘를 새로운 언어 습득에 적용하는 능력에서 앞선다고 밝혔다(참고 6).
내가 학교에서 수년간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며 겪어온 경험적 사례들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6학년 학생은 3학년 학생보다 빠르게 배우고, 노력하면 발음도 얼마든지 정확해질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아이들이 영어 사교육을 받고 오는데서 오는 정서적 위축, 가정의 학습환경의 뒷받침 등 고려할 변수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언어 환경에서 6학년 아이가 3학년 아이에 비해 영어 학습면에서 불리하다는 증거는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내 경험상으로도 결코 사실이 아니다. 실제 언어발달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간의 측두엽은 12-13세경 가장 발달한다. 영유아기의 과도한 외국어 교육은 스트레스 증후군을 유발하고 학습 기억, 신경세포 회로 형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이 잃고 있는 것들
얼마 전 TV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한 배우의 5세 아이의 유치원 생활 장면이 공개됐는데 그 유치원에는 영어 원어민 교사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아이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원어민 영어교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What is this one? Is it ribbon?" 아이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원어민 영어교사가 아이에게 재차 말을 걸며 다가가자 아이는 결국 자리를 피했고 친구들에게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사전 인터뷰에서 아이의 엄마인 모 배우는 '아이가 영어를 잘 하진 않겠지만 원어민 선생님을 피하거나, 영어에 거부감은 없을 것이다'라고 추측했지만 아이는 원어민 선생님이나 영어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고, 의미 있는 언어적 의사소통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간식 시간이 되었다. 사전 인터뷰에서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수프를 먹지 않을 것이다'라고 추측했지만 아이는 한국인 선생님이 수프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수프를 먹고 싶다고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어요, 엄마가 안 사 와서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아이의 말에 호응하자 아이는 "수프는 건강에 좋아요", "내가 먹는 거 봐요", "너무 맛있어서 떨었어요"라고 말하는 등 원어민 교사와 있을 때와 달리 다양한 의사표현을 했다. 만약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도 영어 원어민이 아닌 한국인 교사가 곁에 있었다면, "이게 리본이니?"라는 간단한 질문에 아이가 대답을 회피하는 대신 얼마나 다채롭고, 정교한 대화가 이뤄졌을지 상상해보길 바란다.
하버드 공공정책 분야 교수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 은 저서 '우리 아이들'(Our kid)에서 "유아의 건강한 뇌 발달은 어른들과의 안정적인 관계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p.164)고 밝혔다. 신경과학 분야의 많은 연구들은 유년기 경험이 인간에게 가장 강력하며 지속적인 영향을 끼침을 강조한다. 유년기 경험과 환경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아이들에게 반응하는 어른들과의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대화 교환 학습의 주요 기제를 전문가들은 '조건부 호혜성'이라고 명명한다. 이들은 아이와 어른이 신호를 보내고 반응하는 언어 이전의 형태의 상호작용이 수학적, 언어적 능력의 토대라고 보고 있다. (참고 8)
5살 아이가 "Is it ribbon?"이라는 질문을 받고 "Yes, it is!"라고 답하면 영어를 잘한다고 박수를 쳐줘야 할까? 모국어를 통해 한참 정교하고 풍부한 사고능력을 길러야 할 시간을 원어민과 간단한 몇 마디를 나누는 순간과 교환하는 건 내가 보기에 무모한 도박에 불과하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양육자들은 '나의 아이가 뒤처지지 않고 있다'라는 심리적 위안과 맞바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을 나온 학생들과 수 차례 대화해 본 결과 내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일단 유아 영어학원을 나온 학생들의 영어능력이 초등 수준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영어능력의 결정적인 변수로 보이지는 않는다. 영어유치원을 나오지 않았지만 영어 사용능력이 좋은 아이들도 많고, 아이들의 영어능력은 대단히 가변적이어서 3학년 때 특출나고 적극적으로 보였던 아이가 6학년쯤 되면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기도 했다. 내가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을 다녔던 현재 초등학생이나 20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저 영어유치원을 나오긴 했는데 솔직히 유치원 때 기억은 거의 안 나요.
그런데 엄마가 제가 영어유치원 나왔다는 말을 많이 해요."
나는 학생들에게 외국어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특히 모국어가 주는 편견에서 벗어나 다른 사고방식과 문화를 언어를 통해 접해보는 과정이 시민교육의 일환으로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공교육 시스템, 아이들의 모국어 발달 기회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뤄지는 민간 영어교육 풍토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과 같은 언어환경에서 누구든 공교육만으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애초 터무니없는 목표다. 교육체제는 어떻게든 굴러가고, 젊은 세대는 어찌 됐든 이전 세대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과연 학교에서 초3부터, 민간에서 영유아기부터 영어수업을 실시하기 때문인지 혹은 사교육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액수와 시간이 준 쥐꼬리만 한 보상인지, 그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회비용은 어찌할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본과 한국은 언어 환경이 여러모로 비슷하다. 일본 도쿄대학의 사이토 요시후미는 일본과 같은 언어환경에서는 "어떠한 교육개혁을 해도 학생들에게 실용적인 영어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은 애초 무리한 난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일본어 교육을 희생하고 영어교육을 강화해서, (가능하진 않겠지만) 이중언어 교육이 기적적으로 성공하고, 그래서 일본인이 80의 영어 능력, 90의 일본어 능력을 갖춘다고 쳤을 때, 영어 모국어 화자에게는 영어 사용에서 뒤처지고, 모국어로 하는 사고능력에서도 역시 뒤처진다고 주장했다. (참고 9, p.218 / 참고 10). 나는 요시후미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는 필패의 전쟁을 끝없이 반복 중이다.
영어는 언제부터 배워야 할까? 모두에게 해당하는 정답이란 없다. 나는 적어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최대한 모국어로 생각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보지만 당연히 영어 사교육업계는 이를수록 좋다고 웅변할 것이다. 또 일찍 시작해서 혜택을 보는 아이도 분명 얼마간은 존재할 것이다. 교육의 목표, 우선순위, 가치관, 재화와 시간, 갖가지 기회비용 등을 잘 따져서 결국 선택은 개인이 내려야 한다. 일반 시민들, 양육자들의 불안을 헤아리지 못할 것도 없고 그 불안과 공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정책과 제도는 달라야 한다. 한국 언어환경에 기초해 영어 교육의 근본 목표부터 현실적으로 재정립하고, 사교육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길 바란다.
누구든 실패한 정책의 책임은 회피하고 싶다. 실무자들은 현상유지가 편하다. 양육자들은 자신이 내린 모든 선택이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하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불편해도 필요하다면 바꿔야 한다. 모든 것이 나의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또 물론 상당 부분 그러할 테지만) 아이를 위한다는 위안 속에 나의 불안, 열등감, 보상심리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직시할 필요도 있다. 힘들어도 그게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다.
참고자료
(1) 이윤진·장명림·김문정·김혜원(2010), 유아 외국어 교육의 실태와 대책. 부산광역시 교육청·대구광역시 교육청·육아정책연구소
(2) Lenneberg, Eric H. (1967). Biological foundation of language. New York: Wiley.
(3) 영유아에 대한 조기 영어교육의 적절성에 관한 연구, 교육부 정책연구과제 2002-16
(4) Penfield, W. (1959). The learning of language. In W. Penfield & L. Roberts(EDs.), Speech and mecahnism(p.242-244).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5) Hakuta K, Bialystok E, Wiley E. (2003). Critical Evidence: A Test of the Critical-Period Hypothesis for Second-Language Acquisition. Psychological Science.
(6) Brown, H. D. (1980).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7) JTBC "내가 키운다" 2021, 7월 30일 방송
(8) 로버트 퍼트넘. (2017). 우리 아이들. 페이퍼로드
(9) 사이토 요시후미. (2007). 일본인과 영어: 또 하나의 영어 백년사. 동경
(10) 이병민. (2014).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우리 학교
:유아기 영어교육의 적절성에 관한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보고 2014-06
:Hart, Betty, &Risley, Todd R. (1995). Meaningful differneces in the everyday experience of young American children. Brookes Publishing.
:Snow, Hoefnagel-Hohle, 1977: Marinova-Todd, Marshall & Snow,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