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무게 - 도입
영어 수업,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영어 수업은 가볍고, 발랄할수록 좋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영어교실에서는 늘 신나는 챈트와 노래가 울려 퍼지고, 다채로운 활동이 진행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영어 교사는 학생의 작은 성취와 시도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라고 배웠다. 과장된 소위 '미국식 리액션'일수록 좋다는 거다. 그래야 학생이 영어에 주늑 들지 않고,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미국 사람들은 늘 경쾌하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낯가림 따위 없이 매사 당당하지 않다던가. 나는 한국인이지만 절반 정도는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격을 갖춘 영어 교사, 영어권 문화의 전도사로 인정받을 것만 같다.
최근 초, 중등 영어교사 워크숍에 참가했다. 예전에 초등 영어수업 연구대회에서 1등급을 받은 한 교사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시간의 많은 부분을 예쁜 교구 만드는 방법에 할애했다. 중등 영어교육도 크게 다르지 않은지, 워크숍 중 원어민 교사의 깔끔한 자료 제작 능력이 연거푸 칭찬의 대상이 됐다. 워크숍은 원어민 강사의 (별 다른 내용 없는) 강의에 이어, 한국인 영어교사들의 수업 연구 내용으로 진행됐는데 하나 같인 구체적인 활동과 게임 방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음 주부터 내가 듣게 될 영어교사 연수의 첫 시간 주제는 "흔히 하는 영어 실수"이다. 한국 영어 교사들의 영어는 근본적으로 '교정'의 대상이다. 우리는 교사로서의 경력과 역량은 잠시 작은 상자 안에 넣어두고, 교육경력이 일천한 원어민 교사에게 수업을 받으며, 남발하는 실수를 고쳐나가야 한다.
수년 전 담임에서 영어교과 전담 교사가 된 첫 해의 일이다. 원어민과의 첫 번째 협력 수업시간이기도 했는데 게임 활동 시범을 위해 나와 원어민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했다. 원어민 교사가 이기자 한 아이가 짝꿍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거봐! 내가 미국 사람이 더 똑똑하다고 했잖아!"
통통 튀는 발랄한 영어 교사답지 않게 내 마음은 삽시간에 서늘한 납덩이에 짓눌리고 말았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어렸고, 내가 굳이 설명을 하거나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 십 년째 한국은 영어 사용자들에게 유리한 사회 구조를 구축해왔고, 영어권 국가 사람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왔다. 영어를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한국식 영어를 자조해 왔다. 오래 전의 가벼운 에피소드는 영어 교사로서의 경력이 쌓일수록 내게 더욱 무거워졌다. 철없는 아이의 단순한 말실수라고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의 적나라한 거울이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 북미권 출신의 외국인들과 일을 해왔고 그들과 공적, 사적으로 교류하면서 한국인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을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 많은 한국인들이 난데없이 다가와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호의를 베풀었고, (보통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뜬금없이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었다. 한편 최근 화제가 된 '오징어 게임'의 한 여성 캐릭터는 극 중의 모든 남성을 '오빠'라고 부르는데 예외인 남성은 단 한 명, 짙은 피부색의 외국인 노동자였다. 여성 캐릭터는 다짜고짜 그에게 하대를 하며 '족보도 모르는 놈', '불법체류자'라며 비하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미국, 캐나다, 남아공 등의 국가에서 온 백인들에게 그런 일은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또 그들은 '오징어 게임'의 외국인 노동자만큼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좋은 직업을 얻고,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10월이 되면 영어 수업 시간에 핼러윈 파티를 기대하는 학생들이 있다. 실제로 어떤 선생님들은 파티를 열고, 소품으로 분위기를 내고, 관련 활동을 한다. 나도 예전에는 핼러윈의 기원을 소개하고, 통통 튀는 교사답게 사탕을 나눠주는 게임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핼러윈 관련 문화 행사가 부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고 즐기는 문화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이미 학원 등에서 보편화되었고, 사회적으로도 대중화되어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는 미국의 명절을 굳이 학교교육과정에까지 편입시키고 싶지 않다. 그것 말고도 가치있는 학습내용들은 넘쳐나고, 단순한 문화 소개 차원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일방적이며, 세계화가 곧 미국화인 불편한 진실이 목에 가시처럼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영어로 수업을 듣거나, 수업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 영어 소설이나 논문도 읽고 활용할 수 있는데 지금도 누군가 나의 영어 수준에 대해 물으면 "저는 영어를 잘합니다!"라고 당당하게 외치지 못한다. 내가 특별히 겸손해서가 아니다. 영어교사로서 내 영어능력은 나쁘지 않고 계속 성장 중이겠지만, 많은 한국인들의 이상향이 '원어민의 영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섣불리 잘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거다. 내가 영어권 국가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혹은 영어 능력에 대한 기준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은 이상 의심과 평가의 바다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의구심도 든다.
나는 가볍고, 발랄하게 학생들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북돋우는 교사가 되라는 주문을 받는다. 하지만 내게 영어는 무겁고 아슬아슬하다. 제국주의 역사, 불평등한 계급과 사회의 구조, 문화자본으로서의 영어, 물신화된 영어, 원어민 중심주의, 한국인들의 집단적 콤플렉스에 짓눌려 허리가 휠 것 같다. 모두가 기대하는 통통 튀는 발랄한 영어교사, 영어로만 수업하는 영어 교사, 까짓 거 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려면 내가 고민하고 있는 역사와 현재, 경제와 문화, 학생들 입장에서의 교육적 효과, 그리고 나의 자존을 철저하게 외면해야 한다. 내게 영어의 세계는 결코 발랄하지 않다. 그 세계에 발을 담그면 침략과 약탈, 인종차별, 인권유린의 경계에 빈번히 놓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외면하길 바라는 사회 문화적 압력도 느낀다. 미국인이 되어라, 광대가 되어라, 쇼호스트가 되어라, 웃어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 가볍게 발랄하게, 깨끗하게 자신 있게!
영어에 관해 나누는 사람들과의 모든 대화는 마치 외줄 타기 같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사대주의 혹은 국수주의의 낭떠러지로 미끄러진다. 교실에서도 외줄을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다. 교실 영어를 많이 쓸수록 나는 유능한 영어교사가 된다. 영어로 영어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를 인증하는 제도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교실에서 영어를 많이 쓸수록, 학생들과의 교감은 피상적이고 얄팍해졌다. 내가 볼 때 영어교육의 세계가 유난히 구김없이, 깨끗하게 다려진 새하얀 셔츠같은 '방법론'으로만 채워진 건 우연이 아닐 것 같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그 어떤 교과목보다 치열한 전쟁터로 변할 과목은 영어일 테니까.
이어질 내용
-아이들은 앵무새가 아닌데
-한국 공립 초등학교에서 영어로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유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