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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AI시대 HR,인간은 끝내 비합리를 선택한다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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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완벽해질수록, 사람은 납득하지 않는다


AI의 발전은 이제 HR의 거의 모든 영역에 도달했다. 채용 공고의 문장을 다듬고, 면접 질문을 자동 생성하며, 평가 리포트를 정리한다. 인사 담당자는 어느새 ‘사람을 관리하는 직무’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직무’로 바뀌었다. 정확도는 높아지고 속도는 빨라졌지만, 이상하게도 HR의 고민은 줄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해진다.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정리될수록, 사람의 감정은 그 합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들리는 질문은 늘 비슷하다. “AI가 HR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AI가 HR의 본질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자동화는 시작일 뿐이다. 진짜 질문은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있다. 데이터는 명확한데, 사람은 납득하지 않는다. 숫자는 냉정한데, 감정은 복잡하다. AI가 발전할수록 HR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비합리성’을 다뤄야 하는 일이 된다.


HR은 결국 ‘사람이 납득하는 구조’를 만드는 직무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구성원이 “왜 나만 이렇게 평가됐나요?”라고 묻는 순간, 그 합리는 작동을 멈춘다. 시스템은 논리로 움직이지만, 조직은 감정으로 움직인다. AI가 정답을 계산할수록, 사람들은 그 정답이 싫어진다. 결국 HR은 ‘정답의 시대’에 ‘이유의 언어’로 일해야 하는 직업이 되었다.




AI는 합리의 언어를 쓰고, 인간은 예외의 언어로 대답한다


AI는 이미 HR의 절반쯤을 대체하고 있다. 채용에서는 적합도를 예측하고, 평가에서는 성과 데이터를 분석하며, 보상에서는 시장 수준을 제시한다. 이런 일들은 AI가 훨씬 빠르고 객관적이다. 사람보다 피로하지 않고, 더 일관되고,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HR의 본질은 여전히 ‘판단’이다. 이 사람을 뽑을 것인가, 이 평가가 공정한가, 이 보상이 동기를 줄 것인가. 이런 질문에는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 맥락이 섞여 있다.

[※ 참고. HR영역에서 창업이 어려운 본질적인 이유]


최근에는 AI가 ‘의사결정 보조’ 역할까지 한다. 언뜻 객관적이고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리더가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AI의 문제는 정확도가 아니라, 인간이 그 정확도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데이터를 그대로 믿기보다는, 대부분의 리더는 자신이 이미 내린 결정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는다. 대표는 알고 있다. AI가 제시한 답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걸. 하지만 그는 그 답을 선택하지 않는다. 아니, 선택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결국 이성보다 감정에 반응한다. HR은 매일 그 장면을 본다. 누가 봐도 역량이 부족한데 “그래도 인성이 좋아서” 채용이 결정되고, 데이터상으로 성과가 낮지만 “요즘 좀 힘들어 보이잖아”라는 이유로 평가가 완화된다. AI는 객관을 제시하지만, 인간은 관계를 선택한다. 결국 AI는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리더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AI도 그렇게 분석했잖아.”라는 말 한마디면 논의는 끝난다. 그러나 그 결정의 출발점은 여전히 리더의 감정이다.


여기서 HR의 현실적 고민이 시작된다. 조직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동기적이며, 불균형한 시스템이다. 어떤 팀은 목표를 초과 달성하지만 다른 팀은 방향을 잃고, 어떤 구성원은 냉정하게 일하지만 누군가는 관계를 중시한다. 이런 불일치를 AI는 ‘변수’로 계산하지만, HR은 ‘사람의 상황’으로 감당해야 한다. AI는 패턴을 찾지만, 그 패턴 속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감정의 결을 해석하지 못한다. AI의 도입이 늘어나면서 HR의 역할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판단이 어렵다”가 고민이었다면, 이제는 “판단이 맞는데 왜 받아들이지 않을까?”가 문제다. 데이터로 입증된 결과를 ‘정답’으로 내놓아도, 구성원은 그걸 ‘공정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HR은 더 이상 제도의 관리자일 수 없다. HR은 이제 감정의 납득 과정을 설계하고, 논리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조정하는 직무가 되었다.


리더와 구성원 모두 AI의 분석을 참고하지만, 결국은 “이상하게 마음이 안 가네”라는 말로 결정을 뒤집는다. 이게 조직의 현실이다. HR은 그 감정적 결정을 제도적 충돌 없이 흡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데이터상 ‘A’가 승진 대상인데 리더가 ‘B’를 올리고 싶어 한다면, HR은 그 사이에서 정당성과 납득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숫자와 사람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AI가 판단을 완전히 대신한다면, 우리는 싫어도 데이터가 옳다고 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성과가 좋은 구성원에게 좋은 평가를 줘야 한다. 하지만 실제 조직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공정함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납득의 문제이고, 납득은 감정의 영역이다. 데이터가 맞다는 걸 알아도, 사람은 “그래도 나는 다르게 느낀다”고 말한다. HR은 바로 그 논리적 결과와 감정적 반응 사이의 불일치를 관리해야 한다.


AI가 정답을 제시할수록 인간은 예외를 만든다. “그렇긴 하지만…”이라는 말 속에 인간의 본성이 있다. HR은 그 예외의 여백에서 일한다. 시스템은 이상적인 모델을 만든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늘 그 모델의 밖에서 움직인다. AI는 질서를 만든다. 인간은 그 질서 속에서 불균형을 만든다. HR은 그 불균형이 조직의 신뢰나 성과를 해치지 않게 실제 운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AI가 논리를 제공한다면, HR은 그 논리가 현장에 작동하게 만드는 실행 담당자다.




기술은 판단을 대신하지만, 감당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는 점점 더 정교해질 것이다. 채용, 평가, 보상, 승진 등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데이터 기반으로 정렬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HR의 역할은 바로 그 속도 차이와 수용의 간극을 관리하는 일이다. 아무리 정교한 모델이라도, 구성원이 납득하지 않으면 조직은 움직이지 않는다. AI가 만드는 건 ‘정답’이다. 하지만 HR이 다루는 건 ‘이유’다. 정답은 논리로 움직이지만, 이유는 인간을 움직인다. 그래서 HR은 더 이상 추상적인 전략가나 설계자가 아니라, 데이터가 실제로 조직에서 작동하도록 조정하고, 감정적 반발을 관리하며, 결과를 현실에 연결시키는 실행 관리자다. 데이터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결과가 인간의 세계에서 통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사람이다.


AI의 시대에도 HR은 여전히 판단의 결과를 감당하는 직무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한 사람의 억울함이나 자존심, 기대와 불안 같은 감정은 계산하지 못한다. HR은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조직의 효율이 무너지지 않게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기술은 판단을 대신하지만,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남는다.


AI가 합리의 세계를 완성할수록, HR은 인간의 비합리를 관리해야 한다. 숫자는 언제나 옳지만, 사람은 언제나 다르다. 시스템은 논리로 완성되지만, 조직은 감정으로 움직인다. AI가 세상을 효율로 묶을수록, HR은 그 효율 속에서 인간의 현실을 다뤄야 한다. 결국 AI는 판단의 기술을 배우겠지만, 그 판단의 결과를 감당하는 건, 여전히 H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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