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무서운
판문점(Panmunjeom), 대중에게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여기를 개성시 판문구역 판문점리로 분류한다. 동서 800m, 남북 600m에 걸친 장방형 구역으로서, 1953년 7월 UN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및 북한군이 회의를 원만히 하기 위하여 군사정전위원회 본부를 설정한 데서부터 판문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막상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조인장이 군사분계선보다 약 1km 북서측에 있던 게 문제가 되어, 같은 해 10월 지금의 위치에 새로운 판문점을 설정하고 중립국감독위원회(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ttee, NNSC) 관할로 포로교환장소 건물을 짓게 된다.
NNSC는 정전협정 이행 여부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4개국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스웨덴과 스위스는 UN 측에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 측에서 선택한 중립국가들이었으며, 중립국 4개의 캠프도 판문점 인근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쪼개져 체코가 중립국감독위원회 역할을 도맡게 되었고, 이후 폴란드와 체코가 민주화되면서 북한은 해당 국가들의 캠프를 축출했으며 체코는 이 과정 중에 위원회를 탈퇴해버렸다. 따라서 현재 스웨덴과 스위스 두 개 국가의 캠프만이 판문점 남한 구역에 남아있고, 매년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가 있지만 폴란드를 포함한 중립국 대표들은 회의장에 남한 측 출입구를 통해서만 들어설 수 있다. 회의 결과를 북한 측 통보함에 넣는다고는 하나 북한 측은 그것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장 뿐 아니라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 당직장교 회의장은 모두 군사분계선에 걸쳐져 있다. 특히 군사정전위원회 회의는 공개 회의이므로 회의장 건물(T2, T는 temporary의 약자로 가건물이라는 뜻) 자체에 창문이 크게 뚫려 있으며, 회의장 중앙에 있는 탁자의 가운데에는 군사분계선의 모양에 따라 마이크가 놓여 있다. 만약 남측 관광객들이 판문점에 와서 해당 회의장에 들어갈 경우 해당 건물은 일시적으로 남측의 관할이 된다. 이 때 남측 경비병 중 1명은 건물의 북한 측 출입문을 잠그고 문 앞에 서서 북한군의 돌발행위에 대비하여 경비를 한다. 또 다른 1명은 회의장 한가운데 있는 탁자 끄트머리에 서서 경비를 한다. 반대로 북한 측의 관광객들이 회의장에 들어갈 경우, 북한은 남한 측 출입문 앞에 2명의 경비병을 배치한다.
대북 관계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의 판문점 견학 여부는 수시로 달라지는데, 2023년 7월 18일 판문점을 견학하던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이 무단으로 월북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지금은 견학이 중단된 상태이다. 견학이 가능하던 시기에는 통일부의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누리집에서 만 8세 이상의 국민에 한하여 1년에 한 번 견학 신청을 받았었다. (대체 프로그램으로 누리집에 3D 메타버스 견학이 있기는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일주일에 3~4회, 한 번에 40명의 인원이 약 2시간 30분에 걸쳐 견학하는데, 임진각에 위치한 판문점 견학안내소에서 신원확인 절차를 거치고 견학증과 견학 기념카드를 받는다. 그 뒤 판문점 소개 영상을 보고, 소집 시간이 되면 버스를 타고 JSA 경비대대에서 브리핑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남한 측에 위치한 판문점 건물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국 전쟁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던 장소로서 영화를 통해 유명해진 장소이기도 하다. 북한군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 2016년 8월 북한이 해당 다리 북측에 대인지뢰를 매설한 정황이 포착되었고, 군사분계선에서 너무 가까워 버스 차창 밖으로만 볼 수 있다. 남북 적십자 간 연락 업무와 회담 등을 지원하는 자유의 집, 군사정전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상기 T2,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공동기념식수를 했던 장소와 산책을 했던 다리는 버스에서 내려 견학한다. 남북 정상이 심은 나무는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던 1953년생 소나무이며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 한강과 대동강의 물이 식수할 때 함께 뿌려졌다고 한다.
월남하려는 소련 유학생 바실리 마투조크를 저지하기 위한 남북 간 총격전에서 희생된 장명기 상병을 추모하는 비석도 판문점에 있다. 판문점은 남북 대치가 가장 첨예한 곳인 만큼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사건은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라 세간에 알려진 1976년 8월 18일의 사건일 것이다. 초소들 사이에 위치하여 시야를 가리던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고 있던 UN군과 한국군에게 북한군이 둔기와 도끼를 들고 달려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UN군 장교 두 명이 사망하고 UN군과 한국군 총 8명이 부상당했다. 이로 인해 주한UN군과 국군, 북한군 모두 준전시 체제에 돌입했으며 특히 미군은 북한이 도발하기만 하면 연백평야를 점령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 양측이 팽팽하게 맞선 분위기였음에도 보란 듯이 문제의 미루나무를 잘라버렸다. 미루나무 자리에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미군은 이 사건으로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따 지금까지도 JSA를 담당하는 남한 최북단의 주한미군 부대 이름을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라고 부르고 있다.
본래 캠프 보니파스의 이름은 캠프 키티호크(Kitty Hawk)였는데, 이는 항공모함의 이름으로서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 실험을 성공시킨 장소인 노스캐롤라이나주 소재 키티호크 해변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이처럼 전사자의 이름을 따다가 부대의 이름으로 삼는 건 미군의 특징인데, 해외파병 부대의 경우 부대 이름 앞에 캠프를, 용산이나 평택 기지와 같은 대규모 군사 본부시설은 기지 이름 앞에 USAG(United States Army Garrison)를 붙인다. 미국의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1993년 판문점을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the scariest place on Earth)’라 칭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여기를 둘러싸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나라들이 군사적으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걸 고려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점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하여금 판문점을 매력적인 관광 장소로 꼽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판문점까지 구경하였으니 이번에는 또 다른 DMZ를 구경하러 조금 동쪽으로 시선을 옮겨 보도록 하자.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철원 권역의 DMZ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