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 해병대가 발간한 <북한 핸드북>에 따르면 북한이 남한을 침략할 목적으로 건설한 군사용 터널은 모두 합쳐 20여 개가 존재하는 걸로 추정된다고 한다. 육군에서는 지금도 매년 봄, 가을 위주로 DMZ에서 땅굴 조사작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DMZ에 천연 동굴과 비어 있는 지하 공간이 워낙 많아 그 가운데 남침용 땅굴이 어느 것인지 찾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북한도 남한의 탐사 작업에 대응해 파둔 땅굴들을 매립하기도 하였으며 땅굴의 군사적 이점보다 손실이 크다는 사례를 속속 접하면서 최근에는 땅굴 건설에 시들한 모양새다. 현재까지 발견된 군사용 터널, 소위 남침용 땅굴은 총 4개이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5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너비 90cm, 높이 1.2m, 길이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하 2.5~4.5m 부근에 존재한다. 한편 제2땅굴은 1973년 3월 19일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너비와 높이 2m, 길이 3.5km에 이르는 땅굴이 지하 50~160m 깊이에 존재한다.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너비와 높이 2m, 길이 2km에 이르는 땅굴이 지하 145m 지점에 위치한다.
북한이 남침용 땅굴을 파기 시작한 건 1971년 9월 25일, 당시 주석이었던 김일성이 ‘1개의 땅굴은 10개의 핵폭탄보다 효과적’이라고 발언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은밀히 병력을 움직여 기습 공격을 하기 위한 군사 시설로서 북한이 땅굴을 건설한 만큼, 북한은 철저하게 땅굴 건설을 비밀에 부쳤으며 남한 측에서 땅굴을 발견할 때마다 남한 측 군대에 무차별 사격을 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제1땅굴의 경우 발견 즉시 교전이 일어나 3명의 국군이 전사하였고, 발견 후 15일째에 한미 공동 수색조가 땅굴 조사작업을 하다가 북한이 매설한 부비트랩을 건드려 국군 1명과 미군 1명이 순직하였다. 제2땅굴의 경우엔 땅굴 내부에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국군의 탐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쌓아놓은 3개의 돌벽이 있었는데, 이것을 철거하는 도중 마찬가지로 북한의 부비트랩을 건드려 8명의 국군이 전사하였다. 제4땅굴 발견 과정에서는 수색대의 선두에 섰던 군견 헌트(Hunt)가 북한이 설치한 지뢰를 밟아 다른 군인들 대신 폭사하여, 이 굴 옆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헌트의 동상이 세워졌다.
규모가 작고 깊이가 너무 얕아 안전성 문제를 지닌 제1땅굴을 제외하고, 나머지 3개의 땅굴은 대한민국의 안보관광 자원으로서 민간에 개방되고 있다. 찾아낸 땅굴 가운데 서울과 가장 가까워 서울 땅굴이라고도 불리는 제3땅굴은 1974년 10월 17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서 발견되었다. 서울 시청까지 44km 거리라는 건 서울-양평 또는 서울-동탄 정도의 거리로서, 발견 당시 세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역대 땅굴 중 제3땅굴이 제일 발달된 형태를 지니고 있어 4개의 땅굴 중 가장 최근에 만든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한다. 땅굴은 접경 지역 안에 존재하여, 아무리 관광객의 출입이 허용되어 있다 하더라도 촬영 기능이 있는 전자기기 소지는 금지되며 입구의 보관함에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하긴 장비를 만약 가지고 간다고 해도 앞이 겨우 보이는 깜깜한 지하인데다 천정이 울퉁불퉁하여 체감 높이는 170cm 남짓이고, 곳곳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습하기 때문에 촬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제3땅굴 안에 들어가는 방법은 모노레일 이용 또는 도보 두 가지인데, 진입로가 잘 닦여 있긴 해도 어찌됐건 가파르고 깊은데다 굴 속이 어두워서 건강이 좋지 않거나 키가 큰 이들에겐 탑승료 3천원이 더 들더라도 모노레일을 이용하는 걸 추천한다. 당일 선착순인 모노레일 매표에 실패했거나, 40분에서 2시간까지도 길어지는 모노레일 배차 시간을 맞추지 못하겠다거나, 굳이 탑승료를 지불하고 싶지 않은 관광객들은 도보로 땅굴에 들어간다. 사실 모노레일은 30명 인원 제한도 있어 도보로 들어가는 관광객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더 많다. 내려가는 거야 별 일도 아니고 굴 안에선 콘크리트 내벽으로 막힌 쪽이 곧 북한이란 생각에 어쩐지 흥분이 되어 힘든 줄을 모르지만, 막상 되돌아 진입로를 오르며 숨이 턱에 차면 그제야 모노레일을 탈 걸 그랬나 후회할 수도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이라도 걸어서 제3땅굴을 구경하는 경우, 특히 더운 날씨엔 생수를 지참할 것을 권한다.
모노레일 탑승에 성공한 당신을 축하하고자 한다. 당신은 해냈다.
땅굴을 보고 나오면 보통 통일촌 장단콩마을을 방문하여 직판장에 들른다. 장단콩은 콩의 종류가 아니라 해당 지역인 파주시 장단면에서 나는 콩이라는 뜻이다. 실질적으로 콩의 종류는 우리가 흔히 메주콩으로 알고 있는 백태인데, 여타 기호작물에 밀려 재배면적이 줄어들었던 콩을 파주시가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에 따라 브랜드 육성 품목으로 지정하였고 임진각에서 매년 장단콩 축제를 열면서 재배면적이 다시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슬로푸드 체험마을로서 특산물인 장단콩과 기타 농산물을 지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고 있어 여타 안보 관광지와 달리 자가용도 출입할 수 있다. 식사 시간이 겹치는 경우 장단콩마을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데, 식당 예약을 해두면 검문소까지 식당 인솔차량이 나오고 검문이 끝난 후 해당 차량을 따라 자가용으로 식당까지 간다. 식당에서는 장단콩을 재료로 한 청국장과 된장, 두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지자체에서는 민통선 안쪽 경작지의 깨끗한 자연과 물빠짐이 좋은 농토를 장단콩 품질의 일등 공신으로 홍보하고 있다.
고소하고 따끈한 두부김치를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파주 지역의 민통선 안쪽을 열심히 돌아보았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갈 수 없는 진정한 DMZ의 중심, 판문점을 구경하러 떠나보자. 우리는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 글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