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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ux Mar 15. 2024

짭짤하고 시큼한

한국인의 부대찌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K-food라 하여 외국에 소개되는 음식들은 김치, 불고기, 갈비, 비빔밥이 주류를 이룬다. 지자체나 기성 세대들은 한국 음식이라 하면 건강식, 궁중음식, 또는 전통 음식을 떠올리고 마케팅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외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라 할지라도 조리법이나 취식법이 한국식인 경우 외국인들은 엄연히 그것들도 한국 음식의 범주에 넣는다. 이는 포크 커틀릿에서 유래된 돈까스를 일식으로 분류하거나, 이민 온 일본인이 고안했지만 로코모코를 하와이 음식으로 분류하는 양태와 유사하다. 더구나 유서 깊은 한식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김치는 보통 배추김치인데, 역사적으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현재와 같은 배추김치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건 기껏해야 1960년대 정도이다. 배추(백채, 白菜)란 중국 채소가 이 땅에 소개된 시기 자체가 조선 시대인데다, 지금 우리가 먹는 배추는 우장춘 박사가 길쭉하고 속이 없던 토종 배추를 품종 개량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왕 배추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따져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학자이자 원예육종학자로 손꼽히는 우장춘 박사는 한국인 제2호 농학박사로서,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된 바 있다. 흔히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것을 이 분의 대표 업적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이며 여러 서적, 방송 및 언론에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인용하여 작금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실제로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이는 교토대 명예교수 키하라 히토시라 한다). 우 박사는 우리나라에 씨 없는 수박을 들여와 알린 사람이며, 오히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상기한 배추 개량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의 개량으로 인해 한국의 배추김치가 전세계에 유명해지고 한국 것으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지닐 수 있었으니 말이다. 2012년 4월 제44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농약잔류분과위원회에서는 그간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로 분류하던 한국 배추를 김치 캐비지(Kimchi Cabbage)로 분리 등재하였다.


 아무튼 이처럼 배추김치조차도 엄밀히 따지면 전통 한국 음식이라 부르기 어려운 판이니, 대한민국 국민들도 이제 K-food의 범위를 보다 넓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마케팅을 해외에 벌이고 외국인들 입맛에 맞추어 K-food의 파이를 키울 거면서 구태여 한국 음식의 정체성과 철학을 그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외국인들은 완전한 서양 요리위에 고추장을 조금 첨가한 소스만 곁들여 내도 한식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감히 맛볼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꼬린내 가득한 블루 치즈를 김치로 감싸내면 그것도 한식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유래했음에도 한국식으로 튀겨내면 프라이드 치킨조차 한국 음식이라고 여기니, 양념치킨이나 간장치킨, 마늘치킨, 파닭 등의 변형은 말할 것도 없다. 아울러 그 탄생이 미국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면서도, 미국인 자신들이 유래에 연관되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엄청난 한국 음식이 또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걸핏하면 만나며, 경기도 북부에 전문 음식점들까지 숱하게 퍼져 있는 부대찌개이다.


 부대찌개라는 이름에 보이는 부대라는 단어는 당연하게도 미군부대를 의미한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군부대가 한국에 주둔하면서 부대에 납품되던 스팸, 소시지, 베이컨 등이 공공연히 부대 밖으로 유출되었고, 이를 부대 주변 한국 사람들이 김치와 함께 볶아 먹었다가 물을 부어 찌개 형태로 완성했다는 게 부대찌개 유래의 통설이다. 비슷한 유래를 지닌 꿀꿀이죽도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빈민들이 끓여먹은 데서 비롯되었으며 식재료가 풍족해짐에 따라 사라진 꿀꿀이죽과 달리 부대찌개는 얼핏 보기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재료들을 한국인만의 방식으로 조합하여 만들어낸 음식으로서 하나의 요리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너무 짜고 기름지며 자칫 누린내가 날 수 있는 재료들이 시큼하고 매콤달콤한 배추김치를 만나 푹 익으면서 독특한 풍미를 자아내는 것이다. 지금도 의정부, 송탄, 파주, 문산, 군산, 용산 등 미군부대가 거쳐간 지역 인근에는 특유의 형태를 이룬 부대찌개 음식점들이 저마다의 맛을 뽐내며 성업 중이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철원 권역의 DMZ를 방문하려면 이런 부대찌개 음식점들을 숱하게 지나가야 한다. 그냥 휙 지나쳐가도 상관없지만, 우리는 그다지 급한 사정이 있는 여행자도 아닌데다 스토리텔링 자체를 즐길 뿐인 여행자이므로 애정어린 시선을 담아 대한민국 근대사가 오롯이 담긴 부대찌개란 메뉴를 바라보자. 자가용을 타고 가장 먼저 닿는 의정부란 도시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이 다름아닌 부대찌개여서 그런 것도 있다. 실은 미군이 주둔하기 전까지만 해도 의정부시는 부대찌개와 정말이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도시 이름이 의정부로 지어진 까닭도 조선 시대에서 기원한다. 조선 시대 당시 최고 행정부의 명칭이 의정부였는데, 이 의정부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사람들을 투입해서 경작시킨 지역이 곧 현대의 의정부시이다. 이렇게 경작되는 땅을 둔전(屯田)이라 하는데, 둔전이 이처럼 관청을 위한 것이면 관둔전, 군대의 보급을 위한 것이면 군둔전이라 칭했다. 관둔전은 원칙 상 각 관아의 노비가 운영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이후 재정마련을 위해 널리 시행되었다고 한다. 


 옛 한양 도성 부근에서 출발하여 고개 넘고 도봉산을 지나기만 하면 마주하는 곳이 의정부시이니, 지리적으로도 과연 관둔전으로 쓰일 만하겠다 싶다. 기실 여기에 주한미군 부대들이 들어섰던 까닭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서울은 남한의 수도인 것치곤 군사분계선과 너무 가깝고, 그래서 이미 한국 전쟁 때 순식간에 점령당한 전적도 있다. 그런 서울을 북한군으로부터 확실하게 방어하려면 마땅히 서울 북쪽 외곽에 군대가 주둔해야 할 것 아니었겠는가. 

의정부시의 위치를 보라. 정말이지 서울과 사이 좋게도 딱 붙어 있다.

 그럼 이제부터는 의정부시와 주변에 주둔했던 군대들에 관해 보다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부대찌개를 곁들여 먹으면서 알아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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