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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ux Mar 22. 2024

군대가 만든 도시

이젠 군대 없이도

 행복로는 의정부시의 번화가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거리다. 이 거리의 원래 이름은 중앙로였다. 하지만 2009년 6월부터 차량 통행을 막고 거리 조성을 시작하여 12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하고 이름이 변경되었다.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명실상부한 중심가인데, 이곳에 서 있는 다수의 조형물 중에서 다소 이질적인 성격을 지닌 건 바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기마상이다. 의외로 의정부시는 이성계와 인연이 있다. 일단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어준 터가 의정부시라는 설화가 존재해서다. 1384년 불심이 깊었던 이성계는 법성사 근방의 석굴암에서, 그리고 그의 벗 무학은 무학굴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뒤 동북병마사로서 요동으로 이성계가 출정한 뒤 무학은 홀로 이성계의 영달을 축원하였는데, 이후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무학을 찾아오면서 절 이름을 회룡사(용이 돌아온 절, 고래로 용은 왕을 뜻한다)라고 고쳤다는 것이다. 아울러 1403년 태종의 재위 시절 이성계가 함흥에서 한양으로 환궁하다가 지금의 의정부시 호원동 위치의 마을에서 머물렀기에 조정 대신들이 그리로 찾아와 국정을 논의했다는 야사도 있다고 한다. 이에 마을 이름이 임금이 앉았다는 뜻의 전좌(殿座)가 되었다는 거다.


 이런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온다지만 실질적으로 의정부시는 한국 전쟁 때까지도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전후 미군부대가 근방에 와르르 생기면서 의정부시는 급작스럽게 경기 북부의 거점 도시로 떠올랐다. 미군부대는 전쟁 직후 참담하게도 배고팠던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식재료가 풍족했던 곳이자 치외법권에 가까운 특수성을 지녔었다. 의정부에는 주한미군 2사단 사령부가 있던 캠프 레드 클라우드(Camp Red Cloud)를 비롯해 부사관 학교인 캠프 잭슨(Camp Jackson), 헬기 부대가 있던 캠프 스탠리(Camp Stanley) 등 다양한 군사시설이 있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의정부의 모든 부대는 사라졌고 필요한 경우 평택시로 이전되거나 시에 부지가 반환되었다. 의정부역과 가능역 사이에 있던 캠프 라과디아(Camp LaGuardia) 자리엔 대단지 아파트가 건설 중이고, 캠프 폴링워터(Camp Falling Water)는 의정부역 평화공원이 되었다. 캠프 에세이욘(Camp Essayons)은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 을지대학교 의정부캠퍼스 및 부속병원, 캠프 카일(Camp Kyle)과 시어즈(Sears)는 광역행정타운, 경기북부 경찰청, 소방서가 되었다. 


 현재의 의정부시는 비록 경기도에서 최다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는 아니나 점차 서울의 위성도시처럼 인구 유입이 지속되면서 2024년 상주 인구 46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경기 북부 지역 중 최초로 시로 승격되어 1963년 당시 의정부를 제외하면 경기도에 시라고는 인천과 수원밖에 없었을 정도로 나름 역사가 있다. 아울러 전방부대 장병들의 위수경계의 남방한계선이 되는지라 여전히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지하철 1호선이 연천역까지 연장되었지만 과거에는 의정부역이 종점이었으므로 명실상부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아직도 연천군, 포천시, 철원군 등 동북지역 장병들이 휴가를 받아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를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의 목표 지점인 철원 권역 DMZ도 마찬가지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는 가기가 어렵다는 뜻이 된다. 북부간선도로든, 동부간선도로든, 세종포천고속도로든, 과정은 조금씩 달라질지언정 결국 철원으로 가고자 하는 이들은 주한미군의 흔적이 오롯이 새겨진 의정부와 동두천을 지나는 수밖에 없다. 동두천의 경우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이 한강 이북 최대의 미군 전투부대 캠프 케이시(Camp Casey)와 하비(Hovey)가 남아 있다.


 그래도 동두천을 지나면 ‘군대 색깔’이 몰라보게 빠져 비로소 차창 밖에 여유롭고 한갓진 마을의 풍경들이 보이게 된다. 대신 도로도 시골길답게 좁아 어떤 경우에는 왕복 2차선밖에 안 되기도 한다. 소요산 정도까지만 와도 행락객들만 북적거릴 뿐 군인들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아, 소요(逍遙, 유유자적하게 걸어다닌다)란 단어의 의미에 제법 어울리는 모양새를 갖춘다. 다만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수려한 편이라 철쭉철이나 단풍철이 되면 인파가 많이 몰린다. 이성계의 발자취는 소요산에도 남아 있는데, 소요산 관리사무소 주차장 앞 화단에 남은 ‘이태조행궁지’가 바로 그것이다. 의정부 전좌마을의 야사는 이성계가 한양으로 돌아올 때의 이야기지만, 행궁은 그 전에 그가 한양을 떠날 때 지어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건물이다. 조선 중기에도 행궁은 이미 두어 층의 층계만 남은 궁터였다고 하며, 현재는 안타깝게도 터마저 한국 전쟁 전후 멸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행락객들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이런 옛 이야기보다 소요산 초입에 즐비한 맛집들이나 꼭대기의 기암괴석을 잘 관람할 수 있는 등산코스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여타 등산로가 으레 그렇듯 소요산 초입에서도 국밥이나 찌개, 불고기 등 술과 곁들일 수 있는 음식을 주로 파는데,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메뉴는 버섯전골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육류를 먹지 않거나 그간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어 물린 사람들에게 특히 어울릴 거라 생각하며, 여러분의 안내사인 나는 이에 둘 다 해당되지 않지만 그저 여기 전골이 깔끔하니 맛있다. 중식 육수는 치킨 스톡이 기본이며, 일식 육수는 가쯔오부시와 다시마가 기본이라면 한식 육수는 멸치와 사골이 기본이다. 하지만 소요산의 버섯전골은 오로지 채소만을 사용하여 한약재 향이 살풋 나는 맑은 국물을 냄비에 담아 내는데 그게 꽤나 매력있다. 앞서 소개한 부대찌개의 눅진하고 강렬한 맛과 완전히 반대되는 담백하고 깨끗한 맛이다. 


 사찰이 있는 산이라 이러한 메뉴가 존재하나 싶기도 하다. 하긴 소요산에 원효가 자재암을 창건했을 당시 사람들은 멸치나 사골같은 식재료는 거의 쓰지 않았을 거다. 산에서 캔 버섯이나 밭에서 키운 채소들이라면 몰라도. <조선지지>나 <소요산기>에는 옛 궁터가 두 군데라 하는데, 하나는 상기 이태조행궁터이고 다른 하나는 요석공주 별궁지라 추정한다. 요석공주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차녀다. 그녀는 원효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은 뒤로, 원효의 수행처였던 소요산에 별궁을 짓고 설총과 함께 기거하며 조석으로 원효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요산에는 원효와 요석공주의 이름을 딴 장소가 많다. 공주봉, 원효대, 원효폭포, 원효교 등이 그것이다.


원효대사 캐릭터 디자인은 누가 한 걸까. 여섯 개의 점이 찍힌 머리가 크리링을 떠올리게 한다.

 산뜻하게 버섯전골 맛도 보았으니 슬슬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해보도록 하자. 산을 보았으니 다음은 강이다. 대한민국의 최전방을 가르는 상징과도 같은, 한탄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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