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못 챙기면서 일은 잘 챙기는 남편이었어요, 이 글로 회개합니다
'너무 사랑해서 결혼했어요.'란 상투적인 말을 내가 할지 몰랐다. 아내는 새내기 대학생 때 처음 만난 2살 연상의 누나였다. 처음에는 그저 아는 누나였는데, 우연히 그룹으로 함께 간 여행에서 반하는 매력을 발견한 후 7년 간 연애한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 한 결정이었지만 그 전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애할 때도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이 여러 번 있었는데, 결혼 뒤에는 그 영역이 더 많아졌다. 시험 과목 수가 늘어난 기분이랄까. 분명 내가 결혼하고 싶을 만큼 정말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배우자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힘든 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고,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알게 된 만큼 모르는 것도 많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이란 감정의 순도가 상대방을 향한 몰입의 밀도를 결정하지 않았다. 결혼해 배우자와 한 집에 살다 보면 연애할 때와 같은 감정을 갖기 쉽지 않다. 수많은 주례자가 조언하듯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봄내 가득한 꽃길이 아니라 맨발로 걷는 자갈 밭일 때가 더 잦을 수 있다. 고향집 부모님이 어릴 때 그러셨듯 쉽지 않은 장면을 종종 만날지 모른다. 그럼에도 결혼해야 하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감정을 뛰어넘어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감정은 몰입의 방아쇠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식이다. 그러나 결혼 후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더 많은 방식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사랑 이상의 노력과 책임이 필요한 셈이다.
하물며 일도 몰입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결혼 후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의 몇 배를 일에 사용하지 않나. 나는 결혼을 통해 '의도적으로 관심 갖는 법'을 훈련할 수 있었다. 이는 아내가 사랑을 느끼는 방식이다. 깊이 있는 표현과 강렬한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남편의 전적인 관심이 필요했다. 나는 시간을 아끼고 쪼개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이 때문에 중요도에 따라 시간을 배분하고 사용한다. 이는 결혼 후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동일했다. 실제 여유가 없을지라도 잠시라도 먼저 아내 곁에 머무르고 들어주며 공감하고 안아주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것이 남편의 책임이란 것을 배웠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일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접근해야 했다.
나는 마케팅이라 불리는 일을 주로 했다. 내 식대로 표현하면 회사의 미션이 담긴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에게 더욱 공감하도록 돕는 모든 일이었다. 상대방의 심장에 남을 언어를 조탁했다. 시의적절한 인상을 이미지와 함께 디자인했다. 이렇게 메시지를 담아 의도한 행위를 유도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모든 일의 핵심이었다. 나의 기능성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것만으로 만족하고는 오랜 기간 방치했다. 그래서인지 그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불현듯 내가 알맹이 없는 콘텐츠 만드는 일에 목을 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역할을 따라 일을 할수록 그 일에 대해 잘 모르는 느낌이 커졌다. 몰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이면에 노력의 부재가 보였다.
오랜 씨름 끝에 도달한 내 일의 정수는 고유하고 특별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려면 그 대상이 정말 콘텐츠 자체가 되어야 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싫었다. 성장하며 무르익는 무언가를 만들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나름대로 익힌 포장법으로는 진짜 콘텐츠를 만들 수 없었다. 회사가 추구하는 무언가, 혹은 내가 열망하는 무언가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실천하며 성장해야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알짜가 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전보다 더 몰입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일이든 사람이든 '좋아하고 사랑한다'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할 정도로 결단이 선다면, 새로운 노력의 관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결혼을 통해
내 삶과 일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