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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Jul 09. 2020

결혼 후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

왜 예전처럼은 안 되는 건가 싶으면

옛날에 썼던 연애편지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됐다. 무려 10년 전 이맘때에 쓴 편지다. 당시 나는 남들보다 많이 늦게 군 입대를 해서 한창 복무 중이었다. 지금 아내가 된 당시 애인에게 자주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사랑을 잉크 삼아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썼던 시절이었다. 지금 보니 '내가 이런 표현도 쓸 줄 알았나' 싶은 대목도 있고, 한편으로는 많이 달라진 아내와의 관계에 새삼 놀라게 됐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업치락 뒤치락 고생했으니 전과 같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면서도 편지를 생소하게 읽는 아내 표정이 못내 아쉬웠다.


사실 연애 시절에는 내가 편지를 더 많이 보냈다. 말이나 글로 뭔가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군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통씩 썼던 것 같다. 반면 아내는 표현이 적었다. 언어보다 감정이 풍부한 사람인지라 잘 느끼지만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성격 급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표현해 보라고 설레발도 쳐봤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충분히 느끼고 자기 언어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흔히 말하는 남녀 사이의 줄다리기가 아니었나 싶다. 상대 마음을 당기고 미는 시간을 오래 보냈다.


그런데 결혼 후 확실히 그런 시간이 줄었다. 한 집에 살며 대체로 아기자기하고 사이좋게 지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더러 생겼다. 연애 때는 겪어보지 못한 생활 영역의 밀당도 많아졌다. 신혼의 아내를 위해 많은 것을 했었다. 요리,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 화장실 청소, 그릇 정리, 장보기 등등... 그럼에도 아내에게는 채울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됐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픈 애틋함 같은 것이랄까. 이따금 연애의 순간을 소환해 당시의 사랑을 추억하는 시간을 보낼 때마다 그런 것을 느꼈다. 뭔가를 여전히 확인하고 싶어 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소위 '사랑의 줄다리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굳이 명명하자면 '해야 할 일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작은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이렇게 몸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직장을 오가는 내가 이랬는데, 아내는 오죽했을까. 이런 공감이 한창 '작은 녀석들'을 육아할 때는 많이 부족했다. 하나도 힘든데, 둘째가 태어나면서 제곱으로 힘들어졌다. 바깥일을 하고 들어온 나와 집안 살림에 찌든 아내가 적지 않게 부딪혔다. 지금이라면 좀 더 품어주고 받아줬을텐데, 그때는 둘 다 상태가 안 좋았다. 그래서 이따금 충돌했다.


그 탓에 사랑으로 메우지 못할 간격이 있을 수 있겠다고 종종 생각했다. 오랜만에 펼친 편지에는 하필 모든 것을 다 받아줄 것처럼 쓰여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격변을 거치며 사랑에 대한 이해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한 여자만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내가 할 도리라고 느꼈다면, 지금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더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인지라, 아내와 오래 살아갈수록 사랑의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이 물론 있다. 혹 내가 그것을 다 채워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용납하려고 마음먹고는 한다.

지금 시점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은 수용하는 태도에 가깝다.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녀의 감정과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귀찮아서 건성으로 대답할 때도 솔직히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좀 달리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나와 함께 여생을 살아가는 짝으로서 정말 뭐가 필요한 사람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 덕분이다. 어렵지만 그 사람의 입장이 돼보려고 하기도 하고, 쉴 때마다 뭐에 열중하는지 관심을 가지려 한다. 무슨 드라마, 어떤 음악들... 그러고 보니 따로 영화 한 편 본 지도 오래됐다. 데이트할 때가 됐나 보다.


아내든 자녀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오랠수록
빛나고 값진 느낌이
깊어지니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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