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남편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다수의 한국 기혼 남성과 비슷한 생각 하나를 공유하고 있다. '나만큼 잘하는 남편은 없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실증한 내용은 아니다. 그렇지만 신뢰성이 높은 주장이라 추측하는 이유는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공감대 때문이다. '돈을 잘 버는데 아내와 자녀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고 자기 호주머니만 채운다'든지, '퇴근하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유흥가로 출근한다'라든지, '아이가 어떻게 크든 신경 안 쓰고 제 취미생활에만 몰두'하는 식의 행동 양식은 우리 사회에서 죄악시된다. 물론 이런 생각에 나도 크게 동의한다.
그래서인지 '꽤 괜찮은 남편'이라며 스스로를 자축할 때 남다른 성실성을 첫머리에 내세웠다. 주로 아내에게 주장했던 바다. 생활과 감정, 관계를 알아서 통제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것을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월급을 아내에게 줘서 생활비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등의 육아를 주도하는 것, 주된 여가 시간을 집에서 보내기 위해 애쓰는 것 등이 남편이자 애아빠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 여겼다. 간혹 그렇지 않은 사례를 들을 때마다 반면교사로 삼으며 아내의 공감대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아내가 나를 향해 미운 마음을 갖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머릿속에는 가장 먼저 '내가 뭘 잘못했지'란 생각이 떠오른다. 특별히 일탈했던 것도 아니고 그런 의도를 가진 적도 없다. 생활 방식도 그대로여서 평소처럼 근면하게 대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오늘 아침식사 대용으로 먹을 선식 주스도 어김없이 만들어줬는데 왜 그러지'란 생각이다. 말실수를 했는지 돌아봐도 거슬리는 언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특별히 잘못한 게 없다고 판단하고부터는 아내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면 아내의 반응이 냉랭했다. '뭔가 있는데'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캐물어도 속 시원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설명을 해줘야 알지'라고 항변도 하지만, '당신은 늘 그런 식이야'란 반응에 어지러워진다.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러다가 나름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며칠 전, 아내가 한 달에 한 번 겪는 그 날이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는다. 경험적으로 볼 때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가끔 쓰는 일기장에 힘든 가정사가 등장할 때면 매월 이 즈음이었던 것 같다'는 추론이 이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대개 헛발질이었다.
아내 감정의 자초지종을 알고 나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깨닫는다. '아내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란 것이다. 예를 들어 명절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시댁에 언제 어떻게 갔다 올 것인가'란 질문은 남편을 시험하는 단골 주제였다.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올해도 그랬다. 직장생활로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아내와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센스 있게 대답하지 못한 것이 갈등의 진앙지가 됐다. 신혼 초에는 '뭐 그런 걸로 화를 내냐'며 맞불을 놓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삶의 교훈을 체득한 요즘은 아내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는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늘 있었다. '그게 화를 낼 일인가'라는 이성의 물음에 긍정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공감하며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지만 내심 상대방을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여긴 적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 정작 내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예민한 아내를 만나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로봇처럼 굴거나, 석벽처럼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자기 방어에 급급한 나머지 '아내 언어'의 행간을 읽지 못했다. 주체적이지 않아 보였던 아내는 사실 나를 의지하고 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아내의 모든 말과 행동은 남편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제 보니 그 기대는 남편 입장에서 높이 평가하는 성실함을 포괄했다. 그 바탕 위에서 아내 입장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것이다. 제삼자가 보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아내 입장에서는 그럴만하니까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기대를 할 만한 남편'이라고 여긴 덕분이다. 남편을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서든 기대하는 수준이 있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까다롭게 군다'라고 느꼈던 대목이다. 남편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런 반응도 없었을 것이다.
이쯤 돌아보니 내가 꽤 무심했다. 아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지 정말 몰랐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남보다 못할 때도 있었다. 이전처럼 살갑지 않았다. 때때로 서운했다. 이따금 볼멘소리를 할 때면 남편 없어도 잘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반응이 남편을 의지하는 아내의 언어였다. 통역이 안됐다. 같은 언어로 화답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려면 진짜 관심이 필요했다. 아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기대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 덕분에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을 새삼 곱씹게 됐다.
생각해 보니,
제가 '남편'이란 직업을
처음 해보더라고요.
(두 번 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창업은 지원센터라도 있는데,
남편은 그런 게 없으니,
많이 헤매고 가끔 좌절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근데, '아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완벽한 남편 없듯
완전한 아내도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