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차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해봄직한 말
남자에게 결혼기념일만큼 기념에 대해 고민하는 날이 많지 않을 듯싶다. 문득 미리 뜬 캘린더의 알람을 보며 어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할까 고민하다 정작 무엇을 위해 음식 먹는다고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살아준 것이 고마워서'인 것도 같고, '앞으로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인 듯도 했다. 어쨌든 둘 다 어정쩡한 답이었다. 결혼을 한 것에 대해 뭔가 기념하는 날인 것 같긴 한데 준비하는 마음은 뭔가 빠진 듯했다. 이런저런 블로그 글을 찾아봐도 무얼 주고받는 것과 사연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왜 이 날을 기념해야 할지 좀 생각해보기로 했다.
기념이란 말을 곱씹으니 몰랐던 새로운 것이 보였다. 기념은 한자로 풀어보면 '생각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다. 글자를 깨트려 좀 더 들여다보면 '마음에 담을 것을 기억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뭔가 오래 잊지 않고 간직한다는 본뜻처럼 마음에 담을 만한 기억들을 그러모으는 시간이 되면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지난 몇 년 간 너무 분주했다. 그 탓에 간신히 햇수만 돌아보곤 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케이크나 배달 음식을 함께 먹으며 보냈고, 아이들이 좀 큰 뒤로는 아이를 잠시 맡기고 따로 식사하는 정도로 보냈다.
남들처럼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말이 우리 부부 사이에서도 자주 나왔다.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후로 힘들어하며 유난히 흰머리가 많아지던 모습에 안타까웠던 아내의 시간이 있었다. 장거리 회사 출퇴근 후 가정으로 다시 출근해 아이와 집안일을 돌보다 기절하듯 쓰러져 잠들던 남편의 시간이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종종 다투었고, 예민해져 토라지던 때도 있었다. 아이는 해가 갈수록 키가 자랐고 말이 늘었다. 시나브로 세월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아이가 뱃속에서 막 나와 우글쭈글했던 얼굴과 고물거렸던 손은 지금 흔적도 없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자라게 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기대했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이 세상 어떤 것이 한쪽만 있으랴. 그럼에도 내가 겪은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내게 꼭 필요했던 것임을 직감한다. 그 어느 것도 버릴 기억이 없었다. 아찔했거나, 눈물을 흘렸거나, 아팠거나, 소리를 질렀거나, 무섭게 바라봤거나, 매몰차게 고개 돌렸던 순간일 지라도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다. 웃을 수 있고, 함께 껴안고 부빌 수 있으며, 기도해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순간이 현재의 퍼즐 조각이었다.
이 모든 기억은 아내가 있을 때만 받을 수 있었다. 어쩌다 아내와 눈이 맞아 만나기 시작했는지 말하려면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가야 한다. 당시 알콩달콩했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가 잠깐이라도 떨어트려 놓을까봐 안절부절못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20대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사귄 이성이 지금 내 옆의 짝이 됐다.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15년 가까이 함께 한 셈이다. 이렇게 함께 오래 지내게 될지, 무엇을 하며 보내게 될지 미처 몰랐다. 앞으로는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직 살아본 적 없는 시간을 얘기해보는 시간도 마음에 담을 만했다.
8년 차 결혼기념일만큼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바쁜 일상과 책임, 부담, 육아, 가사로 지쳤던 몸에 힘을 빼고 잠시 함께 앉아 노닥거리면 어떨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앞으로 더 자랄 아이들과 부부의 일상을 그려보고 싶다. 혼자라면 가지지 못했을 것들과 선택하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삶의 적지 않은 행복들도 보석함을 꺼내보듯 만져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살짝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니 소소한 용돈 선물도 준비해볼까 한다. 빠듯한 살림에 옷 한 벌 선뜻 사지 못했던 아내가 이 글과 함께 받을 때 기뻐해 줄지 모르겠다.
아내와 함께 한 시간이 오랠 수록
함께 할 시간을 더 기대하게 됩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 많이 자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