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려면 어느 정도 재정이 필요할까
결혼한 후 가장 많이 변한 것 중 하나는 돈에 대한 시각이다. 그전까지는 한 마디로 개념이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적당하게 벌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정 계획에 대해 얼마나 재정이 필요할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으면 어느 정도 재정이 들 것으로 예상하는 식이다. 막상 자녀를 키워보니 연령 별로 필요한 것들이 어느 정도 있고 상황에 따라 집이나 자동차처럼 목돈이 필요한 변화도 고려해야 했다. 그러니 어린 시절 예상했던 것보다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런 부분에 적지 않게 무지했다.
삶에 필요한 수입의 규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정을 꾸려갈 때는 얼마의 돈이 적당할까? 아기보다는 유아일 때가, 초등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일 때가 좀 더 많은 수입이 필요하겠다. 만약 해외 유학을 보내거나 혹은 가족들과 종종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여유를 원한다면 또 다른 재정이 필요할 것이다. 또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하거나,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용돈을 드리고, 친척과 지인들에게 식사 대접할 여유가 있으려면 적지 않은 재정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할수록 돈이 필요한 곳은 많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소비에 맞춰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만약 버는 돈에 맞춰 씀씀이를 줄이면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이것이 옳지 않은 생각인데 자주 그렇게 느꼈다. 나만을 위해 돈을 쓴다면 덜 그랬을 텐데 아내와 아이를 위해 써야 하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진로에 대해서도 새로운 부담이 있었다. 결혼 전이나 육아 초기만 해도 직장을 선택할 때 수입보다 소위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근무 여건이 중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급여를 더 많이 벌 수 있는 것이 높은 우선순위가 됐다.
문득 이것이 내가 속한 사회의 이상향을 쫓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모차는 이런 것을 사고 음식은 뭘 먹어야 하며, 아이의 나잇대에 맞춰 교육은 이런 식으로 하고 옷과 가방, 신발은 저런 식으로 입어야 하며, 아이와의 시간은 충분히 보내면서 필요한 것은 부담 없이 공급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길 찬양하고 바라는 요즘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설령 남편이자 아빠인 내가 다른 생각을 있다 할지라도 조부모, 친척, 옆집 아빠 등 주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쉽게 마음이 기울어진다. 심지어 유튜브만 봐도 그랬다.
세상의 관점에 끌려간다고 느낄 때 나의 관점은 무엇인지 자문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우리 가정에 좋은 방향인지에 대한 관점이 없었다. 그러니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리저리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네 식구가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제 때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풍족했으면 좋겠다는 수준의 걱정을 할 뿐 구체적으로 계획하거나 더 나은 방향을 찾지는 못했다. 뭔가 대화가 필요했다. 그냥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수준을 넘어, 왜 그리고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시작할 시점이었다.
재정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어떻게 살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다. 쉽지 않은 주제다. 답이 없을뿐더러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어서다. 결혼 9년 차인 우리 집도 이런 주제에 대해 별로 대화하지 못했다. 몇 번 나눈 얘기는 추상적인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화젯거리로 삼으려 한다. '어떤 생수를 마실지' 따위의 작은 씀씀이부터 '어떤 집을 살지' 같은 큰 소비까지, 가정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돈이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탓이다. 함께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갈지 모른다면 언제든 돈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의 삶도 쉽지 않은데
가정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그것이 제가 물려주고픈
진짜 가족의 모습이기에
기꺼이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