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ite whale Aug 02. 2020

아내가 편해지면 알게 되는 것들

손바닥이 마주치며 소리 나는 그 느낌

혼자 살아본 사람만 느끼는 아쉬운 순간들이 있다. 서둘러 집을 나왔는데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의 찝찝함, 모처럼 물놀이하러 놀러 가려는데 수영복을 어디에 뒀는지 찾기 어려울 때의 난감함, 집에 늦게 들어왔는데 쌓여 있는 설거지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피곤함 등등... 괜히 마음을 헤매는 상황이 꼭 있다. '집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든지 '함께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이럴 일 없을 텐데' 같은 생각을 했다면 기혼자로서 당당히 얘기해줄 수 있다. 아내가 있으면, 혹은 남편이 있으면 이런 아쉬움이 적잖게 없어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결혼하면 무조건 경험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사실 초반에는 아쉬운 일이 많았다.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살던 두 사람이 한 집에 살 때 생기는 문제가 어떻게 없을 수 있을까. 몇 번 정도 아내가 치약 짜는 방식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치약 아랫부분부터 눌러가며 쓰는데, 통통한 몸통을 꾹 눌러쓰는 게 좀 불편했다. 아내는 내가 머리 말린 후 뒤처리에 대해 몇 차례 지적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 머리카락이 바닥에 많이 떨어지는데 직접 치워달라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몇 년 동안 잘 고쳐지지 않았다. 아내도 그랬다.


사이가 좋을 때는 별 문제 아닌데 감정이 안 좋을 때는 시빗거리가 된다. 괜히 더 잔소리처럼 들리고, 삐져서 퉁명스럽게 반응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감정이 상하면 입을 닫아버리는 게 닮았다. '상종을 못하겠다'라는 식의 반응을 한다. 그럴 땐 작은 차이도 크게 보인다. '여러 번 말했는데 여전히 안 지켜지는 것을 보니 내 말을 무시하는 게 틀림없어'라며 기분 나빠한다. 아내의 속사정을 다 듣지 못했으니 전부 알진 못하지만, 적어도 소심한 나는 마음에 불이 났다. 남 부끄럽게도, '왜 대체 아직도 정리를 안 하고 나가는 거지'라며 구시렁거렸다.


그런 시간을 잘 버티고 사이가 회복되면 상황이 달리 보인다. 내 입장에서는 아내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남편이 하는 만큼 비슷한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 명의 인격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많은 인식이 달라졌다. 플러그에 꽂힌 채 바닥에 있는 드라이기를 보며 이른 아침 서두른 아내가 보였다. 싱크대에 수북한 설거지 거리를 보며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피곤해 일찍 잠든 아내가 다음 날 불편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빨래도, 청소도, 음식물 쓰레기도 같은 시선으로 봤다.


그렇게 아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쌓이니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아내가 나에게 부탁하는 것도, 내가 아내에게 부탁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놓치는 부분을 아내가, 반대로 아내가 놓치는 것을 내가 챙기기 시작했다. 모기 많은 여름날, 야외 활동할 때 필요한 모기 기피제와 선크림을 내가 먼저 챙긴다. 아내는 물놀이에서 입을 수영복뿐만 아니라 모자와 휴대폰 방수 케이스도 빠짐없이 챙긴다. 내가 놓친 것을 아내가 챙기고, 아내도 내 행동에 그런 것을 느낀다. 시나브로 서로 죽이 잘 맞는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아내가 내 삶에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부쩍 자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서로의 성향과 인식의 차이가 너무 커서 괴롭고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건 이래서 불만이고, 저건 저래서 불평하게 되는 상황에서 왕왕 충돌했다. 그 원인이었던 각자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가 느끼는 방식이 예상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훨씬 분명해졌다. 덕분에 아내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는 방식으로 선택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부부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저희는 아직...
대놓고 방귀를 틀 정도까지
편하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이건 좀 오래 지키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이전 08화 결혼을 기념하는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