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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Apr 06. 2020

아내가 남편의 거울인 이유

아내가 내 안에 생기는 불평의 근원일 때

제목을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잠시 머뭇댄다. 이 글을 쓰는 게 용기인지 만용인지 혹은 아무것도 아닌지 잠깐 헷갈렸기 때문. 그냥 무겁지 않게 지난 7년간 아내와 겪었던 작은 일상에 잠시 찾아가 보려 한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욱 사랑해 독실하게 연애하고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실제로 같이 살면서 그렇게 사랑했던 것이 맞는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고 결혼하면 의리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본 바에 의하면 내 삶에 맞지 않는 말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한 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해 결혼한 것도 아닌데, 그 사랑의 부피와 밀도를 내가 측정해 판단할 때가 있었다. 한 마디로 내가 아내를 더 사랑하는 것처럼 느꼈다는 말이다. 이때 쓸데없이 내 안에 피해의식이 생길 때 문제가 생겼다. 몇 년 전 겨울, 내가 저녁 설거지를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평소처럼 했지만 기분이 별로였다. 아내의 예민한 반응이 며칠째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날도 그랬다. 아내는 두 아들을 2살 터울로 낳고 육아휴직을 하며 집에서 아이를 키우던 중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로 지친 상황에서 우연한 기회에 갑자기 복직을 해야 했다.


이전보다 가까운 곳으로 전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아내의 복직을 권유했는데 후폭풍이 있었다. 당장 둘째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했는데 아내는 첫째 때처럼 적응하기 힘들어하면 어쩌나 조바심을 냈다. 본인도 4년여 공백을 깨고 직장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좀 더 편한 위치로 이사할 수는 없는지 등 걱정거리가 많았다. 남편이 좀 더 넉넉한 수입을 가져다줄 수 있으면 맞벌이할 일이 없거나 시기를 늦출 수도 있었을 텐데 싶은 생각은 내 몫이었다. 최대한 모든 것을 수용하려 했으나 금방 넘칠 물 같은 무언가가 마음의 경계에서 넘실댔다.


울화였다.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을 하고 싶지만 부끄럽게도 실제였다. 내 안에 아내를 향한 불평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인내하며 애쓰고 있는데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했다. 겉으로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이미 냉랭한 마음이 얼굴에 드러난다. 딱딱하다. 태도가 차갑고 사무적이다. 마치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해야 할 일만 겨우 해내고 스스로 책임을 다했다며 위로했다. 다른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설거지가 끝날 무렵, 아내는 내 인격에 대한 어떤 말을 했고 이내 마음의 둑이 터져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싸웠다.


그 자리에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주저앉았다. 나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과 조건이 주어지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태가 벌어진 후 집을 박차고 나가 혼자 차 안에서 울며 기도하다 정신을 차렸다. 아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면 나에 대한 내 생각이 나를 지치게 했다. 내가 이렇게 화내도 될 정당함을 누가 주었던가. 나는 아내와 가정이 아니라 나만 사랑했던 것을 깨달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겁에 질린 아이들과 울고 있는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태풍이 지나가니 무엇이 부실했는지 보였다. 사랑이란 단어조차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나다. 상대를 사랑했고, 앞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한 나다. 스스로 불평을 찾고 불행을 선택하게 했다. 못마땅한 마음에 어떤 꽃이 자랄 수 있을까. 새싹은커녕 잡초와 돌만 무성한 나대지가 될 뿐. 사랑은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 어디선가 배웠는데, 정작 내 입은 그 인사말조차 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게 진짜 나였다. 그런 나를 먼저 사랑해야지, 그리고 아내를 다시 사랑해야지. 지금도 문득 마음이 불편해질 때 나 자신을 힘껏 껴안는다.


아내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거울입니다.
아내 때문에 힘들다고 느낄 때
안아줘야 할 저를 발견합니다.
양팔 크게 벌려 꽉 안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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