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하지는 않다
누구나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단어 하나쯤은 갖고 있다. 내겐 '인생'이다.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유한한 시간'으로 이 말을 정의하면,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의미 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내 나름의 의미 있는 일을 했다면 가치가 있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의미는 내게 일을 시작하는 동기이자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일을 시작하고 마칠 때 주관적인 질문 몇 가지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것이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 가슴 뛰며 몰입하게 만든 일이었는지, 나 덕분에 이전에 없던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었는지다.
자연스럽게 지난 직장에서 보낸 시간이 떠오른다. 여러 우연을 거쳐 합류한 일터에서 이 3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내가 입사하지 않았다면 재개하지 않을 사업을 맡았다. 평소 가졌던 관심사와 약간의 경험을 불쏘시개 삼아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하나의 본부로 바뀔 만큼 작지 않은 불이 되었다. 이 과정 속에 나는 물론 주변의 많은 사람이 놀라며 그 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목하게 됐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여러 분들과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 와중에 받은 월급은 덤으로 느꼈다.
그런데 이 기억을 한 발 더 들어가 보면 좀 다르게 보인다.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때때로 힘들거나 무기력했다.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고 관성적으로 일했던 때도 더러 있었다. 이 시기를 시간의 토막으로 쪼개 가치의 정도에 따라 나열하고 평균을 내보면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으로 올수록 그 가치가 희박해진 것도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모든 일이 내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인생을 더 살아보면 이게 당연한 이치란 것을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당시 나를 더 나아가도록 동기부여 해준 결정적인 순간에서 어떤 원칙을 찾고 싶어졌다.
나는 모험적인 일을 선택할 때 신이 났다. 이미 모든 이론과 구조가 잡힌 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전 직장에서 실험적으로 맡은 일이 성과가 나기 시작하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일을 찾아 했다. 그 성취만큼 내가 자라는 느낌은 일을 해낼 수 있게 하는 원천이었다. 일이 진행되는 만큼 내가 관할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고 생각했다. 연봉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겠다 짐작했는데 신기하게 들어맞았다. 세상에서 내가 그 일을 최고로 잘하진 못하더라도 그 일을 맡은 때와 장소에서는 최고 같은 최선이 되도록 일했다.
그런데 노력한 만큼 결과가 뒤따라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지 환경에 있는지 혹은 복합적인지 정밀하게 따지기 어려운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속으로 매우 창피했고 더 이상 나서지 않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그때, 내가 일을 시작할 때 잡았던 기준이 발목을 붙들었다. 내가 이 곳에서 주고받은 영향력에 책임감이 들었다. 이 자리를 맡겨준 사장님에게, 신뢰하고 지지해준 상사에게, 나를 믿고 함께 애써준 동료에게, 함께 일하지 않아도 지나가며 애정과 격려를 보내준 여러 분에게 좀 더 영향받고 영향을 주고 싶었다.
이것이 나를 가치 있게 일하게 만들었다. 나의 약점을 가리고 본성을 거스르게 만드는 어떤 힘이 됐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의미에 가까운 일들을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 시간을 매듭짓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요즘에서야 돌아보니 정말 황금 같은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돌 같이 느껴졌다. 내 나름대로 가치를 지키고자 몸부림칠 때는 알지 못했으나, 지나고 나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순간이 항상 오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알면 알수록 내게 주어진 기회와 인연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난 지금 이 순간을 단 한 번만 살고 말 테니 말이다.
제게 주어졌던 모든 것에
새삼 감사합니다.
덕분에 좀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