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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Apr 02. 2020

내 일에 나만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

내가 아는 것 말고 더 말할 게 없다면 관점이 없는 겁니다

무언가를 알수록 사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더 알게 된다. 비슷한 얘기를 노벨상을 받는 석학들로부터 들었던 듯싶다. 학문의 영역까지 갈 것도 없다. 내게 월급을 주는 대가로 하게 되는 일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상을 종종 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취업자가 아는 사실이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쌓았던 지식은 막상 취업해서 맞닥뜨리는 현장의 일과 연관성이 높지 없다. 누구나 새 역할에 맞춰 태반 이상 새로 학습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표현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던 때를 떠올리자면 신문기자로 일하던 시절이다. 엉덩이가 의자인지, 의자가 엉덩이인지 모르게 앉아서 공부한 끝에 겨우 신문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특정 분야를 맡고 나니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길 시작해야 했다.


투입한 만큼 산출되면 좋을 텐데 난 그렇지 못했다. 기자의 일은 한 마디로 녹즙을 짜는 일이다. 야채 한 바구니를 넣어 즙 한 컵을 마시는 꼴이다. 그래서 매일 새 기사를 써야 했던 일간지 기자의 일상은 몹시 거칠었다. 그 분야에 대해 뭘 알아도 쓸까 말까 한 주제의 이야기를 어렵사리 듣고는 새로운 사실과 함께 논점을 잡아 각 있게 기사를 써야 한다. 물론 이는 이론에 가까운 말이다. 하지만 총성이나 비명소리가 들리면 빠릿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초년병은 사명감을 갖고 몸을 내던진다. 생전 처음 듣는 용어와 인물이 난무하는 분야의 자료를 몇 시간씩 보고 또 보길 반복했다. 큰 틀은 이미 잘 써진 기사와 내용을 참고하고, 단 한 줄이라도 새로운 사실을 넣기 위해 몸부림쳤다.


내 수준에서 어떻게 해서든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어쩌면 어느 정도 기본적인 훈련받은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야의 소위 선수가 보기에는 함량 미달의 유사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는 것을 썼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내 생각을 거의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아는 것을 잘 배열하는 것이 내 생각이라 여겼다.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 중에서 취사선택하고 나열하는 과정에 주관이 개입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관점이 없는 선택은 군더더기가 붙는다. 굳이 필요 없는 부분이 꼭 포함된다. 한두 번은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지만 여러 번 반복하면 일정 수준에서 맴도는 것을 알게 된다. 글 쓰는 과정이 발전하려면 결국 내 관점이 필요하다. 


일도 내 관점이 없으면 관성을 따라 하게 된다. 누군가 급여를 정기적으로 주는 어떤 일을 시킨다면 그 일은 그렇게 돈을 쓸 만큼 일정한 틀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역할을 맡아 1년 안팎으로 경험하면 일의 시작과 끝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다. 맡은 일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아는 정도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딱 그 정도에서 선으로 긋고 더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않는 삶은 나를 인생의 수면 아래로 조용히 가라앉게 만들었다. 이 때는 둘째를 키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일 말고도 신경 쓸 것이 정말, 너무 많았다. 회사가 아니면 집으로 출근하는 일상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질 때다. 어느 순간 꿈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관성을 따라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는 대로 생각하는 나를 더 자주 만나게 됐다. 아이가 울면 나도 울고 싶고, 아내와 관계가 험악해지면 사는 게 가장 힘든 일 같고, 내 말대로 안 따르는 아이를 보면 폭발하듯 울화가 생기는 나를 직면하게 됐다. '모두가 이런 식으로 살아'라는 말은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삶은 내가 가치를 두는 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카로운 단어 하나가 수면 아래에서 가는 숨을 쉬게 하던 호흡 줄을 끊어버렸다. '정체성'. 이 단어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내는 삶'이 빚어낸다. 과녁을 보고 쏘는 화살 같은 인생이다. 맞출 곳을 알고 쏴야 결국 명중할 수 있듯이, 내 삶도, 일도, 관점이 없다면 정체성이 될 수 없다. 나는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다면 잠시 멈출 때입니다. 
그리고 저만의 관점을 찾은 후 다시 출발하려고요.
더 이상 어디선가 맴돌지 않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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