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이 묻고 내가 답하다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용어가 유행을 넘어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그중 하나로 '특이점(Singularity)'이란 말을 꼽고 싶다. 2005년에 미래학자인 레이 커츠와일의 책에 쓰이며 유명해졌다. 설명은 더 그럴싸하다. 어떤 기술로 인한 압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내 식으로 표현하면 코로나 19가 만든 지구적인 격변 같은 것이다. 어떤 기술의 영향력이 다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뛰어난 경우 사회 전체가 바뀐다는 의미겠다. 증기기관, 인터넷 등이 대표 예시로 언급된다. '제로 투 원'의 저자 피터 틸은 그 관점을 찬탄했다.
그는 요즘 시대가 이 관점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페이팔로 억만장자가 되고,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는 그의 인생과 궤가 같은 주장이다. 90년대, 2000년대의 경제 공황을 거치며 그 어느 때보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말에 동의가 된다. 분명 요즘 사람들은 앞선 세대보다 모험을 회피하고 탐험을 꿈꾸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이를테면, 금융계에서 위험을 줄이고자 분산 투자를 신봉하고, 생명의 근원이나 우주적 비밀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그대로의 미래를 바라고 있다는 말이 맞았다.
나도 내가 바라는 대로 미래가 이뤄지길 바란다. 내 가정이 화목하고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길 희망한다. 기회가 있다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일도 해보고 싶다. 나만 잘 살기보다 가난하거나, 여유가 없어 꿈을 꾸거나 시도해보지 못하는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역시 대체로 추상적이다. 어렸을 때처럼 특정 직업 같은 미래상은 거의 다 사라졌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비관주의라고 단언했다.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시도가 사라진 자리에 현실에 대한, 현실에 의한, 현실을 위한 생각만 가득한 탓이리라.
바랄 수 없는 미래를 그리며 달렸던 것이 언제였던가. 지나온 인생에서 그렸던 미래는 주로 남보기에 멋져 보이는 직장이나 역할이었다. 소수의 몇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리는 경주에 나도 뛰어들었다. 서로 무엇을 하는지 감추면서 혹은 끼리끼리 정보를 공유하면서, 참여한 모두가 최종 합격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 경쟁이 최고의 인재를 찾는 방법이 맞았을까. 어떤 기준으로 우열을 가려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소위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이니 세상은 참으로 각박하다. 틸은 새 미래를 낙관하는 자만 이 세상의 규칙을 깰 수 있다고 말한다.
책 제목처럼 0에서 1을 만드는 일을 모색하는 게 그 시작이겠다. 중국의 뜨거웠던 성장기를 보며 누구나 말하듯, 앞서간 나라와 기업들을 복사하듯 추종하여 따라가는 것은 경쟁의 양을 무한대로 수렴하게 만든다. 이 틀을 벗어나기 위해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점을 낯설게 보며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늘 동경하는 바다. 사업 쪽에서는 구글, 애플 등이 전설로 일컬어진다. 이보다는 내 마음에 대한 태도가 실제적이다. 내 영역에서 이기고 쟁취하려고 하기보다, 남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내 삶의 숙제다.
상황과 환경을 따라 마음을 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실마리를 찾아간다. 보이고 들리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사실 본능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답지 못했다. 오랫동안 타인의 반응을 따라 자주 생각을 바꿨다. 맡은 일이 잘 풀리면 기분이 좋았고, 잘 안 되면 우울해했다. 현실 속 수많은 판단들이 내 안에서 마음을 빼앗고자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분명 그것들이 삶을 더 낫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미지의 미래를 기대하고 긍정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이게 내가 발견한 1이다.
믿는 바대로 정말 살아낼 수 있다면,
세상이 좀 덜 각박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간 제 마음을 자주 빼앗았던 주제를
다르게 보기 시작할 때,
인생을 그저 흘려버리지 않고
탐험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