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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Jun 25. 2020

쉴 때 마음 편하게 잘 쉬려면

여름휴가 때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쉬지 못했다면

돌이켜보면 나의 여름휴가는 적잖게 일에 매어 있었다. 남들처럼 오래전부터 여행지와 숙소, 교통편을 알아보기보다 그때마다 일의 사정에 맞춰 급하게 정할 때가 많았다. 팀장을 맡고부터는 더 그랬다. 팀원과 함께 동시에 쉬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남들이 쉴 때 같이 쉬면 좋지만 그럴 수 없다면 가급적 서로 겹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내가 팀원의 역할을 지원할 수 있어도, 팀원들이 내 역할을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휴가 중에 일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업무 전화를 받는 일은 그래도 추억거리였다.


문제는 휴가 이후의 일 걱정 때문에 제대로 못 쉬는 마음이었다. 장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걱정하는 매출 고민이 내게도 있었다. 전체적인 살림 관리를 해보면 팀원의 월급이라도 제대로 지급하기 위해 확보해야 할 실적 수준을 알 수 있다. 휴가철 전에 잘 팔리면 걱정을 덜지만, 만약 시원치 않으면 정말 가시방석 앉은 듯 편할 날이 없었다. 보통 매해 7~8월은 전형적인 비수기다. 판촉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얼마 안 있다가 추석 명절 경쟁이 치열해져 판매 여력이 적다. 오죽하면 고생은 많이 했는데 팔리지 않아 괴로워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여행지 가서 아내와 종종 다퉜다. 아내가 준비한 여행에 수동적으로 따라간 남편이 원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운 여행지를 찾고 경험하길 좋아하는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격려해주고 반응만 해줘도 충분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가족과 보내는 일정을 짜임새 있게 잘 보낸 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휴가 중이라도 꼭 확인해야 할 일적인 부분을 살펴볼 짬을 얻거나, 업무적으로 필요한 책을 읽으며 사색할 틈을 얻고자 했다. 그런 태도가 알게 모르게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휴식이 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잘 일하기 위해 잘 쉬어야 한다'는 말을 금언처럼 품고 지냈다. 이런...! 이 탓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기 위해 일하는 것인데, 더 중요한 것은 놓친 채 덜 중요한 것만 붙잡으며 오랫동안 지냈다. 일이 내 인생에 중요하고 영향력 있으며 여러 가치를 갖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 가정의 시간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이었다.


옳게 말한다면, 잘 쉬기 위해 일하는 것이 맞다. 설령 내가 사장님 같이 일하는 팀장이라 할지라도, 가족과 함께 쉬며 충분히 행복할 수 없다면 제대로 일하고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리더에게 그럴 여유가 없으면 팀원을 배려하거나 상황을 제대로 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미숙했던 시절에 열정 있지만 조급했던 나의 조타가 떠오른다. 이로 인해 괜히 바빴을 주변 사람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민감하게 여겼던 고민거리는 사실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쉬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쉬며 일한다. 올여름도 사정에 따라 휴가를 급하게 잡았으나 이전과는 달랐다.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잠시 내려놓고 쉬는 것에 집중했다. 덕분에 매일 쓰던 글도 잠시 쉬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멀리 함께 다녀오는 일정을 충분히 누렸다. 아이들과 갯벌 체험을 하며 뒹굴고, 물놀이를 하고 바비큐를 먹으며 오붓하게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삶의 모판을 자라게 하는 봇물이었다. '이번 휴가는 지금까지 가본 것 중 최고였어'란 아들 녀석의 말에 어깨가 들썩거리니, 일하는 손도 더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제가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을
휴가 중 놓을 수 없다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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