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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May 14. 2020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법

그들보다는 좀 고급스럽게

시간이 오래 지나도 기억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한 사람은 직속 상사였고, 또 다른 사람은 옆 부서의 상사였다. 그들을 통해 수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를 나눌까 한다. 직속 상사는 대가 곧고 당신이 하시는 일에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표정이 많지 않았는데 잘 웃지 않으셔서 어떤 말을 꺼내면 무게감이 있게 느껴졌다. 특히 내가 한 일을 언급할 때는 조목조목 짚을 정도로 꼼꼼하셨다. 키는 내 어깨 위치 정도로 아담한 체구셨지만 깨끗하게 닦인 안경 너머의 눈빛 때문에 인상이 강했다. 함께 술자리를 하기 전까지는 멋있었다.


몇 잔 돌지 않았는데 벌써 언어가 널브러졌다. 그분은 자신의 3번째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재작년에 첫 번째 여자를 잠시 만났다가 헤어졌고, 두 번째는 몇 달 전, 세 번째는 얼마 전에 만났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대화의 수위는 전체관람가였지만 옆에서 같이 있던 사람처럼 웃을 수 없었다. 재미있으라고 혹은 막내를 속이려 지어낸 것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다 부끄러웠다. 며칠 전 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입시 준비 중인 당신의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탓이다. 말인지 방귀인지 본인은 모르는 듯했다.


또 다른 사람은 말쑥한 외모에 키가 175cm 정도 되는 중년 남성이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외모라 남자가 봐도 잘 생겼다고 하는 얼굴을 가졌다. 그 회사를 다니기 전부터 다른 일로 종종 마주쳤던 사이라 옆 부서의 상사란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내심 반가웠다. 뒷말을 흐리지 않고 확실하게 매듭짓는 시원한 말투에 매번 공식적인 일로 대화할 때면 호혜적인 태도를 보여 소통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평이 좋지 않았다. 대체로 그분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겼다. 그분이 말하면 안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식이었다. 


부서 간의 일로 부딪히니 그분의 민낯이 드러났다. 더 이상 내가 속한 부서의 사정을 봐주지 못하겠다며 그분의 사정을 장황하게 말했다. 요지는 자신의 부서에 유리한 선택을 해야 하니 양보해달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내부 협력하기로 한 애초의 약속을 어긴 점이었다. 일종의 강변이었다. 이런 모습은 이후에 더욱 자주 볼 수 있었다. 본인이 손해 보거나 책임질 일이 있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등 강압적으로 행동했다. 평소 그가 보여준 신사적인 언변과 너무 달랐다. 많은 사람이 그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여겼다.


그 두 사람과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거리를 뒀다. 신뢰하기 어렵다고 여긴 탓이다. 사무적으로 대하거나 가급적 외면했다. 마음이 가지 않으니 모처럼 얽힌 일도 잘 풀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문득 그때 좀 다르게 반응할 수는 없었나 돌아보게 된다. 관계가 깊어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은 방어적인 태도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자 그렇게 행동했지만 사실 이미 영향을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상대방의 행동에 대응하여 반응했을 뿐, 그들이 나의 어떤 행동에 대해 영향을 받도록 만들지 못해서다. 


만약 지금처럼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염치없는 말과 행동에 물들 것을 걱정하기보다 내가 확신하는 가치와 살아내는 힘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재치와 해학을 담아 익살스레 살짝 꼬집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지난달 수능 모의고사가 많이 어려웠다던데요'나 '지난번에 다니시던 교회가 어디라고 하셨지요'라든지. 그들 앞에서 되레 부끄러웠던 내가 되돌려줄 수 있는 것은 뼈가 단단한 농담이겠다. 혹시 싸우자고 덤벼들면 도망가며 한 마디 더할 수 있겠다. 그래도 부끄러움은 아시는 것 같다고. 


저는 때때로
몽둥이보다 단단한 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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