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주는 돈만큼 값어치를 했다고 느낄 때
누구에게나 인생의 첫 월급을 받는 순간이 있다. 무언가를 위해 들인 시간과 수고를 돈과 맞바꾸는 경험이다. 난 대학교 3학년 때 과외를 하며 그 돈을 처음 손에 쥐었다. 두 살 터울의 형제를 각각 돌보는 일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둘째는 부산한 느낌이 컸고, 첫째는 비교적 의젓했다. 그래도 큰 아이가 많이 도와줘 일은 수월했다. 그때는 따로 과외용 학습지를 만들 정도로 열심이었다.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큰 효과가 있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3달 정도 됐을 때 중단하자고 통보받았다.
그즈음부터 내게 주는 돈이 아깝지 않게 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예상치 못했던 거절의 그림자를 오래 바라본 탓이었을까. 기대와 달리 다른 사람이 내 능력을 꼭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퍽 실망했다. 돈을 주고서는 더욱이나. 그 사실이 자존심을 긁었다. 부족한 교육 역량을 채우고자 공부도 하고, 왕복 1시간 넘는 거리를 오가면서 지각 없이 충실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부모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터였다. 혹시 나를 소개해준 이모와의 관계가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애먼 생각도 해봤다.
어떤 이유로든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인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돈을 더 주고라도 일을 시키고 싶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현실 인식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어릴 때부터 성실한 태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쨌든 받은 돈보다 넘치게 일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 친구만 있으면 든든해',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니 믿고 맡길 수 있어' 같은 말을 듣기 원했다. 덕분에 맡겨진 일을 했던 많은 시간 동안 '사장님처럼 일하는 직원'이 되고자 무던히 애썼다.
그런데 일에 익숙해지면서 처음 같은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졌다. 자꾸 주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내 기준에 나보다 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이면 괜히 나의 수고가 커 보였다. 비슷한 월급을 받는데 내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으면, 더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사회생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누구든 월급 받는 만큼은 일해야지'라는 식의 의분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미련한 곰'처럼 나만 열심인 것 같은 소외감이 들었다. 다들 알아서 적당히 하는데, '무슨 인정에 목말라 그리 열심히 하나' 싶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사장님과의 의리를 지키고자 일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책임을 다하도록 만드는 의지의 경계였다. 그럼에도 사장이라면 절대 뽑고 싶지 않을 몇몇 직원과 함께 일하며 시나브로 나태해지는 마음에 종종 놀랐다. 받은 만큼만 일하고, 맡겨진 것만 하고, 보일 때만 열심히 하는 태도가 업무 곳곳에 묻어났다. 애쓴 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연봉을 협상할 때 기대만큼 오르지 않으면 섭섭했다. 그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노력에 대한 평가와 그 보상에 대해 늘 다림줄을 갖고 재보고 있었다.
문득 일을 대하는 마음이 내 노력의 가치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게 다는 저울에 물건을 올리면 숫자로만 가늠할 수 있듯, 내 헌신을 월급의 저울추에 견주니 고만고만한 사람이 됐다. '월급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별생각 없이 했던 말이, '가성비가 떨어지면 본전 생각 나는 사람'을 만드는 줄 몰랐다. 내 수고로 이런 인식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늘 고유하고 남다른 사람이 되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 마음을 지키고자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에 대한 관점을 만들기 때문이다.
제게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 가치를 지키고자
무언가와 싸우고 있지 않다면,
중요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