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주말이면 꼭 참치를 보러 간다.
오늘도 아침부터 바지런히 의정부로 향했다.
여전히 누워서 나를 반기는 너.
너도 나를 기다렸을까.
돌아오는 주에 동생 생일이 있어 아웃백에 들러
이것저것 포장을 했다. 누워있는 참치를 두고 나가 외식을 할 수가 없어서.
가족이 모여 밥을 먹을 때에도 참치는 그저 거실에 누워 멀뚱히 우리를 바라본다.
낮에도 통증이 찾아오긴 하지만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에 소리치고 돌봐주는 엄마도 잠을 못 자게 한다. 사실은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고통스럽겠지만.. 괴로워 잠 못 자는 날들이 계속되고 그나마 낮에 잠깐씩이라도 짧게 선잠을 잔다.
참치가 잠에서 깬듯하여 밥을 먹이고 다시 이불에 눕히고 나도 그 옆에 가만히 누워본다.
그리고 그 까만 눈에 조용히 눈을 맞춘다.
벌써 이렇게 된 지도 삼 개월이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열일곱, 추정이지만 강아지 나이로 치면 오래 산 것 나도 안다.
그렇지만 타인이 '아휴 오래 살았네요'라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듣기 괴롭다.
사람으로 치면 고작 고등생교 1학년 정도인데
한참 앞을 나아가는 나이에 너는 왜 그저 자리에 누워 죽음을 기다려야 할까.
곱게곱게 길러놨는데 나는 왜 누워있는 너를 바라만 보아야 할까.
너의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을까.
이렇게 무력하게 누워만 있는 너의 삶은 그저 고통일까, 까만 너의 눈을 들여다보아도 해답이 없어 답답하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주어진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차 보여 나는 그저 갑갑하고 그저 미안하다.
가끔은 이렇게 고통으로 생을 연명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너의 마음을 읽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함께 갔던 바다에도, 매년 추석이면 함께 가던 한강에도, 날 좋은 가을날 태어난 남편 생일이면 늘 함께 오르던 하늘공원에도 이제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힘들어진 너와 함께 할 수 없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늙고 병든 노견의 삶.
지금은 그저 돌아오는 내 생일에 너와 함께 늘 그러했듯 우리 셋이 사진 한 장 남길 수 있을지, 이제는 당장 눈앞의 시간도 아무런 확신이 없다.
그래도, 그 와중에 밥을 잘 먹어서 다행이고
진통제가 잘 들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또 아주 작고 작은 것에 기대어 희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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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28. 남겼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