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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 없는 게 죄가 되는 세상에서

고래들의 세상에서, 크릴새우로 사는 법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협력업체와의 카톡 후 수면의 질 급하강. 새벽 3시부터 깨어 있다가 7시 산책 후 탈진.

헬스클럽은 저녁으로 미루기로 결심.


저는 빽이 없습니다.


여자라면 보통 하나쯤 있다는 명품 백은 고사하고, 소위 말하는 인맥의 ‘빽’도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가방은 가볍고 짐이 많이 들어가는 실용적인 것을 들었고, 내 능력에 맞는 자리를 찾아 최선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열심히 하면 결국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누구 사장님 라인이네, 누구 상무님 라인이네.

말들이 돌아도, 저는 늘 제 자신에게 떳떳했습니다.


어젯밤, 정확히 병가 1일 차 밤. 협력업체를 통해 들려온 회사 소식은 저의 모든 신념과 자부심을 다시 한번 갈갈이 부수었습니다.


여러 번 민원으로 저를 괴롭혔던 ‘그분’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국민신문고를 넣었다 했던가요? 그 답변에 불복한 그는 이번엔 윗선의 ‘빽’을 이용해 압력을 가해왔다고 합니다. 팀장과 제 대직자가 시의원에게 불려 갔다더군요.


저는 어쩌면 기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병가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 일은 제 손을 떠났으니까요.

하지만, 빽이 있다고 불공정과 억지가 정의가 될 수는 없지 않나요?


새 집을 지었습니다. 창문도 만들고, 발코니도 만들고, 넓은 거실과 침실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뒷문에 잠금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도둑들이 드나들었습니다.


도둑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고 ‘이제 출입금지’라고 써 붙였더니, 이번엔 도둑이 말합니다.

“문을 잘못 달아서 내가 피해를 봤다.”


그리고는 마을 촌장을 불러와, 주인이 문을 잘못 달았다며 적반하장을 시연하는 꼴이지요.


중국의 한 유명 여배우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재벌과 결혼할 생각은 없나요?”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죠. “제가 바로 그 재벌인걸요.”


저도 그녀처럼 박력 있는 여성이 되고 싶었습니다. 불공정과 억지가 만연해도, 정도를 지키며 살고 싶었습니다.


첫 사업이라 소소한 곳 하나하나까지 정성을 기울였고, 심지어 불법 클릭이 발견된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 애쓰며 영혼을 짜내어 글을 썼습니다.


이제 저는 병가로 나와 있으니, 모든 책임은 제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겠지요.

“예예, 앞 담당자가 잘못했어요.”


어쩌면 저를 잘라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조율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빽이 없고, 크릴새우처럼 작고 힘없는 저는 고래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오늘도 꿈을 잃고, 희미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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