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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는 아침, 다시 나를 만드는 시간

새벽 3시의 방황 끝, 다시 걷기 시작한 아침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어제 과장과의 대화 후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함. 새벽 3시에 눈을 떠 방황 시작.


어제 실망과 분노를 경험한 후, 평소보다 더 잠이 안 왔습니다. 새벽 3시에 눈을 떠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다 오랜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일찍 눈 떠지면 그냥 아침 운동을 해라. 우리 나이는 이제 운동을 할 때다!"


말투는 직설적이지만, 대학생 때부터 저를 이끌고 취업 설명회에 끌고 다니며 따끔한 충고를 해주던, 졸업 전 취업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고마운 친구입니다.

"여름이라 더운데..." 계속 망설이다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아침 7시가 다 되어서야 문밖을 나섰습니다.

저는 선크림으로 피부에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잘 타는 체질이거든요.

저의 출근 시간은 보통 아침 7시 20분 정도. 출근길의 뜨거운 태양과는 달리 아침의 온천천 공원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아직 완전히 뜨지 않은 해가 기다란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아침의 온천천 공원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습니다. 말총머리를 활기차게 흔들며 뛰어가는 젊은 소녀, 함께 뛰는 러닝크루들, 유모차를 밀며 뛰는 젊은 부부, 양팔을 활짝 펼치고 '프리덤'을 외치는 듯 자유롭게 뛰는 청년, 유유히 운동기구를 즐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났던 무표정하거나, 피곤이 가득한 얼굴들과 달리 건강하고 유쾌함이 가득한 얼굴에 저도 덩달아 즐거워졌습니다.

6㎞는 뛰어야 한다는 친구의 '각박한' 조언에 따라 차마 뛰지는 못하고,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훌라후프도 돌리고, 달랑 10초였지만 철봉에도 매달려 보고, 벤치에 누워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도 바라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늘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고3 시절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하교하는 길에도 캄캄한 하늘의 별(친구는 인공위성이라고 했지만)을 보며 힘을 내곤 했지요. 동네 아저씨들은 "하늘에 뭐가 그렇게 보이니?"라고 껄껄 웃곤 하셨지만요.


1시간 30분 정도 걸었더니 햇빛이 따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빨갛게 익지 않으려면 얼른 돌아갈 시간이에요.

내일부터는 아침 6시에는 나와야겠어요.

적어도 하루 하나의 일과는 생긴 것 같군요.

그렇게 천천히, 걷다보면 언젠가 다시 뛰고, 다시 세상과 마주할 용기가 생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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