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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의 빛을 훔치고 사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품위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세 시간 자고 깨고, 다시 두 시간마다 깸. 며칠째 분노가 이어져 오늘은 이명까지 나타남.


아프고 지친 제가 준비한 마지막 무대.

그런데 그 무대 위에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올라서려 합니다.


어제 사전탐방을 나가 길을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현장 기관과의 협의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 옆자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내일 뭐 준비하면 돼요?”

“내일요? 안 와도 됩니다.”

“팀장님이랑 제가 가기로 했어요.”


…또 그러더군요.

직접 말하지 않은 채 이미 결정이 내려져 있고, 저에게는 그 사실을 전달하는 것조차 통보의 형식을 빌린 변명뿐입니다. 제가 직접 기획하고, 미리 협의하고, 안내문까지 만든 그 프로그램을 그들은 자신의 성과인 양 가져갈 것입니다.


그들이 현장에서 “날씨가 더워서 고생했지 뭐야.” 라며 웃을 장면이 눈앞에 선합니다.


얼마 전 행사의 한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진행을 맡기 전, 팀장님이 지나가듯 말했습니다.

“대본만 써주면 내가 읽을 수 있는데.”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마음 한켠에 알 수 없는 의문이 남았습니다.

아, 무대에 서고 싶었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었구나.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빛을 주워 자기 것처럼 내세우는 모습을 저는 그제야 봅니다.

그들에게는 통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상누각입니다. 제가 사라지면, 다음에는 또 누구의 등을 밟고 서려 할까요.


오늘 저는, 다른 이들의 빛을 훔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씁쓸함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준비를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품위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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