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신청서 앞에서 마주한 무심한 얼굴들
오늘의 증상: 4시간 잠. 마음이 불안해 쉽게 잠들지 못함.
병가 신청서를 낸 뒤 회사의 반응에 마음이 무너져 내림.
드디어 병가 신청을 마음먹은 날입니다.
사실 저는 바보예요. 평소에는 조리 있게 말도 잘하고, 이치도 따지는 편인데 정작 내 이익을 지키는 일에는 늘 서툴렀죠.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주겠지.’ ‘모르면 어때, 나는 내 마음에 떳떳한데.’ 늘 이런 식이었어요.
지금도 예전 회사 팀장님은 저를 보면 이렇게 말하곤 하십니다.
“저 저 바보, 세게 생겨가지고는 속은 물러터져서. 혼자 일 다 하고, 끙끙 앓고!”
이제 와서, 제가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묻는다면 조용히 속으로 대답하겠죠.
혼자서 사업을 기획하고, 긴 터널 같았던 계약 과정을 준비하고, 홈페이지 메뉴부터 온갖 규칙을 정하는 이 ‘자잘한’ 모든 과정들. 끝없는 마라톤을 홀로 달려왔다고요.
그리고 잡동사니가 쌓인 작은 회의실에서 저의 ‘통보’와 인수인계가 시작됐습니다.
팀장, 주무, 그리고 가장 밀접하게 업무를 나눈 동료 한 명. 그 세 사람 앞에서 진단서와 업무 인수인계서, 예산안 및 집행 내역까지 꺼내어 놓고 담담하게 증상을 설명했지요
저는, 의사선생님의 조언과 몸이 원하는 두 달 대신 한 달만 쉬기로 조심스럽게 타협했습니다. 그간 함께 일한 사람들의 '정'이라는 것이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한 저의 마지막 호의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제게 “몸은 좀 괜찮냐”는 말을 건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은 마치 취조하듯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 내년 예산은 어떻게 할 거냐?
(이미 작성된 파일이 있는데도 행정 전문가인 그들은 모른척했습니다. 저는 "블랙아웃이 와서 더는 못 하겠다"고 하고 지난해 자료만 보내주었습니다.)
-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할 거냐?
(연초부터 수차례 제출했던 계획안을 그 누구도 읽지 않았다는 듯 되물었습니다. 저는 "하고 싶으면 직접 해보시라"고 답했습니다.)
- 프로젝트는 어떻게 할 거냐?
("인기 많으면 골치 아프다"며 왈가왈부하더니, "왜 계약에 안 넣었냐"고 저를 탓했습니다. 그렇게 가르쳐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저는 바보처럼 마무리를 위해 “금요일까지만 더 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 몸 상태에 대한 관심은 일말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오직 ‘하고 가라’, ‘남겨라’ 같은 말만 쏟아졌습니다.
제 마음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더는 좋은 마음을 쏟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지요
업체 담당자에게 인수인계를 하다가,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이모부 장례식장에서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쏟아졌습니다.
당신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저는 완전히 마음이 떠나버렸습니다.
그게 당신들의 바람이었나요? "이제 프로그램도 다 짜놨으니, 당신은 필요 없다"고요?
심지어 제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잠시,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웃기지 마세요.
이 정도 성과는, 저는 어디서든 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능력은 제가 갖고 있는 것이지, 이 조직이 준 게 아닙니다.
저는 체력도, 심력도, 마음도 다 잃고 떠나지만, 당신들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부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먼저 돌보세요. 그렇지 않은 결과는 저처럼 되기 쉬운 세상이니까요.
진짜 강한 사람은, 끝까지 남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멈출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