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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잘한다는 말의 무서움

장례식장에서 들은 한마디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약을 바꾼 덕분에 오랜만에 숙면함. 갑작스러운 부고로 몸의 상태를 살필 틈도 없이 서울행 KTX에 오름.


오늘은 원래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내며, “이제는 쉬어야겠다”는 제 마음의 결심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적어도 계획은 그랬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지요.

계속 편찮으시던 이모부께서 돌아가시면서, 저의 첫 병가 선언은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여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노련하게 안대와 이어폰을 챙기고, 서울역에서도 망설임 없이 길을 찾아 장례식장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다년간의 국내외 나홀로 출장으로 이 정도는 껌이지요.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3주 만의 만남이었지만, 서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얼굴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엄마가 끓인 북어국이 훨씬 맛있다.”


저는 담담히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끓인 국을 먹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요.”


어릴 적 엄마는 늘 남을 챙기느라 바빴습니다. 친척이 아프면 반찬과 죽, 국까지 손수 만들어 나르던 분이었지요. 그런데 정작 저에게는 최근 10년간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준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그때 엄마가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혼자서도 잘하니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사람들은 저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넌 혼자서도 잘하잖아.”

“네가 알아서 다 하니까 편하지.”


그 말은 언제나 칭찬처럼 들리지만, 실은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처럼 느껴집니다.

위로 대신 책임이, 관심 대신 거리감이 따라붙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혼자 잘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결국 버티는 법을 몸으로 익혔을 뿐입니다.

살아남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혼자서도 잘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랑일까요, 아니면 슬픈 생존의 결과일까요.


“혼자서도 잘하니까.” 이 말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서 무겁게 울립니다.


진짜 잘한다는 건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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