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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단서를 받았습니다

조직도, 세상도 나를 버렸는데 까짓것 두 달 쉬는 게 뭐 어떻다고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역시나 잠을 못 잠. 두 시간마다 깨고, 일하다 울컥해 밖으로 나갔음.

기운이 없고 삶에 대한 의욕도 없음. 약을 더 세게 바꿈.


오늘은 결국 두 달 병가 진단서를 받았습니다.

‘금요일에 제출하고 병가를 내야지!’

이 일념 하나로 이번 주를 버텼습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끈질긴 민원. 이번에는 국민신문고까지 올리셨더군요.

예, 아주 잘하셨어요.

화내고, 소리 지르고, 귀찮게 구는 사람에게 언제나 져주는 게 이 나라 시스템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받는 모욕과 스트레스는 늘 담당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많은 공무원과 선생님들이 경험과 능력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는 걸까요.

이제 저도 곧 그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도리를 말하지 못하고, 설득을 포기해야만 살아남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블랙컨슈머가 판치는 기업들, 억지를 부리면 다 받아주는 관공서, 위협적인 학부모가 선생님과 아이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교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공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작은 새우 같이 미미한 저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는 세상.

살아 있는 듯, 죽은 듯, 경계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다시 한 번 진단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달 쉬지도 못할 거면서, 세 달 진단서 받아서 뭐 해요?”

그 말이 뼈에 박혔습니다.


소심한 저는 사실 한 달만 쉴 생각이었거든요.


그래도 오늘만큼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조직도, 세상도 나를 버렸는데, 까짓것 두 달 쉬는 게 뭐 어떻다고.


그냥 쉬어버릴 겁니다.

소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키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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