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앓은 자리에 남은 헐렁한 셔츠
오늘의 증상: 3~4시간 자다 깨는 증상 지속 중. 스트레스로 무기력증 증가. 입맛을 잃어 살이 쭉쭉 빠지는 중.
세상만사란 원래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요.
회사에서 온갖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번아웃을 얻은 이후, 몸무게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갑상선 기능 저하가 오고 있다며 조심하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보통 갑상선 기능 저하는 살이 찌는데, 이것도 다 호르몬 영향인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살은 찌고 근육은 빠지더라고요.
저는 원래 몸무게 변화가 드라마틱하지만 늘 근육은 숨겨져 있는 '건강한 돼지'였거든요.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병으로 얻으면서 온갖 증상이 따라왔습니다. 수면제를 먹어도 3시간 이상 자기 힘든 불면증, 컴퓨터 블루 스크린처럼 뇌가 정지하는 현상, 이명과 현기증, 심지어 쓰러졌던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제게 가장 생소했던 증상은 ‘입맛 없음’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먹어서 푼다’ 주의자입니다. 오래전 대학 특별 전형에 떨어졌을 땐 밤새 울며 치킨 두 마리를 해치웠고, 서울에서 전세 사기로 집을 날렸을 땐 치킨과 피자를 곁들여 울던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그런 제가, 요즘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습니다.
<고독한 미식가>를 봐도 침 한 방울 안 고이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떠올려도 아무 감흥이 없어요.
게다가 회사는 안 나가고 있지만 "너네 팀장이 이랬다더라”, “그 직원은 요랬다더라” 하는 제보들은 여전히 실시간으로 도착 중입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직장 괴롭힘 일지를 정리하다 보니 “이런 일도 참았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나더라고요.
스트레스에, 식욕 부진까지 겹치니 호르몬도 별 수 있나요. 몸무게가 쭉쭉 빠지고 있습니다.
근력이 먼저 빠지고 있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꽉 끼던 옷들이 하나둘씩 들어맞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거울 속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성분들이라면 이 느낌, 아시죠? 이대로라면 다음 주쯤 55사이즈를 찍을지도 모르겠어요.
키도 크고 뼈대도 있는 저에게는 거의 기적 같은 숫자거든요.
인생이란 얻는 것이 있으면 버리는 것이 있고, 쓸데없는 공부란 없다는 옛 어르신들의 명언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기며 체감합니다.
이렇게 어른 되는 공부를 하며 자동으로 살도 빼고 있으니 이쯤이면 분노를 좀 내려놓아야 하는데, 아직은 수양이 부족해서 그런지 그건 잘 돼지 않네요.
올여름, 여러분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셨나요?
얻고 버리고, 얻고 버리고.
어쩌면 인생이란 한 컵의 물을 채웠다 비웠다 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