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도구 됩니다 – 20년 직장생활 후기
오늘의 증상: 쓸데없는 미라클 모닝으로 밤낮이 바뀌어 고생 중.
이 더운데 열사병 걸릴 거냐며 의사 선생님께도 혼남. 간헐적 이명 증상과 입맛 없음 지속 중.
챗지피티에게 따끔한 충고를 듣고, 인생 재설계를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20년의 직장생활이 떠올랐어요.
스물네 살,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는 꿈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죠. 그때 배운 인생의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팀장님께 배운 전화 예절입니다. 당시 팀장님은 항상 공손하게 통화하시고, 전화 말미엔 꼭 “감사합니다”를 붙이셨어요. 저도 그 영향을 받아 어느새 “감사합니다”가 입에 붙었답니다.
이직 후, 중국 공장과 납기 문제로 언성을 높이다가도 전화 끊을 때는 “시에시에(谢谢-감사합니다)”라고 무심코 말해버렸죠. 저는 "졌다"라며 웃었고, 상대방도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이런 감사의 습관 덕분에 불꽃이 튈 정도로 싸운 후에도 다시 정답게 통화하고, 만나면 함께 식사도 했답니다.
둘째는 신입 오리엔테이션 때 인사팀장님의 말씀입니다. “바이어 된다고 잘난 척하지 마. 협력업체 담당자들이 훨씬 경력 많고 전문가야.” 저는 자연스럽게 ‘공손 모드’를 장착하게 되었고, 덕분에 회사에서도 협력업체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네 번의 이직 후 다섯 번째로 고른 회사가 현 직장입니다. 직전 회사가 출퇴근에 왕복 3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이었기에 ‘적게 벌고 적게 일하자’며 교통이 편리한 곳을 선택했어요.
5년짜리 계약직이었지만, 잠깐만 일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불행히도 ‘성실 모드’, 정확히는 ‘노예 모드’가 몸에 밴 사람입니다. 지금 직장 사람들처럼 건성건성 일하는 걸 배우기 어려웠어요. 행정도, 글도, 기획도 다 해치웠습니다.
말없이 열심히 했더니, 작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원래 이 사람은 이 정도 하는 사람’으로 여겼죠. 그러다 보니 저는 이 회사에서 도구처럼 이용만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10년이나 일하다니! 이 정도면 ‘노예 자격증’ 같은 것이라도 발급받아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여기서도 배운 것이 있습니다.
“내 몸을 낮추어 회사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나서서 열심히 할 필요 없다” — 이 두 가지입니다. 열심히 하면 고마워하기는커녕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현 회사였습니다.
물론, 이런 조직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작은 회사라도 사람을 귀히 여기는 곳은 분명히 있어요. 저는 그런 회사를 경험해 봤기에 더욱 절실히 느껴요.
그러니 앞으로의 바람은 단 하나입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또 지금 회사에 대한 원망 섞인 글이 되어 챗지피티에게 욕을 먹겠군요.
그래도 이 글이, 지금 직장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나답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다시 꺼내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