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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벨 업' 할 수 있을까요?

인과응보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간헐적 이명 현상 지속. 수면의 질은 조금 나아진 편.

회사 관련 소식이 들려오면 마음이 크게 동요하고, 기분이 나빠지며 속도 뒤틀림.


요즘 <나 혼자만 레벨 업>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습니다. 약하디 약한 주인공이 기이한 계기로 레벨업 능력을 얻고 점점 강해져 가는 이야기죠. 어째 옛날 중국 무협과도 비슷하지 않나요?


어릴 때부터 무협을 좋아했습니다. 선한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넘어 악인을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들. 그 단순한 세계가 좋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곤 했죠. “초기 무협은 주인공이 절대 죽지 않으니 유치하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예측 가능함’이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반드시 이길 걸 알기에, 안심하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거든요.


어른이 되어 마주한 현실은, 무협보다 훨씬 냉정했습니다. 무협 세계의 약육강식은 있지만, 그 끝에 항상 인과응보가 기다리는 건 아니니까요.


성실하게 일하고, 남을 배려하고, 본분을 지키는 사람은 약삭빠르게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 속에서 늘 약자나 바보 취급을 받기 마련입니다. 고개 숙이고, 상처받고, 그래도 버티는 게 일상이었죠.


<나 혼자만 레벨 업>의 성진우는 그런 세상 속에서 감정을 하나씩 죽여가며 스스로를 단련하고 강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가족을 구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구하는 존재가 되죠.


하지만 저는 성진우처럼 강하지 않습니다. 살벌한 현실 앞에서 도망치듯 숨어버린,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회사에서 들려오는 사소한 소식, 아니, 그 회사의 이름만 들어도 다시 분노가 치밀고, 울화가 터져 하루가 흔들립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입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었지만, 아직 마음은 단단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레벨업 중인 건 아닐까?’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내 안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견디는 힘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시 집 밖으로, 사회로 나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집 안에 웅크린 채 머물게 될까요?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말 안 끝났는데 어디서 일어나!” 같은 말로 사람을 누르는 세상엔 더 이상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당장은 초라한 도망자일지라도, 언젠가 다시 일어서서 불합리 앞에서 등을 보이지 않는 내가 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아니, 어쩌면 이미 —

천천히, 아주 느리게 ‘레벨 업’ 중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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