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는 고무줄처럼, 불편함도 함께 사는 법
오늘의 증상: 불면 증상 지속. 불안 증상 및 무기력증, 간헐적 이명 증상도 함께 증가. 의사 선생님과 의논하여 약을 바꾸기로 함.
여러분은 특별히 불편하거나 두려운 것이 있나요?
어린 시절, 제 악몽을 지배한 건 귀신이나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고무줄 하나였어요.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공간에,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하나가 있었습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계속, 그리고 계속 당겨지는 고무줄. 이상하게도 어린 저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울다가 깨어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하찮은 것 같지요?
요즘 제 악몽을 지배하는 건 회사입니다. 병가 연장을 위해 회사와 다시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구역질이 나고 속이 뒤틀립니다. 회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온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조금 더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병가 연장 신청을 위한 새 진단서도 받아왔습니다. 혹시라도 흠을 잡을까 싶어 이미 효력이 있는 내용인데도 다시 준비한 겁니다.
진단서를 스캔해 두고도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팀 단톡방에 “병가를 연장해야 할 것 같다, 양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못 봤다고 할까 싶어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예상대로 읽씹. 사실 뭐,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녁 무렵, 야근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 회사에 가서 직접 결재를 올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른 팀 지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요즘 야근하는 사람 많나요? 잠시 회사에 가서 병가 연장 신청하려고요."
그러자 지인은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그런 걸 왜 직접 와요? 팀 서무한테 서류만 주면 돼요. 만약 안 해준다면 과 서무에게 얘기해 줄게요.”
괜히 저 때문에 곤란해질까 망설였던 팀 서무에게 결국 연락을 했습니다. 서무는 시원하게 해 주겠다며 “혹시 직접 오라고 하면 몸이 안 좋다고 말씀드리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작은 친절에도 쉽게 무너지는 요즘 제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회사가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 불편함이 저를 죽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어쩌면 저는 너무 도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짓것, 직접 오라고 하면 가면 되지! 오히려 그 순간이 직장 내 괴롭힘의 증거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조금 편해졌습니다.
팀 서무에게는 “결재만 올려주고, 혹시 직접 오라면 가겠다. 걱정하지 말라”라고 전했습니다. 내일쯤 답이 오겠지요.
돌아보면, 터무니없던 고무줄 악몽처럼 회사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사실 별것 아닐지도 모릅니다. 최악이라 해봤자 그만두는 건데, 그만둔다고 제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잖아요.
계속 도망만 다니다 보면, 왜 도망쳤는지도 잊게 될 겁니다. 그러면 조금만 불편해도 늘 도망치는 사람이 되겠지요. 이제는 불편해도, 두려워도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려 합니다.
까짓것 직접 와서 설명하라면,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제 두려움과 똑바로 마주하고 오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끊어지지 않는 고무줄 같은 불편함이 있나요?
언젠가 우리 모두, 그 고무줄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끊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