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성취의 중요함
오늘의 증상: 충동적 분노와 무기력이 공존. 간헐적 이명 증상 지속.
여러분은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힘이 나는 음식이 있나요?
저는 원래 떡튀순(떡볶이 + 튀김 + 순대) 마니아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분식집의 그 맛! 퇴근 후 즐기는 떡튀순은 20대 시절 고된 서울 생활을 버텨온 저의 작은 낙이었죠.
그런데, 우울이라는 건 참 이상한 녀석입니다. 요즘은 그저 식욕 없음과 아무거나 폭식 사이를 오가고 있어요. 식욕이 없을 땐 그냥 굶습니다. 모든 게 귀찮아서요. 그러다 굶은 채 분노의 운동을 했다가 결국 또 병이 나버렸습니다. 아마도 홧병 + 저혈당 + 전해질 불균형의 콜라보였을 겁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신청한 병가 연장이 아직도 결재가 안 났거든요. 하하, 이제는 그냥 웃음만 나오네요.
며칠간 앓아누워 있다가 오늘 갑자기 순대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먹고 싶은 게 생겼다 = 살아날 조짐이다.’ 그 생각에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죠.
다행히 오늘은 우리 집 앞에 순대 트럭이 오는 날! 저녁 6시, 순대 아저씨를 기다리며 며칠간 쌓인 컵을 씻고, 세탁기도 돌렸습니다. 그런데 대망의 6시가 조금 지난 시각— 무한한 기대를 품고 1층으로 내려갔더니, 순대 트럭이 없었습니다. 이럴 수가!
순대를 향한 집념은 점점 커졌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대 트럭이 오는 금요일까지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어요.
선택 장애가 있는 저는 머릿속에서 네 가지 옵션을 두고 싸우다가, 결국 챗지피티에게 결정을 맡겼습니다.
챗지피티의 추천은 1번! 왕복 50분 거리의 부산대 앞 단골집. 며칠간 집에만 있었으니 팟캐스트를 들으며 산책도 하고, 검증된 맛도 즐기라는 조언이었죠.
좋아요. 그 선택, 존중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왕복 2시간 넘게 걸려 (평소라면 50분도 안 걸릴 거리) 순대를 찾아 떠났습니다.
저녁의 온천천은 시원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에 관한 심리학자의 강연을 들으며 걷는데, 이상하게도 모든 말이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이 많거나 사람들이 괴롭히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회사에서는 내일에 대한 꿈을 꿀 수 없었으니까요.
생각은 많은데, 구체적인 방향이 없으니 파도 속의 돛단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요.
통번역대학원 과제에 치이고 회사 업무에도 시달리던 시절, 평균 수면 3~4시간의 삶이 육체적으로는 훨씬 고됐지만, 그때는 바빠서 잡생각을 할 틈이 없었고 무엇보다 원래 하고 싶었던 공부였기에 ‘오늘도 하루를 끝냈다’는 작은 성취감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집-회사-집의 반복 속에 갇히자 오히려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거죠.
“큰 행복 하나보다 사소한 행복을 자주 느끼고,
큰 성취보다 작은 성취를 여러 개 이루고,
무엇보다 돈과 관련 없는 즐거움을 찾아라.”
너무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오늘은 그 말이 이상할 만큼 가슴 깊이 박혔습니다.
단골 순대집은 저녁의 한적한 거리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2시간이나 걸어서 사 온 순대의 내장은 신선하고 쫄깃했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작은 성취는 순대였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사소한 기쁨이 나를 일으켜 세워줄까요? 어떤 성취가 내 하루를 지탱해줄까요?
내일의 순대가 무엇이든, 그것이 또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