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출퇴근러에게 경의를, 그리고 나약해진 나에게
오늘의 증상: 사람 많은 곳에서 속 울렁거림 + 식은땀 증상 추가. 무기력증과 간헐적 이명 현상 지속 중.
병가 시작 후 가장 먼 거리를 다녀왔습니다. 6개월에 한 번 있는 대학병원 진료 때문이었죠. 약 40분 거리의 지하철. 문제는 예약 시간이 오전 9시, 딱 출근 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로 들어서니 속이 울렁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병원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되던 찰나, 다행히 자리가 났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일단 앉아서 숨을 골라봤습니다.
20분쯤 지나 증상이 나아져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더군요. 그 순간, 예전 서울의 ‘지옥철’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로 가득 차 몸 돌릴 공간조차 없었던 잠실역 플랫폼. 오늘의 저 같은 상태였다면 몇 번이라도 쓰러졌을 겁니다. 물론 그래도 뇌진탕의 염려는 없습니다. 사람들로 꽉 차서 넘어질 수조차 없으니까요.
비정규직인 지금의 회사를 선택했을 때 인사팀에서 몇 번이나 물었습니다. “아니, 왜 우리 회사에 오려고 하는 진짜 이유가 뭐예요?” 제 대답은 단 하나였습니다. “교통이 편리해서요.”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약 1시간 14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교통의 편리함 하나만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대가는 성장 없는 나날, 낮은 월급, 그리고 오늘의 나약함이었습니다.
‘혹시 사회생활과 너무 멀어진 탓에 무기력증이 더 심해진 걸까?’ 마침 오늘은 신경정신과 진료도 있는 날. 의사 선생님께 오늘의 증상을 털어놓았습니다.
늘 그렇듯 “이제 그만 집에서 뒹굴고 사회생활을 하라”라는 식의 촌철살인 처방이 내려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뜻밖이었습니다.
“회사 관련 일에 공황장애가 나타나는 것 같네요.”
…이럴 수가. 번아웃, 신경쇠약, 우울증, 불면증에 이어 이번엔 공황장애라니요.
돌이켜보면 어제 같은 증상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출근길에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워서 아무 역에서 내려 한참 의자에 앉아 있던 적도 있었고, 간신히 도착했다가 그대로 조퇴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던 거죠. 마음도 몸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외부 자극에 둔감해진 채 살아오다 보니 병가 한 달이 넘어서야 새로운 병을 발견했습니다.
병이야 이름 붙여지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제게는 유능한 의사 선생님이 계시니까요.
그렇지만 스스로를 몰라줄 만큼 지쳐 있었다는 사실에 자책이 먼저 밀려옵니다. 좀 더 일찍 내 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이토록 많은 병명을 얻지 않았을 테죠.
‘열심히 살기’를 강요하는 세상, 특히 ‘일 잘러’들은 희생당하기 십상이지요.
그래도 여러분, 몸과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세요. 저처럼 몸도 마음도 병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9월 중순쯤이면 병가가 끝납니다. 저는 과연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쓰러지면서까지 버티는 건, 정말 부질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멈춰 선 지금, 비로소 나를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