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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번아웃러, 병원 인증 '바보' 되다

의사 선생님께 팩폭 당한 후 오이를 씹은 이유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간헐적 이명 증상 지속. 폭식하고픈 기분이 들지만 오이를 씹으며 억제 중.


병원 진료를 다녀왔습니다. 신경정신과 진료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진 않아요.

지난 일주일간의 증상과 기분을 마구 하소연하듯 털어놓는 방식이죠.


오늘의 ‘하소연’은 두 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 다 ‘바보’라고 해서 스트레스인 것,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고 있다는 것.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저를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회사에서 그런 취급을 받고 일하다니 너는 바보다."

처음에는 그저 위로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반복되는 '바보'라는 단어는 칼날이 되어 저를 찌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지난날의 모든 노력이, 버텨왔던 시간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결국 나만 바보같이 살았다는 잔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오늘은 의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길 바랐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르고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러나 저의 주치의 선생님은 역시나 범상치 않은 분.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 대신 곧바로 현실을 진지하게 짚어주십니다.


"보통은 그런 말을 안 듣기 위해 자기 얘기를 그렇게 자세하게 하지는 않죠."


……네? 그 말인즉슨, 결국 제가 바보인 건 팩트라는 거죠?!


"가까운 지인들이라서요." 저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약간의 변명을 보태보았습니다.


그제야 제 표정이 상심해 보였는지 선생님이 한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앞으로 한 번 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하라고 하세요."

아... 예....


그리고 마지막 일격을 날려주셨습니다.

"폭식을 하면 순간은 기분이 나아질 수 있는데.... 살찝니다!"


단호한 한마디! 그렇습니다. 쭉쭉 빠지고 있던 제 살은 폭식의 시작과 함께 55 사이즈의 문턱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예리한 두 번의 펀치에 저는 만신창이가 되어 병원을 나왔습니다.


3일 동안 자서 부은 얼굴의 부기를 빼기 위해 호박차를 마시고, 오이를 씹으며… 인정합니다.

"저는 병원 인증 '바보'입니다."

하지만 제발, 두 번은 말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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