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차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 모녀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은 멍든 우리 사이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서 누워있었음.

어제 회사에서 온 문자와 엄마와의 일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

비가 와서 산책은 생략. 헬스클럽 가서 운동하며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노력


오늘은 하루 종일 주룩주룩 비가 내렸습니다.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습니다.

모녀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사실, 어제 회사에서 온 연락 외에도

제 마음을 짓누른 사건이 하나 더 있었어요.

엄마와 충돌,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엄마의 일방적인 폭발이 있었지요.


엄마는 요즘 임플란트를 하시느라

우리 집 근처 치과에 자주 들르십니다.

제 병가가 시작된 첫날에도 엄마는 오셨고,

저에겐 안부 한마디 없이

이종사촌 오빠를 걱정하며 팔목 보호대를 사달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제 돈으로요.)


점심시간, 아빠는 저와 함께 밥을 먹자 하셨지만

엄마는 이모부가 돌아가신 후 우리집에 와 있는

이모 가족들을 챙겨야 한다며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병가 4일째였던 어제,

엄마와 또 마주쳤습니다.

치과 치료 후 점심은 못 먹겠다고 하셔서

아빠와 저만 간단히 식사를 한 뒤

셋이 팥빙수를 먹기로 약속했지요.


하지만 밖에서 만난 엄마는

"내 카드 썼냐"며 아빠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셨고

임플란트 비용을 보태주지 않는다며 공개적인 책망을 하셨습니다.

사람 많은 백화점이라 저와 아빠 모두 당황스러워하며

조용히 엄마를 달랬지요.


저는 조심스레 말했어요

“엄마, 내가 언제 돈 안 드린 적 있어? 얼마나 필요해?”

엄마는 "없었다"는 짧은 대답 뒤에

갑자기 “안 먹는다”고 말하고 혼자 돌아서셨습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기에

저도, 아빠도 더 이상 감정 소모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팥빙수를 먹고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그 사이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았습니다.

또 혼자 청도 집으로 혼자 돌아가신 줄 알고(화나면 자주 그러시기에)

아빠는 급히 뒤따라 올라가셨습니다.


잠시 후, 엄마가 다시 우리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저를 향해 하신 말은 단 한 마디.

“아빠 갔냐?”

그게 전부였습니다.


아빠가 갔다고 하자 엄마는 고개도 돌려보지 않고

그대로 문밖을 나서셨습니다.

저는 급하게 아빠한테 연락해서

두 사람은 안전하게 본가에 도착하셨어요.


그 이후 저는 하루 종일 무기력했고

눈물이 날 정도로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회사 문제, 가족 문제…

모든 게 버겁고 고단했습니다.


엄마는 제게 한 번도

“괜찮니?”라고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 저는 스트레스성 우울증이 심해져 식욕도 없고

옷 사이즈가 한 치수 줄 정도로 살이 빠졌지만

엄마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관심과 사랑은

늘 외가 쪽 친척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만큼의 ‘가족’이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착한 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요.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고 싶었습니다.


외제차는 못 사드려도 국산차는 사드렸고,

유럽여행은 못 보내드려도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은 보내드렸습니다.

명절이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화장품, 속옷,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겼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제가 수술했을 땐 시장에서 산 반찬을 건네셨고,

외가 친척들에게는 손수 만든 반찬을 정성껏 싸 보내셨지요.


이번에 엄마의 쌈짓돈이 조금 줄어든 이유도

이모부가 돌아가시기 전 몇 번이나 서울을 오르락내리락 하시며

맛난 반찬을 해 본내고, 밥을 사고,

거의 대신 살림을 살아주셔서 그렇지요.

물론 그런 관심은 저에게는 하나도 없었지만요.


세상에는 다양한 모녀가 있습니다.

사이좋은 모녀, 원수 같은 모녀,

그리고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은 멍투성이로 뒤덮인 우리같은 모녀.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엄마에게 가족은 외가뿐이었고,

저는 그 가족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요.


저는 이제야 진짜 어른 공부를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받지 못한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 고백이, 제게는 가장 힘든 공부인 것 같아요.


*이글은 블로그에서 이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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