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차 - 우리 집 천장 위엔 놀이터가 있다

어디까지 참아야 어른일까요?

by 강호연정

오늘의 증상 :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남. 층간 소음으로 인한 분노를 삭이기 위해 저녁 산책을 했으나 실패. 소음은 여전히 지속 중.


오늘은 원래 다른 이야기를 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고 없이 방향을 틀지요. 오늘처럼요.


낮부터 윗집에서 아이들이 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파트는 평소 대체로 조용한 편이에요.

윗집도 평상시엔 정숙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단, 가끔 손주인지 친척 아이들이 찾아올 땐 상황이 달라집니다.

작은 놀이터라도 된 듯, 집 안을 뛰고 굴러다니며 운동회를 시작하거든요.


하루 정도야 이해해야 줘.

저는 집을 비우거나

참을 인(忍) 자를 가슴에 새기며 넘겨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심하더군요.

아이들이 달리는 소리에 천장이 울리고

이러다 천장이 내려 않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어요.


직접 찾아가는 건 감정만 상할 것 같아,

경비실을 찾아 중재자 역할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건 뜻밖의 훈계였습니다.

“우리 윗집도 애가 셋이었는데,

대학생 될 때까지 한 번도 뭐라고 안 했어요. 애들이 뛸 수도 있죠.”


맞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랫집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면 안 될까요.


경비실을 통한 항의 후 저는 집을 나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저녁 산책을 했습니다.

조용히 어둠을 걷고 돌아왔을 땐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 소심한 항의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는 사실을요.

아이는 여전히 아무런 제약 없이 뛰고 있었거든요.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는 보살핌뿐 아니라,

‘사회적 규칙’을 알려주는 훈육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집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장난이 과해지면

부모님께 먼저 꾸중을 들었습니다.

“집에서는 뛰면 안 돼.”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그런 작은 규칙들을 배우며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커가는 거죠.


오늘 윗집에서는

그 어떤 제지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집 안을 질주했고, 비명을 질러댔고

소리는 집안 구석구석을 흔들었습니다.


요즘은 남의 아이에게 훈계하면 안 되는 세상이지요.

그렇다면 최소한,

내 아이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실만큼은

집 안에서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층간 소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배려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균열입니다.


아랫집 사는 죄인인 저는 오늘도, 그 아이가

하루빨리 집에 돌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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