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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May 20. 2022

동료와 찐친 사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윗분들이 그러는 건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는데 팀장님이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서운하다.."


업무 메신저가 있는데 카카오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상황은 이렇다.

 

출근길 아침,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초까지 같은 과에서 근무하던 팀장님 뒷모습이 보였다. 반가워서 한참 뒤에 가던 내가 굳이 뛰어가 소리쳐 불러 세웠다. 듣고 있던 음악도 단번에 꺼버릴 만큼 반가웠고 짧은 길이지만 같이 가고 싶었다. 분명 마음은 그랬는데 어제 퇴근 전 사무실에서 메신저로 나눈 대화가 마음에 걸려(기분이 나빠서) 업무 이야기를 꺼냈다.


 "팀장님네 과에서 그렇게 예산 초과할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러니까 다음부터 예약도 거기서 해요." 건조해 보이는 문장이었지만 내 딴엔 애정을 섞어 투정을 부린 말이었다.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회식이 되살아났다. 일 같지도 않은 회식장소 선정과 윗분들 비위 맞추기는 가뜩이나 현타가 오는 지점인데 예산에 맞춰 저녁식사를 예약하는 것이 가장 비굴하고 어려웠다. 그런 찰나에 예산을 초과한 당사자(상사)에게는 묻지 못하고 도대체 얼마에 예약을 했길래 자꾸 예산이 초과되냐며 물으니 울컥다. 그래서 던진 말이었다.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만난 반가움을 표현하기에는 시간이 짧아 서운함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랬더니 어제 속상한 사람은 나였고 오늘은 상대 팀장님이 서운해했다.


"다른 사람이 그랬으면 들은 척도 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팀장님이어서 서운하다는 말한 거야. 우린 서로 일부러 상처 주지 말자고."


고마운 말이었다. 늘 묵묵히 일하는 팀장님이 타과에 가서 마음고생하고 있을 상황이 그려졌고, 그래서 내게 서운하다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순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친해지지 말 걸 그랬나? 나여서 서운하다고 말한 거니 친하지 않았다면 이런 말을 듣지 않았을 거잖아? 너네 예산은 너네가 챙겨. 쿨내 나게 말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거였잖아? 괜히 따로 밥 먹고 고민 이야기하고 그랬나 봐... 직장은 직장일 뿐인데... 결국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린 회포를 풀기 위해서 다시 만났다. 서로의 서운함을 잘 토닥이기 위해서.


솔직히 고민했다. 그냥 직장동료로만 지내야지. 서운함 어쩌고 하는 감정까지 떠안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회사 밖에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어쩌자고 또 약속을 잡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과의 분위기를 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의 험담도 좀 하고 그들은 왜 그러는지 참 알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나 역시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코메디 (권진규), 국립현대미술관


정보를 얻으려고 만나는 건지, 정말 친구가 되고 싶어 만나는 건지, 나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라는 말을 하고 싶어 약속을 잡은 건지, 아니 사실은 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싶었다. 서운하다 어쩌다 하고 한 달 뒤의 만남이었다. 그 사이 여러 사람과의 서운한 일들이 있었다.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면 서운할 법한 이야기를 했고 응당 받을 법한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중 어떤 일들은 전혀 기억에, 마음에 남지 않았고 어떤 일은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선명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내 위주의 편집본이 소장되었는지도 모른다.


깔끔하게 정리되거나 넓은 마음으로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지 못한다. 그냥 그런 채 살아간다. 이해하지 못한 채, 때로는 서운한 채, 그래도 괜찮은 사람만을 만나면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딱히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녀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새로 전입한 직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만 잘하면 되지 직장에 찐친 찾으러 온 건 아니잖아요?"

그래, 우리 모두 그렇게 왔다갔다 정리 안 된채 살아가나보다.




-그렇게 살아간다 (허회경)-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
또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사랑 같은 말을 내뱉고
작은 일에 웃음 지어놓고선
또 상처 같은 말을 입에 담는 것

매일 이렇게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서러워 나
익숙한 듯이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무서워 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매이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살아 가는 것
그렇게 살아 가는 것

아아아아
아아아아

상처 같은 말을 내뱉고
예쁜 말을 찾아 헤매고선
한숨 같은 것을 깊게 내뱉는 것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서
다 괜찮다고 되뇌이다가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우우우우
우우우우


https://youtu.be/hmOOkmynj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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