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엄마를 모신 봉안당에 다녀왔다. 붐빌 것으로 예상되는 설 명절을 피해 한주 늦게 간 것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곳.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빽빽한 유골들 속에서 정확한 위치를 한번에 찾아갈 수 있다.
유골함 앞에 서면 엄마 돌아가시던 날 풍경이 생생히 떠오른다. 느닷없이 만난 낭떠러지처럼, 별안간 훅 꺼진 싱크홀처럼, 그 어떤 예고도 전조도 없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셨기에 지금도 마음 한쪽에 허탈하고 막막한 구멍이 뻥 뚫린 채 있다. 엄마 돌아가신 후로는 죽음의 소식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데, 그렇게 몇 해를 지나니 알게 되었다. 전조 없는 갑작스런 죽음이 드물지 않다는 걸. 우리만 특별했던 게 아니라는 걸.
지금도 차가 봉안당 입구에 들어서면 눈물이 난다. 엄마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은 게 그저께 같다. 장기기증 여부를 결정하고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회사와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와중에, 정말로 이제부터는 엄마를 만날 수 없는 건지 하나님께 물으며 앞으로 닥쳐올 그리움이 차마 가늠되지 않아 지레 질려버리던, 태풍의 한가운데 서 있던 날들. 눈 감으면 그 감각이 선명히 되살아난다. 그런데 그게 5년 전이다. 5년 전에는 우리 엄마의 유골함 다음 칸부터는 비어 있었는데, 이제는 뒤로도 몇 줄이나 빽빽하다. 도서관 책장처럼 늘어서 있는 보관함이 한칸 한칸, 차곡차곡, 갈 때마다 채워져 있다. 나는 엄마 주변의 유골함들을 한번씩 훑어본다. 망자의 생몰연월을 보며 나이를 계산해 보고, 유족들이 넣어둔 사진과 글귀를 읽는다. 보고싶어요. 걱정 말고 편히 쉬어. 사랑해. 몇 안 되는 글자들에 묻어 있는 깊은 감정이 전해진다. 나도 알 것 같아요. 우리는 동료네요.
죽음은 사건이지만 부재는 상태이다. 엄마의 죽음은 그날 벌어지고 끝난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이다. ‘엄마가 없는 상태’가 끝났으면 좋겠는데, 바랄 수 없다. 엄마의 죽음은 내게 활화산이다. 여전히 생생하게 아프고, 폭발하듯 그립다.
저기 걸어가는 저 사람들도 모두 누군가를 잃었을까. 다들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 참 안쓰러운 존재들이다.
서로 연민하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