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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Feb 24. 2021

명절에 봉안당에 가면

지난 주말, 엄마를 모신 봉안당에 다녀왔다. 붐빌 것으로 예상되는  명절을 피해 한주 늦게  것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빽빽한 유골들 속에서 정확한 위치를 한번에 찾아갈  있다.

유골함 앞에 서면 엄마 돌아가시던  풍경이 생생히 떠오른다. 느닷없이 만난 낭떠러지처럼, 별안간  꺼진 싱크홀처럼,  어떤 예고도 전조도 없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셨기에 지금도 마음 한쪽에 허탈하고 막막한 구멍이  뚫린  있다. 엄마 돌아가신 후로는 죽음의 소식들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데, 그렇게  해를 지나니 알게 되었다. 전조 없는 갑작스런 죽음이 드물지 않다는 . 우리만 특별했던  아니라는 .

지금도 차가 봉안당 입구에 들어서면 눈물이 난다. 엄마가 쓰러지셔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은  그저께 같다. 장기기증 여부를 결정하고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회사와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와중에, 정말로 이제부터는 엄마를 만날  없는 건지 하나님께 물으며 앞으로 닥쳐올 그리움이 차마 가늠되지 않아 지레 질려버리던, 태풍의 한가운데  있던 날들.  감으면  감각이 선명히 되살아난다. 그런데 그게 5 전이다. 5 전에는 우리 엄마의 유골함 다음 칸부터는 비어 있었는데, 이제는 뒤로도  줄이나 빽빽하다. 도서관 책장처럼 늘어서 있는 보관함이 한칸 한칸, 차곡차곡,  때마다 채워져 있다. 나는 엄마 주변의 유골함들을 한번씩 훑어본다. 망자의 생몰연월을 보며 나이를 계산해 보고, 유족들이 넣어둔 사진과 글귀를 읽는다. 보고싶어요. 걱정 말고 편히 쉬어. 사랑해.   되는 글자들에 묻어 있는 깊은 감정이 전해진다. 나도   같아요. 우리는 동료네요.  

죽음은 사건이지만 부재는 상태이다. 엄마의 죽음은 그날 벌어지고 끝난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이다. ‘엄마가 없는 상태 끝났으면 좋겠는데, 바랄  없다. 엄마의 죽음은 내게 활화산이다. 여전히 생생하게 아프고, 폭발하듯 그립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들도 모두 누군가를 잃었을까. 다들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  안쓰러운 존재들이다.

서로 연민하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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