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C 인삼공사 사외보 기고문
* KGC 인삼공사 사외보에 기고한 글의 원문을 공유합니다 ^^
얼마 전 친구가 딸을 데리고 놀러왔다. 친구 딸과 내 큰딸이 동갑이어서 가끔 어울려 노는 사이인데, 친구는 딸 하나를 기르고 있고 나는 밑으로 둘을 더 낳아 막내가 이제 10개월이다. 남편이 분유를 타는 모습을 보더니 친구가 “너무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다!”라며 낯설어했다. 10년 전 나란히 아이를 낳았던 ‘출산 동기’였는데, 한 명은 진즉에 끝낸 일을 우리는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이렇게 농담했다. “삼수를 하고도 대학에 못 간 기분이 이런 걸까?”
아이 셋을 낳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몹시 놀란다. 그 놀람이 때로는 경탄이 아니라 경악에 가까울 때도 있다. 말로는 ‘대단하다’고 추켜세우지만 가족계획에 실패한 가난한 후진국 국민처럼 보는 듯한 은밀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셋을 낳으셨어요?”라는 질문에 보통 “그러게요”라거나 “어쩌다 보니…”라며 웃고 말지만, 진짜 이유는 이것이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커가는 게 아쉽고 아까워서. 아이를 기르는 기쁨과 희열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게 후회되어, 한 번만 더 해보고 싶어서. 그러고 보면 남편의 농담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한번만 더, 하고 둘째를 낳았고, 진짜로 한번만 더, 하고 셋째를 낳았다. 이런 솔직한 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는 건, 이를테면 학창시절 “시험공부 많이 했어?”라는 질문에 “많이 못 했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시험공부 많이 했다고 말하기가 겸연쩍은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과 영화 한 편 마음 편히 못 보는 우울감이 민망하다.
어젯밤도 아기 울음에 서너 번은 깼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어서 자라 통잠 자는 날이 오길 나도 모르게 빌게 된다. 언제쯤 갈치조림에 고춧가루를 넣을 수 있을까? 언제쯤 집에서 동요가 아닌 음악을 편히 들을 수 있을까? 오래 걷는 여행이나 등산을 할 수 있는 건 언제쯤일까? 계산하다 결국 질리고 만다.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온다 한들 그 때 나는 몇 살인 걸까, 결국 이렇게 내 인생은 끝인가. 우습지만, 그런 생각에 허우적대다 삼수까지 왔다. 빨리 커라, 빨리 커라 했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빨리 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걷고, 말하고, 유치원에 가더니 어느새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운다. 더 이상 어설프지 않은 아이의 말과 행동이, 흐릿해져만 가는 신생아의 냄새와 옹알이의 기억이 말할 수 없이 아쉽다. 그 때 아이랑 더 많이 놀걸, 말 배우느라 종알거릴 때 그 재미있던 문장들 다 녹음하고 적어둘걸. 그 마음이 짙어져 ‘안 되겠다, 한 번만 더…!’가 되었다.
세번째 육아 역시 고단하지만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긴 이유는 오늘이 ‘육아 여정’ 중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곧 지나간다’는 말을 첫째 때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는데 10살 첫째와 10개월 셋째를 함께 키우다보니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감각이 가슴 서늘하도록 느껴지는 것이다. 이 지면의 원고를 의뢰받을 때 ‘현실적인 조언’에 대한 요청이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조언은 하나다.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 여러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물론 육아는 너무 힘들지만, 이 순간이 지나기만 바라며 버티기에는 아이가 자라는 과정은 너무나 멋지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다. 능숙하게 걷고 말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느 날, 이 아이가 기고 서고 넘어지던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그 경이로운 시간을 버티듯이, 때우듯이 보내고 말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사무치는 아쉬움에 나처럼 재수나 삼수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써놓고 보니 조언보단 경고 같은데, 앞에서 말했듯 나는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다. 정말이다. 시험공부 많이 했다니까?
아무리 육아의 즐거움을 한번 더 누리고 싶다고 해도, 실제 출산으로 이어지는 건 다른 문제다. 남자 지인이 내게 ‘아내가 둘째를 안 낳으려고 한다’며, 우리 부부는 어떻게 둘째, 셋째를 결정했는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남편의 육아휴직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남편의 휴직 기간이 나보다 길다. 남편은 첫째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을 지나는 시기에 3년을 휴직했다. 남편 회사에서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 시기, 나는 미안할 만큼 육아와 살림에 소홀했다. 내가 셋째를 낳고 싶다고 말했을 때 오히려 남편이 반대했을 정도다. “낳을 거면 니가 키워!”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대사를 남기며. 사실 남편이 오로지 가족을 위해 휴직을 결정한 건 아니었다. 직장에서의 이런저런 사정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이유의 8팔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밤 프로그램을 맡아 연출했고, 책도 한 권 쓸 수 있었다. 내가 셋째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남편이 휴직 중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육아휴직이 가족의 삶을 얼마나 수월하게 만드는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특히 기업과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무려 세번째 출산을 엄두내 볼 정도이다. ‘내가 엄마로만 살다 죽겠구나’ 싶을 때는 그렇게 숨이 막혀오더니,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 일과 자아를 지키는 게 가능해지자 (그게 겨우 3년에 불과했음에도) 내가 놓친 육아의 즐거움이 어떤 것이었는지 눈에 들어오면서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시야가 확보되었다. 엄마인 나의 행복은, 엄마가 아닌 나의 행복과 붙어 오는 것이었다. 아빠의 행복이라고 다를까.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많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두 자녀를 키우며 그 일들을 해냈다. 가정과 일을 모두 가지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티(남편)가 젊은 변호사 시절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가정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주로 내 몫이었다. 1970년대에 내가 ACLU의 여성 인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마티는 변화의 가능성에 열렬히 호응했고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그 후론 균형추가 반대로 옮겨갔다. 삶의 다른 시기에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말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나와 남편이 서로를 보완하며, 가정과 일을 다 가질 수 있다는 말. 남편이 복직한지 어느덧 6개월이 다 되어 걸핏하면 밤 9시에 퇴근하는 흔한 대한민국 직장인의 일상으로 회귀하고 말았지만, ‘지금은 내 차례’라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는다.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신뢰감, 동료의식, 전우애야말로 육아를 ‘버티면서’가 아닌 ‘즐기면서’ 하게 하는 힘이다.
2020년은 한국이 주민등록제도를 시행한 이후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한 해라고 한다. 출생자는 275,815명, 사망자는 307,764명. 한 해에 태어난 아이가 30만 명이 안 된다. 찾아보니 2000년의 출생아가 64만 명으로 20년 만에 절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셋을 낳으셨어요?”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대부분 “애국자시네요”이다. 그러나 아이를 안 낳는 선택을 매국이라 할 수 없듯, 애국하려고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니다. 당연하지! 평생을 저당잡히는 결정을, 대체 누가 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위해 하겠는가. 60만명이 아닌 30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 것은 우리 시대 성인 남녀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장류진 소설가의 단편 <도움의 손길>은 아이를 그랜드 피아노에 비유해 이를 기막히게 설명한다. 그랜드 피아노는 물론 아름답고 고귀한 소리를 내겠지만, 책임감 있고 합리적인 어른이라면 내 집에 그걸 놓을 공간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십평대 아파트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랜드 피아노를 세 대나 들인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도 딱 맞는 저 표현이 아이를 낳는 이유로도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피아노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경이로워서, 나처럼 볼품없는 사람도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기꺼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소설 속 화자처럼 내 집에도 그랜드 피아노는 버겁다. 그래도 점점 ‘괜찮다’, ‘해볼만하다’고 느껴지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연탄으로 연주하는 테크닉이 늘었다는 것, 그리고 이 피아노가 우리 집에 영원히 있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 피아노가 내 인생에 머무는 기간은 짧으면 10년, 길게 봐야 20년이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 신생아 때문에 잠 못 자는 이 밤도 아쉽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는 주제에 행복하다고 하는 내 말이 과연 믿어질지 나조차 의문이다. 이걸 믿어지게 하는 게 저출산이 걱정인 분들, 우리 공동체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신경쓰이는 분들이 할 일 아닐까.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할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진다면, 그래서 이 아름다운 소리가 더 자주 들려온다면, 조금만 더 넉넉한 공간에 피아노를 들일 수 있게 된다면, “힘들지만 행복해요’라는 내 말에 조금은 힘이 실리지 않겠는가.
긴즈버그의 말을 하나 더 인용하고 싶다. “나는 운 좋게도 내 일을 자기 일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와 결혼했다. 1950년대에는 드문 일이었다.” 2021년의 대한민국은 어떤지 둘러본다. 남자의 일만큼 여자의 일을, 여자의 육아만큼 남자의 육아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랜드 피아노와 함께하는 삶의 충만한 기쁨을, 더 많은 동료 시민들이 누리면 좋겠다. 나라의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걱정돼서가 아니라, 살면서 쉬이 경험하기 힘든 아름다움의 정수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