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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Oct 06. 2024

아.친.엄_Part 3

가나안으로 떠나보는 게 어떠냐고…
이 근처에 있으면 내가 학생들을 빼갈 수도 있으니…
그게 그날 원장님의 차갑고 살 떨리는 격려의 말씀이었다.


10년 동안 충성을 다하고 또 다했던 나. 그러나 이제 11년째 되는 해, 더 이상의 충성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학원을 시작하고,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근무했던 학원에서 오는 학생은 한 명도 받지 않았다.
누군가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증명하고 싶었다. 치사하게 굴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

살다 보면, 어떤 날은 칭찬에 마음이 동하고, 또 어떤 날은 비판에 발끈해서 움직이게 된다. 가끔은 치사한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살아보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뭐가 되었든, 나는 그렇게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갔다.


틈날 때마다 나는 개원 준비를 시작했다. 학원의 이름을 정하고, 로고를 만들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3월 개강은 어렵겠고, 잘하면 4월은 가능할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종잇장 모서리 같은 바람을 맞으며, 근처 초등학교를 둘러싼 아파트 게시판에 문어발 전단지를 붙였다. 간판도 주문했다. 교육청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학원을 등록하는 과정까지.
그 겨울, 살면서 이렇게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두려움과 흥분, 그리고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아침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밤마다 불안감에 잠 못 이루던 그 시간들. 내가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자꾸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으로 쓰던 공간은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낡고 바랜 벽지, 마모된 바닥. 보증금은 빌리고, 월세는 남편이 부담하는 상황에서 인테리어까지 하려니 망설임이 컸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이왕이면 네가 매일 출근하고 싶은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를 하고 시작해.

맞다. 이제 이곳은 내 것이다. 내 브랜드이고, 내 커리큘럼이다. 전화가 오면 누구도 아닌 나를 찾는 곳일테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공간이다. 친구가 소개해 준 정직하고 성실한 인테리어 사장님을 믿고 일을 맡겼다. 인테리어 사장님을 소개해준 친구는 근처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며,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는 내 마음을, 함께 삭삭 바닥까지 긁어먹던 맛난 기사식당 백반과 함께 어루만져 주던 친구이다.


사장님, 애들이랑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세요. 예산 안에서 최고로 부탁드립니다.

빠듯한 예산에 막막할 부탁이 될 줄 알지만, 내색없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인테리어 사장님께 지금도 감사하다. 교실 하나는 에어컨 없이 공사를 마무리했다. 학원이 잘되면 그때 설치하자는 생각이었다. 세심한 인테리어 사장님은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수업에 들어올 것이라며 입구에 신발 벗는 자리를 돈도 받지 않고 만들어 주셨다.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어떤 날은 멈추고 싶고, 어떤 날은 달리고 싶고, 또 어떤 날은 울고 싶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지인들을 불러 소소하게 개원식도 열고, 비록 참석자는 두 명뿐이었지만 학원 설명회도 진행했다. 학원 가방도 맞추고, 사방에 붙인 문어발 전단지 덕분에 드디어 첫 문의가 들어왔다. 후에 그 어머니는 두 아이를 맡겼다. 지금도 나는 그 두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두아이의 얼굴도 기억하고, 내 손을 붙잡아주시며 '번창하세요'하시던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한다.

아무도 없는 반질반질 예쁘게 꾸려진 학원에 매일 출근하던 3월, 어느날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학원 강사 시절 내가 가르쳤던 쌍둥이 아이들의 어머니였다.


어머나! ㅇㅇ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여기 어떻게 아시고 오셨어요?

선생님, 여기 오픈하셨다는 얘기 듣고 왔어요. 저 여기 아파트 살거든요. 우리 애들 여기 다닐 수 있을까 해서요.


그 쌍둥이 아이들은 이미 수준급 영어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었다. 나는 이번에 기초반으로 수업을 구성하기로 했기 때문에, 어렵게나마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그분이 이 동네에 내가 학원을 열었다는 소문을 내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입소문 덕분에 4월, 마침내 한 반의 정원이 꽉 찬 채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래지 않아 부모님께 빌린 돈과 보험금 담보대출을 모두 갚았다. 에어컨이 없던 교실에도 드디어 에어컨을 설치했다.




개원식에 아친엄이 와 주었다.


ㅇㅇ엄마 덕분에 시작된 이 나비효과, 이렇게 결실을 맺네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아니에요, 고구마가 먹고 싶었던 건 태양이 엄마잖아요. 학원이 하고 싶었던 것도 태양이 엄마였고요. 저는 그저 불러냈을 뿐? ㅎㅎㅎ


아친엄이 개업 선물로 주고 간 서랍장은, 내가 학원을 정리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내 옆에 있었다.


그날의 아친엄처럼, 군고구마를 들고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 0%을 단 1%라도 보태는 것은 내가 들썩인 엉덩이지만,  

거기에, 2%,3%....보태어 가는 것은 나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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